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도 안먹는 똥

by maru


'나는 개도 안먹는다는 똥을 싸는 사람이다'


스승의날.

아침에 눈을뜨자 마자 마루는 생각했다.


5월 15일. 스승의 날.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데이-

심지어 로즈데이, 삼겹살데이에 짜장면데이까지 무슨무슨 데이들이 그렇게나 많지만

세상사람들한테 스승의날은 전혀 관심 밖의 날이었다.


근로자의 날에도 쉬지 못하는 근로자.

고맙다는 카드한장 받지 못하는 선생님.

세상은 마루에게 일을 하고 월급은 받지만 근로자는 아니라고 했고,

아이들을 위해 희생은 해야 하지만 감사나 존경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아침부터 왠지 기운이 빠진 마루는 출근하기 위해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어제 사놓은 동료 선생님들 선물이었다.

사실 별것도 아닌 선물이었다.

기껏해야 쿠키나 커피같은 얄궂은 것들이었지만,

이렇게라도 서로 챙기지 않으면 세상에 우리를 챙기는 존재는 없을 것 같았다.


산타가 된 마루는 아무도 없는 이른 시간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연수실에 들어왔다.

선생님들 책상위에 얄궂은 선물이라도 챙겨서 올려놓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이미 책상 위에 작은 선물 꾸러미와 함께 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스승의 날 축하해요'


마루는 고개를 들어 연수실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직 아무도 출근을 안한 것 같은데, 마루보다 빠른 누군가가 스승의 날을 축하하고 있었다.

다른 선생님들의 자리를 둘러보니 똑같은 카드와 함께 똑같은 선물이 놓여져 있었다.


마루는 자신이 준비해온 선물 꾸러미를 이미 놓여져 있는 선물 옆에 가지런히 놓았다.

두개의 선물 꾸러미가 선생님들의 스승의 날을 조용히 축하하고 있었다.

8시 20분.

출근시간이 되고 모든 선생님들이 모이자 고맙다는 인사들이 파티션 너머로 퍼졌다.


"마루쌤~ 고마워요. 쌤도 스승의날 축하해요."


"별것도 아닌데요 뭐.

그런데 다른 하나는 누가 준거에요? 내가 제일 먼저 온 것 같은데, 벌써 선물이 있더라고요."


그 때, 지현이 부끄러운 듯이 웃으며 손을 슬쩍 들었다.


"어? 지현쌤이었어요? 지현쌤 나보다 늦게 출근했잖아요."


마루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아, 어제 퇴근하면서 미리 올려놓고 갔어요."


다른 사람들에겐 그저 365일 중에 하루일 뿐인 날을 자신만 챙기는게 아니라는 안도감이 드는 마루였다.


"지현쌤 고마워요~ 스승의날 챙겨주는 사람 있으니까 좋네"


"마루쌤도 우리 챙겨줬잖아요. 고마워요."




교실로 들어온 마루는 지현이 준 뜻밖의 선물만큼 감동의 연속이었다.

아이들이 하나둘씩 등원하는 시간-

아이들이 겉옷을 벗어 정리하기 시작하자 마치 보물찾기를 하듯이,

마루를 위한 선물들이 하나씩 나타나기 시작했다.

흔히 '요즘엄마'들이 하는 방식으로 아이들의 옷에는 각양각색의 여러가지 문구들이 써있었다.


"선생님은 언제부터 예뻤어요?"


"선생님을 만나서 행복해요"


"꽃보다 예쁜 마루 선생님. 사랑해요"


"선생님 말을 잘듣자!"


아이들은 각자 자신이 거대한 편지가 되어 마루에게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옷에 글씨스티커를 붙이고 온 아이들은 자신이 온몸으로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있는지 알지도 못했지만,

마루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웃음이 새어나오는걸 멈출 수가 없었다.


'그래. 오늘은 아이들하고 싸우지 말고 행복하게 보내보자.'


감동으로 시작한 하루이니, 오늘 만큼은 아이들과 씨름하지 않고

웃으며 보내고 싶은 마루였다.




"!!!!!!!!!!!!!!!!!!"


역시 아이들은 자신이 옷에 붙이고 온 글씨스티커가 무슨 말을 전하고 있는지,

오늘이 무슨날인지 알지 못하는게 확실했다.

화내지 않으려 애쓰는 마루의 모습을 귀신같이 눈치 챈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욱 붕- 뜨기 시작했고, 교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어수선해 졌다.


아이들의 옷에 붙어있던 스티커는 교실을 날아다니는 아이들의 활동량을 감당하지 못했는지

하나둘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ㄲ 보ㄷ 예븐 우리 선새니'


'사라해ㅛ'


'선새님으 언제 ㅂ터 ㅇ뻣어ㅛ'


'서생니 마을 잘드ㅏ'


너덜널해진 아이들 옷의 스티커를 본 순간,

그걸 보며 아침의 감동이 한숨으로 변하는 순간-


마루는 결국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했던 생각을 똑같이 하고 말 수밖에 없었다.


'나는 개도 안먹는다는 똥을 싸는 사람이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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