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아쌤~ 축하해요. 너무 잘됐어요!! 진심으로 축하해요"
아무것도 없던 허허벌판.
개고생 끝에 무에서 유를 창조해낸 3명의 전우들이 주아에게 진심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넸다.
"고마워요 선생님들.
그런데...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같이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더 커요..."
주아는 축하의 인사를 마음껏 누리지도 못하고 무거운 마음으로 말끝을 흐렸다.
"아니, 이렇게 좋은 일 앞에서 그게 무슨말이에요. 그런거 생각하지 마요"
마루는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과 함께, 미안해 하는 주아의 짐을 덜어주기 위해
일부러 더 과장된 몸짓으로 손사레를 치며 말했다.
"그래요. 걱정하면 아기한테 안좋아요.
좋은것만 생각하고, 휴직 들어가면 유치원 생각은 하지도 마요!"
슬아 선생님도 덧붙였다.
그렇게 임신과 함께 주아는 당분간 유치원을 떠나있게 되었다.
그리고, 누군가가 떠나가면 누군가가 그자리를 다시 채우기 마련이다.
남은 세명이 걱정하는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주아를 대체할 사람은 과연 누가 될 것인가.
서로 예민한 시기에 볼꼴 못볼꼴 다보며 서로를 견뎌내고 맞춰가던 네명이었다.
힘든일도, 좋은일도 같이했고 유치원 구석구석 네명의 손길이 안닿은 곳이 없었다.
신설 4인방은 자신과 서로를 깎아내고 채워서 아귀를 맞춘 끝에 완성된 하나의 퍼즐이었다.
그런 그곳에 하나의 퍼즐이 빠지고 새로운 퍼즐이 들어온다.
어떤 모양의 조각일까.
다시 서로의 틈을 잘 맞춰서 완성된 퍼즐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결국 서로의 틈을 메우지 못하고 미완성으로 남게될까.
새로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나이가 먹을수록 커져갔고, 사람을 대하는 일이 제일 어려워지는 마루였다.
주아는 거듭된 휴직 연장으로 결국 꽉 채운 3년동안 육아휴직을 썼다.
그동안 마루도 신설 유치원에서 만기를 채우게 되었고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교사의 정기발령이란-
새로운 사람에게 적응해 갈 때 쯤이면 떠나고, 그 자리를 새로운 사람이 대체 했으며,
다시 적응할 때 쯤에는 내가 떠나야 하는 비움과 채움의 연속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세월은 약일까, 독일까?
주아가 먼저 떠나간 자리에 마루는 남았었고, 이제 마루 혼자 지키고 있던 자리에서 마루마저 떠났다.
이제 주아와 마루의 접점은 남아있지 않았고, 주아는 마루의 기억에서 차차 멀어져 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있던 어느날 마루에게 연락이 한통 왔다.
"마루쌤. 잘 지내요?"
오랜만에 받는 슬아의 연락이었다.
"슬아쌤~ 나는 잘 지내요. 슬아쌤도 잘 지내요?"
"앞에 '잘'은 빼고. 그냉 지내요"
"슬아쌤 새로 발령받은 곳은 어때요? 다른 선생님들은 괜찮고요?"
"아직 모르겠어요. 지금은 박힌돌들 사이에 굴러 들어온 돌이 뿐이지요 뭐"
실없는 말을주고 받던 슬아는 본격적으로 연락한 이유와 목적을 꺼내어 놓았다.
"마루쌤. 주아 선생님 소식 들었어요?"
"어떤 소식이요?"
"부고 소식이에요. 주아선생님 부친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요? 장소랑 알려줘요. 얼른 갈게요."
영화의 한장면 같았다.
동고동락했던 사람들이 세월이 흘러 뿔뿔이 흩어졌고, 그들을 다시 모이게 한 장소가 장례식장 이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서로 안부를 물을 여유도 부리지 못했고,
몸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진부한 이유로 연락도 소원해져 있었다.
말그대로 전쟁터를 함께 겪은 전우들의 끈끈했던 관계가 시공간을 핑계삼아 흐려져 있던 것이다.
