6시 20분 기상.
8시 20분 출근.
9시부터 1시까지 수업.
1시부터 4시 15분까지는 학부모 민원처리, 각종 업무처리.
'도대체 이런걸 왜 조사하는거지? 이런게 왜 궁금한걸까?
이런걸 시키는 사람은 어떻게 생긴 사람일까?' 싶은 제출 요청 공문들 처리-
그리고 드디어 퇴근 5분전.
4시 15분부터 엉덩이를 들썩 거리다가 4시 20분 퇴근.
이보다 정확하고 규칙적일 수 있을까? 싶은 마루의 하루 일과였다.
오늘도 마루는 정확하게 새벽 6시 20분, 알람을 분명히 들었지만 못들은 척,
현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마음에 이불을 목까지 덮어쓰고 천장만 말똥말똥 바라보고 있었다.
'수요일?! 아직 수요일이라고?!
으, 출근하기 싫어...왜 아직 수요일인걸까'
사실, 마루는 월요병이라는게 딱히 없는 아니, '없었던' 축복받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물론 주말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매번 돌아오는 월요일을 향해
매번 불평불만을 쏟아놓을 마음도 없었다.
하지만 요즘들어 일요일만 되면 괜히 가슴이 답답하고, 무기력해지고,
저녁으로 넘어가는 시간이 되면 우울해지기까지 하는 마루였다.
'권태기 인가?'
교실에서의 하루가, 업무포털을 접속하면 쏟아져 오는 공문들이,
계획부터 결과보고까지 어느 하나 그냥 넘어가는게 없이 모든 일들을 서류화 해야 하는 일들이-
진절머리가 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이 많은 일들 중에 새로움을 요구하는 것도, 창의성을 요구하는 일도,
나의 능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얼마전 문득 떠올랐던 혜지의
'마루야. 너 지금 되게 멋있어. 반짝반짝해 보여'
라는 말이 무색하게, 이제는 일에 권태를 느끼고 있는지 고민하고 있는 마루였다.
나오기 싫은 이불 속에서 밍기적밍기적 거리며
'수요일...왜...아직 수요일...'
을 머리 속으로 반복하던 그때, 문득 짧은 문장 하나가 마루의 머리속을 비집고 들어왔다.
기억을 더듬어봐도 정확히 어디서 본 글인지, 들은 말인지는 생각이 나지는 않았지만
문장은 정확하고 또렷하게 기억이 났다.
"오늘 당신은 여기까지 오는동안 빨간 자동차를 몇대 보았나요?"
집에서 출근을 하는 동안 길 위에서 몇대의 빨간자동차를 보았냐는 질문이었다.
아무도 대답하지 못하자, 화자는 이어서 말했다.
"행복은 빨간 자동차 같은 거에요. 그곳에 있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것.
분명 여기까지 오는 길에 빨간자동차는 있었을 꺼에요.
하지만 우리가 의식하고 세어보기 전에는 그게 거기 있는 줄 모르죠"
마루는 밑도끝도 없이 떠오른 문장을 곱씹어 보며 생각했다.
"그래. 오늘은 교실 속에서 빨간 자동차를 찾아보자!"
9시가 되기 몇분 전. 복도 끝 저쪽부터 웅성웅성 아이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빨간 자동차를 찾는 하루가 시작된 것이다.
마루가 여느때와 다름없이 아이들과 자유놀이를 하고 있을 때였다.
눈앞에 불쑥! 노란색 색종이 하나가 나타났다.
봉투를 만든 것 처럼 색종이를 접어서 테이프로 붙여놓았고, 그 안에 또 다른 색종이가 들어있었다.
편지 봉투 안에서 편지지를 꺼내듯이 꺼내어 본 종이 안에는 삐뚤삐뚤한 글씨로 써있었다.
"마루 선생님. 사랑해요"
글자 옆에는 분홍색으로 하트를 그려놓았고,
아래에는 왕관을 쓴, 하지만 머리 바로 밑에서 몸통도 없이 팔과 다리가 바로 나오는
공주님이 그려져 있었다.
"선샘미! 이거 선물이에요"
누구보다 끈끈한 껌딱지 다온이의 선물이었다. 색종이를 받아 든 마루는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다른때 였다면 '고마워'라는 말로 마무리 되었을 상황이었지만 오늘은 빨간자동차를 찾기로 한 날이니까-
색종이를 괜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다온이는 미술놀이를 제일 좋아했다.
