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자리의 주인

by maru

'딩동'


공문을 처리하느라 모니터를 노려보고 있던 마루의 눈에 모니터 하단의 알림창이 들어왔다.

쪽지함 새로운 쪽지가 왔다는 알람과 동시에 메신저에 빨간 글씨로 숫자 '1'이 표시되었다.


'또 무슨일이냐....'


마우스를 움직여 쪽지함을 열던 마루의 눈빛이 순간 변했다.


[마루쌤~ 요즘 학기초라 바쁘지요?

학기초 힘내요. 화이팅!!!]


틀렸으니 다시 제출하라는 요청도, 기일이 지났는데 왜 아직 공문을 안보내냐는 독촉 연락도 아니었다.

반가운 주아선생님의 쪽지였다.

교육청에서 교사들끼리 업무적인 연락을 하라고 제공해주는 메신저였다.

개인 SNS가 따로 있기 때문에, 이 메신저로는 100프로 업무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이 관습인데,

관습의 틀을 깨고 주아 선생님이 응원의 메세지를 보낸 것이었다.

업무와의 싸움에 잠깐의 반가움과 행복이 끼어들었다.


마루는 주아와 처음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주아를 처음 만난것도 벌써 10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임용고시 합격소식을 받고, 설레는 마음이 가라앉기도 전에,

마루에게 찬물을 끼얹는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날아들어왔다.


신.설.발.령


말그대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해야 하는 곳.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 기본적인 가구, 교구, 심지어 숟가락, 머리빗 하나까지

온갖 살림살이를 다 장만해 내야만 하는 곳.

기쁨을 느낄 새도 없이 마루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발령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첫출근을 하던 날.

설레임과 걱정, 기쁨과 불안을 동시에 안고 마루는 주아쌤과 처음 만났다.


"안녕하세요"


작은 목소리로 조심스럽게 문을 열며 들어오던 그녀였다.

비슷한 또래에 비슷한 키, 외모와 풍기는 분위기도 비슷했다.


"안녕하세요"


어색하지만 애써 웃으며 마루도 인사했다.

앞으로 적어도 1년, 길게는 4년을 함께 보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말했었다.

공무원의 장점은 '짤리지 않는 것' 이라고.

하지만 덧붙였다.

공무원의 단점은 '저놈도 짤리지 않는 것' 이라고.

이러나 저러나 함께 지낼 사람이었고, 첫인상을 잘 보여야 했다.


"첫 발령인데 신설이라서 걱정이 많아요"


"그러게요. 아직 모르는게 너무 많은데, 유치원 하나를 우리가 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막막해요"


"그래도 우리 열심히 잘해봐요"


"4학급이라서 우리 말고도 선생님들 더 있는 것 같더라고요"


"그러게요. 이제 곧 올 것 같긴한데...

어떻게 4학급 신설유치원에 4명 다 신규교사로 발령을 낼 수가 있는거에요?"


"신설이라서 힘드니까, 경력교사는 다 기피했나봐요.

그래서 아무것도 모르는 신규교사들만 냅다 꽂아놓은 것 같아요."


걱정과 불만을 토로하고 있을때 함께 개고생을 해야만 하는 나머지 전우들이 도착했다.

그렇게 4명의 우당탕탕 신설유치원 시작되었다.


바보들이 머리를 맞대어 열심히 일을 하면 어떻게 될까?

이제 막 임용이 된 무지랭이들이 뭉쳐봤자, 바보 더하기 바보 더하기 바보였을 뿐이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에 무언가 하나하나 생기기 시작했다.

텅빈 교실에 교구장과 책상, 의자들이 들어서며 제법 교실의 모습들이 갖추어져 갔고

주방에도 아이들이 사용하는 간식그릇이며 숟가락, 포크까지 생기면서

점차 살림살이들이 채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텅빈 공간에 채워지는 물건들처럼, 선생님들 사이에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아...마루쌤. 그때 공문 발송처리 안했어요?"


말투에 날이 서있었다.

서글서글하고 인상 좋아보였던 주아 선생님은 일을 할 때는 잔뜩 예민해지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 주아쌤. 이걸 이렇게까지 자세하게 써야 해요?"


좋은게 좋은 마루는 일을 할때 예민해지고 지나치게 작은것까지 파고드는 주아와

사소하게 부딪히기 시작했다.


사실, 모두가 예민한 시기였다.


개원 직전, 아침일찍 출근과 동시에 물음표 뿐인 일들을 교육청에, 인근 유치원에

하나하나 물어봐가며 하느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무언가를 처리할때 '왜'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하는지 따위의 물음은 사치였다.

그냥 '했다'라는에 의의를 두어야 했다.


해야하는 일은 산더미인데- 당장 다음주에 이곳에서 아이들이 입학식을 하고,

수업을 하고, 놀이를 하고 간식과 점심을 먹어야 했다.

신규선생님들은 불안함과 함께 초조해져 갔고, 이와 더불어 체력은 바닥나고 있었다.


그때, 함께 발령받은 교사중 한명인 슬아 선생님이 마루에게 말을 걸어왔다.


"마루쌤, 오늘 끝나고 뭐해요?"


"아마 집에가서 뻗을 것 같은데요...?"


"오늘 가기전에 맥주나 한잔 하고 갈래요?"


"그럴까요, 그럼? 한잔 마시고 더 완전하게 뻗어야 겠어요"


퇴근후 슬아와 마루는 맥주잔을 앞에놓고 마주앉았다.

슬아도 마루와 주아와 많이 차이나지 않는 또래였다.

둘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가장 최근인 임용공부 얘기, 가족 얘기, 남자친구 얘기, 업무 얘기...

역시 사람이 급속도로 친해지는데에는 술만한게 없었다.


"마루쌤. 그래도 나는 여기와서 선생님들 만나서 다행이에요."


슬아가 말했다. 살짝 혀가 꼬여있는게 취기가 도는 것 같았다.


"지금 다들 힘들긴 해도, 모난 사람 없이 다들 자기 몫 열심히 하고있잖아요.

선생님들 만나서 좋아요"


슬아의 진심이 느껴져서, 요즘따라 예민했던게 미안해지는 마루였다.


그날 이후 슬아와 마루는 단짝처럼 붙어다니기 시작했다.

일이 끝나면 함께 맥주를 마시기도 하고, 주말에는 함께 좋은 공연을 보러 가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이 이제 신규 4인방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공문이 뭐에요? 기안은 어떻게 올리는건가요?

물건은 그냥사는게 아니에요? 품의를 왜 올려야 하는건가요?"


물음표 살인마처럼 모든 일에 물음표를 달아대던 신규 4인방은 어느새 한학기만에

유치원 업무에 적응해 가고 있었다.

역시 몸으로 부딪혀가며, 맨땅에 구르면서 배워야 빨리 터득하는 법이었다.


마루의 인생에서 가장 빠른, 정신 없었던 1년이 지나갔다.

신규 4인방들은 전우애를 가지고 더욱 돈독한 사이가 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슬아와 마루가 있었다.

이제 선생님들과의 사이도, 아이들과의 일과도, 유치원 환경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학년 말즈음-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주아선생님이 더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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