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학습 가는 날

by maru

현장학습 가는 날.


아이들은 아침부터 들떠 있었다.

가방에는 엄마가 싸준 도시락이며 간식이 잔뜩 들어있어서 보기에도 꽤 무거워 보였다.

자기 몸만한 짐을 이고 지고 오면서도, 아이들은 기대감에 부푼 모습이었다.


반면 마루는 아침부터 온 신경이 곤두서 있었다.


특히 예민해지고 날이 서는 날.

아이들의 돌발행동이 어디서 어떻게 튀어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온 몸과 신경의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는 날이다.


전날 마루는 현장학습 가는 곳의 사진을 미리 보여주었다.


"선생님 여기 나 가봣어요!!"


역시나 아는척을 하는 아이가 한명쯤은 꼭 있다.


"여기 가면 사람 입모양도 있고, 공사장 놀이도 할 수 있어요!"


아이들의 기대감이 꺼지기 전에 얼른 마루가 말을 이어받았다.


"영우는 벌써 다녀왔구나. 우리도 여기가서 여러가지 체험을 할꺼야."


올해들어 세번째 가는 현장학습이지만, 매번 똑같은 약속을 하는 마루와 아이들이었다.

똑같은 말을 계속 한다는건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선생님을 잘 보고 따라와요.

걸어다녀요. 함부로 만지지 않아요...."


반복이란 무섭다.

이제는 마루가 말하지 않아도 아이들이 알아서 지켜야 하는 약속을 술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약속을 하고, 다짐을 해도 돌발상황은 생기기 마련이었다.

아이들과 다짐에 다짐을 거듭하면서도 마루는 속으로 긴장의 끈을 바짝 조이고 있었다.



대통령을 경호하는 경호실장이 인파가 많은 곳에 대통령과 동행하면 이런 눈빛일까?

마루는 현장학습지에 도착하자마자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다.


다른 유치원 아이들과 섞여서 길을 잃지는 않을까,

만지지 않아야 하는 물건을 만지지는 않을까,

뛰다가 누군가와 부딪히지는 않을까,

한눈 판 사이에 선생님과 일행을 놓치지는 않을까-


"하나, 둘, 셋......열다섯, 열여섯, 열일곱"


걸음을 옮길 때마다, 장소를 바꿀 때마다 마루는 강박처럼 아이들의 숫자를 세었다.

세상에 태어나 일부터 열일곱까지밖에 숫자를 배워보지 못한 사람처럼

일부터 열일곱까지 무한으로 반복하며 세어대는 마루였다.


점심시간.

직장인들에게는 점심을 먹고 커피한잔의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순간.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산책을 하는 사람도 낮의 햇볕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순간.

하루의 정 가운데에서 오그라든 몸을 펴고, 지루와 피곤을 끊어갈 수 있는 시간.


그 짧은 휴식시간도 마루에게는 휴식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도시락을 하나하나 열어주며, 없어진 포크를 찾아주며, 실수로 엎은 물을 닦아주는 시간이었다.

이럴 때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다.

배는 고프지만 허겁지겁 먹어 체하느니 현장학습을 가는 날에는 한끼 정도 건너 뛰는게 나을 때도 있었다.

정신이 어디가있는지도 모르게 아이들의 도시락을 열어주려 손을 바삐 움직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마루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님!"


마루는 자신을 부르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태인이가 마루의 얼굴을 향해 포크를 들이밀었다.

빨간 하트모양 손잡이의 포크 끝에는 곰돌이 모양을 한 김밥이 달려있었다.


잠시나마 긴장이 풀리며 웃음이 나왔다.


이런순간.

마루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이었다.


온 신경이 곤두서있을 때 아이들의 말 한마디로 푸스스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아이들이 말을 안들어 화가 머리끝까지 나도 엉뚱한 말한마디에 어이없는 웃음이 터져 나오는 순간.

피곤에 찌들었을 때 아이들이 안겨오며 내어주는 품 하나에 노곤고곤 긴장이 풀어지는 순간.



다행히 아무일도, 아무 사건도 없이 무사히 현장학습을 다녀왔다.

교실에서 아이들과 인사를 하고 기다시피 들어온 연수실.

역시나 공기가 회색이었다.

선생님들의 눈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사람 몸이 의자모양에 맞춰지는게 가능하구나- '싶을정도로

선생님들은 실온에 오래 보관한 인절미처럼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그야말로 병동 그 자체였다.


태어난지 5년도 채 되지 않은 17명의 아이들의 안전과 안위를

오로지 마루 한명이 책임져야 하는 날이었다.

그 모든 부담을 마친 순간.

두통이 오지 않을리 없었다.


아이들의 현장학습은 끝났지만, 마루의 두통은 이제 시작되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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