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과근무 합니다!

by maru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일년 중 가장 큰 행사.

일년에 한번씩 꼭 돌아오고야 마는 날.

피하고 싶지만 피할 수도, 그렇다고 즐길 수는 더욱 없는 일.


학.부.모.공.개.수.업.


임용이 된 첫해.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아니 손과 발까지 떨어가며 공개수업을 마치고

녹초가 된 몸으로 마루는 생각했었다.


'앞으로 살면서 몇 번의 공개수업을 더 해야 끝이 날까?'


일년에 한번이지만 꼬박꼬박 각설이처럼 죽지도 않고 또 찾아온 공개수업 이었다.

아무리 경력이 쌓여도 여러명의 시선이 나를 보고있다는 긴장감과,

단 30분, 1시간의 시간으로 교사로서의 내 전체가 평가된다는 부담감은

좀처럼 떨쳐지지가 않았다.


묘하게 연수실 분위기도 어수선 했다.


"지현쌤. 우리 뭐부터 해야 할까요?"


"마루쌤. 우리 교실 환경정리부터 할까요?"


"연령 전체가 비슷하게 가는게 좋지 않을까요?"


"그럼 게시할 아이들 작품이랑, 환경구성 물품부터 같이 정해봐요."


자신의 의견을 내놓으면서도 머릿속은 각자의 교실을 그리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지 어떤 일부터 해야할지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보통, 생활주제가 같은 연령끼리 환경구성도 아이들 작품도 비슷하게 하는게 암묵적인 원칙처럼 여겨져 왔다.

비슷하게 시작해도, 결국은 각 반 담임 스타일에 맞게 변형되어 결과물은 다 달라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각자 다르게 가면 경쟁구도가 될 수도 있었다.

옆반보다 더 화려하게, 더 멋지게, 더 깔끔하게-

그것만큼은 피해야 했다.

같은 연령의 동료교사로써 겪을 수 있는 최악의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둥글게둥글게 흘러가던 회의에, 올해 초임인 시영이 뾰족하게 다른 의견을 내놓았다.


"선생님들. 나는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요?"


"??"


"나는 아이들 작품 생각해 놓은게 있어요."


"아...그럼 시영 선생님은 원하는걸로 해도 좋아요. 무조건 똑같이 하자는 얘기는 아니었으니까요."


마루, 지현, 윤아는 서로 눈짓을 하며 더이상 말하지 말자는 신호를 보냈다.

올해 초임인 시영은 엠지세대의 표본이자 그 자체였다.

협의점을 찾아가나- 싶은 회의에 꼭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연령끼리 함께 해야 하는 일에도 꼭 혼자만 따로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물론 존중해 줘야 하는 일이었다.

교사로서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면서도 집단의 협의점을 맞춘다는건-

마루에게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울 만큼 어렵게 느껴졌다.


"시영쌤. 우선 해보고 혹시 힘든 일 있으면 얘기해요."


마루, 지현, 윤아는 환경구성과 아이들 작품을 비슷하게 하기로 결정했고

시영은 결국 혼자 원하는 것을 하기로 했다.




"마루쌤, 이건 해도 너무한거 아니에요?"


"지현쌤 진정해요. 시영쌤이 일부러 그러는건 아닐꺼에요."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아요."


"내가 시영쌤하고 잘 얘기 해볼게요."


항상 차분하고 침착하던 지현이 왠일로 잔뜩 흥분해 있었다.

연수실 밖에서 마루는 지현을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빼고 있었고,

연수실 안에서는 영문을 모르는 시영이 자신의 일만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었다.


"연령끼리 같이 가는걸, 혼자 하는 것 까지는 좋아요.

그래도 우리가 자료를 공유하면 자기도 있는건 나눠줘야 하는거잖아요.

어떻게 남의 자료만 쏙 빼먹고, 자기껀 하나도 안풀어요?"


마루도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마 경황이 없어서 그러는걸 꺼에요. 정신없이 바쁘다 보니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할 수도 있어요. 아직 초임이잖아요. 내가 얘기 해볼게요."


이제 학부모 공개수업이 다음주로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

다같이 초과근무를 하고 있을 때 사건이 터졌다.


아이들의 작품을 벽면에 게시하고, 그림들을 오리고 붙여서 환경구성을 마무리 해가던 중이었다.

마루, 지현, 윤아, 시영 네명은 서로의 반을 돌아보기로 했다.

각자의 반에서 좋아보이는건 공유하고, 서로 조언도 해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역시나 비슷하게 시작했어도, 각자의 손길이 닿으니 전부 다른 교실이 되어있었다.


'오, 이건 예쁘네. 마루쌤한테 자료 공유해달라고 해야지'


지현이 마루의 교실 벽면에 붙어있는 그림자료를 보며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교실.

시영의 교실에 들어갔을 때 지현은 놀랄 수 밖에 없었다.

혼자만 다른 세상이었다.

화려함의 극치.

여백의 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교실.

지현이 태어나서 처음 보는 교실 모습이었다.


뜨악 스러운 가슴을 진정시키고 출입구부터 찬찬히 하나하나 살펴보던 지현이

한바퀴를 다 둘러본 후에는 결국 폭발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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