그리고 이곳이 오늘 그들을 다시 만나게 한 장소였다. 장례식장.
장례식장에 들어서며 주아를 찾던 마루가 상복을 입고 조문객을 맞이하던 주아와 눈이 마주쳤다.
까만 상복을 입고 얼굴이 헬쓱해진 주아에게 마루는 다가갔다.
그순간, 마루는 아무말도 하지않고 주아를 꼭 안아주었다.
몇년만에 만난 두사람은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서로의 온기를 나누었고,
마루는 주아의 등을 계속해서 어루만지고 토닥여 주었다.
그때였다.
그때까지 덤덤히 조문객을 맞이하던 주아가 마루의 품에서 갑자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장례식이 끝난 후 마루에게 주아의 연락이 왔다.
"마루쌤, 그때는 고마웠어요."
"뭐가 고마워요. 당연한 일인데요."
"마루쌤. 정말 이상한거 알아요?"
"뭐가요?"
"너무 힘든일이 생겼는데, 이상하게 마루쌤이 생각나는거 있죠.
오랫동안 못봤는데, 신기하게 자꾸 마루쌤이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쌤 보자마자 눈물이 터졌나봐요."
마루도 신기했다.
'왜 나였을까? 많은 선생님들 중에 왜 하필 나였을까?'
솔직히 말하면 오히려 일을 할때는 서로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정도 였다.
유독 꼼꼼한 주아한테 만큼은 마루가 인내하고 자신의 조각을 깎아내서 맞춰줘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건 주아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거기다 오랫동안 연락을 하지 않았던 사이였다.
그런데 힘든순간 주아는 왜 하필 마루가 떠올랐던 걸까?
마루에게 주아는 연결의 고리가 희미해져 가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오래전 기억으로 막연하게 '어려운 사람' 이라고만 생각했던 주아의 솔직한 고백에
마루는 마음 속에서 무언가가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무너진 틈 사이로 주아의 진심을 흘러들어 오는걸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마루와 주아 사이의 몇년이라는 시간이 한순간에 매워지고 있었다.
마루는 바쁜 업무 속에서 잠시 반가움을 줬던 주아의 메세지 창에서
'회신' 버튼을 눌러 답장을 쓰기 시작했다.
주아쌤! 우리 한번 만나야지요~
얼굴 보고싶어요
진심이었다.
마루와 주아는 장례식장에서 다시 만난 이후로 자주 안부를 묻고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서로 일하는 교육청도 달라졌다.
겹치는 지인도 이제는 없어졌다.
사는곳도 멀어서 한번 만나기 위해서는 큰 마음을 먹고 만나야 했다.
그럼에도 업무적인 고충을 털어놓을 사람도, 경청하고 공감해줄 사람도,
당사자 앞에서는 못할 소리들을 서로를 대나무숲 삼아 내뱉을 사람도 둘 뿐이었다.
주아에게 답장을 쓰던 마루는 문득 주아와의 인연이 소중하고 애틋하게 느껴졌다.
몇년 전,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고 밑바닥까지 보였던 슬아는 지금 연락조차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하지만, 함께 지낼 때는 맞지 않는다고, 어렵다고 생각했던 주아는
이제 힘들 때 서로를 응원하는 사람으로 마루 옆에 남아있었다.
인연이란건 항상 그랬다.
호주에서도,
"언니, 우리 한국가면 진짜로 꼭! 만나요"
라며 몇번이고 손가락 도장을 찍던 언니와는 다시 연락할 일이 없었다.
하지만 옆방에 지냈을 뿐인, 지나치며 인사를 몇번 나눴을 뿐인 동갑내기 여자친구는
한국에와서도 꾸준히 연락을 했더랬다.
내 인연이면 옆에 남는 것이고 아니면 가는 것.
그러니 붙잡지도 막지도 말고,
오면 오는대로 가면 가는대로 흘러가게 두면 되는 것.
마루에 인연이란 그런 것이었다.
주아는 지금 마루 옆자리에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첫인상이 좋았던,
정작 지내보니 힘들었던,
하지만 지나고 보니 좋은
내 옆에 남은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