클레이로 모양을 만들고, 색종이를 접고, 온갖 재료들을 모아 풀칠을 해서 붙여놓고는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처럼 여기곤 했다.
그래서인지, 마루가 기억하는 다온이의 모습은 항상 미술영역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사부작사부작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아이들은 늘 자유놀이 시간을 아쉬워 하고 부족해 했다.
놀이가 끝나갈 때 쯤에는 다 쌓지 못한 블록이 아쉬웠고, 다 만들지 못한 종이접기가 안타까웠다.
지금 다온이는 그런 소중한 자유놀이 시간을 마루를 위해 사용한 것이다.
그것도 자기가 가장 좋아하고 가장 잘하는 일을 통해서-
좋아하는 놀이이긴 해도, 아직 손에 힘이 없어 힘주어 쓰지 못한 흐릿한 색연필 자국으로
어설프게 한글자 한글자 정성스럽게 써준 편지를 보며 마루는 생각했다.
'그래, 오늘의 첫번째 빨간자동차는 너다!'
마루는 노란색 색종이를 수첩 사이에 소중하게 끼워 넣고, 톡톡 두드렸다.
빨간 자동차를 찾아냈다는 뿌듯함에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가려고 하는데,
지운이가 마루곁으로 다가와 바지를 잡으며 물었다.
"선샘미! 오늘 반찬은 뭐에요?"
지운이는 평소에도 점심시간이 힘은 아이였다.
편식도 심했지만, 고집도 만만치 않아서 식사지도를 할 때마다 마루에게 번뇌를 주는 아이 중 하나였다.
"오늘 반찬? 오늘...반찬은..."
고실 한켠에 붙어있는 급식 식단을 보며 마루가 크게 이야기 해주었다.
"치킨이네!"
"와!!!!!!!!"
마루의 말을 들은 지운이와 주변의 몇몇 아이들이 소리를 질렀다.
오늘의 두번째 빨간자동차였다.
사실 아이들에게 급식 메뉴는 그날의 점심시간을 천국으로 만들어 줄지,
지옥으로 만들어줄지 결정하는 큰 요소였다.
먹기싫은 나물을 한번쯤은 먹어봐야 하는 날에는 식당까지 가는 걸음이 천근만근이었고,
좋아하는 메뉴에 후식까지 빵빵하게 나오는 날에는 어느 때보가 기다려지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이건 마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이후 밥을 차리는 입장이 되어보니, 누군가가 나를 위해 밥을 해준다는건
단순한 행동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마루였다.
음식을 차리는 행위는 상대방을 위해 나의 시간과 정성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수고로움을 알기에 오늘의 급식이, 아이들과 씨름하지 않아도 되는 메뉴가 더욱 고마워졌다.
그렇게 오늘의 두번째 빨간자동차는 교실한쪽 벽에 붙어있는 급식 식단표 안에 있었다.
교식 속에서 빨간자동차 찾기 게임을 마친 마루는 연수실로 돌아와 긴긴 한숨과 함께 의자에 몸을 파묻었다.
'오늘은 또 어떤 일들일 기다리고 있을까-'
마루는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치고 잠겨있는 컴퓨터 화면을 열었다.
마루의 컴퓨터 모니터 안에는 항상 숫자가 가득 들어있었다.
쪽지 함에는 빨간색 숫자가 처리해야 하는 일의 갯수를 알려주었고,
업무포털에는 녹색 숫자가 제출해야 하는 공문의 숫자를 알려주었으며,
학부모와 소통하는 앱에는 파란색 숫자가 여러가지 문의사항이나 질문들의 갯수를 알려주었다.
마음을 졸이며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는데,
메신저의 쪽지함이 비어있었다.
처리해야 할 급한 공문도 없었다.
학부모에게 온 연락도 없었다.
세번째 빨간 자동차였다.
바쁘지 않은, 급한 일이 없는 평온한 오후.
엉덩이 붙일 시간도 없이 이리저리 뛰어다니지 않아도 되는,
커피한잔 하며 오전에 쏟았던 에너지를 채울 수 있는 잠깐의 여유.
아무일 없는 무사한 하루자체가 거대한 빨간 자동차였다.
아니, 어쩌면 마루는 빨간 자동차 안에서 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분간 빨간 자동차 찾기는 계속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