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끝난 뒤

by maru

하루만에 세상은 빛을 바꾼다.

어제까지만 해도 마루를 짓누르던 부담감과 압박감이었던 일이 이제는 과거가 되었다.

세상이 회색빛으로 보일 정도로 정신없던 하루하루에

이제는 다시 여러가지 색이 입혀졌다.

돌덩이 같이만 했던 기분도, 이제는 놀이동산 속 어린아이 손에 쥐어진 풍선 같았다.


고작 하루.

학부모 공개수업을 기준으로 마루의 세상이 바뀌었다.


"으아!!!!!!!!!드디어 끝났다!!!!!!!!"


"고생했어요. 선생님들!!!!"


아침부터 연수실 공기가 들떠있었다.

공기중에 하트도 보이는 것 같았고 꽃모양도 보이는 것 같았다.

공기가 살랑살랑거렸다.


원래대로 라면 눈밑에 검게 그림자를 드리우고 출근 했을 선생님들이었지만,

오늘만큼은 그 누구보다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오늘이었다.

아이들이 사고를 쳐도 용서가 되는날.

선생님들도 고생했겠지만, 아이들도 긴장했었을 시간-

오늘 하루만큼은 어떤 장난도, 실수도 허용해 줄 수 있는 날이었다.




공개수업이 끝나고 물렁해진 마음은 교실에서도 계속 되었다.


"선생님!!! 영우가 또 장난감 뺏었어요!!!"


"응~"


평소같았으면 '또? 또 영우가?' 라며 목소리 톤부터 올라갔을 상황이었지만

물렁해진 마음만큼 마루의 눈도 흐려져 있었다.


"영우아~ 친구꺼 뺏으면 안되겠지요~?"


맑은 눈의 광인처럼 웃으며 말하는 마루가 오히려 섬찟한 영우였다.


"선생님!! 승우가 물 엎지르고 도망갔어요!!"


물통을 모아놓는 자리에 물이 흥건하다 못해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래~? 닦으면 되지~"


마루는 웃으며 휴지를 들고 다가갔다.


"선생님!! 태민이가 선생님 컴퓨터 다 만져놨어요."


아이들과 활동하기 위해 켜놓은 화면들이 모두 꺼져 있었다.


"그래~? 선생님이 다시 해놓으면 되지~"


마루는 웃으며 컴퓨터 화면을 하나하나 다시 켰다.


마루는 한바탕 큰 행사가 휩쓸고 간 자리에서 오늘하루 부처님이 될 수 있었고,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채 웃고만 있는 마루의 섬뜩한 얼굴을 봐야 했다.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아이들과의 하루를 보내고 연수실로 돌아왔다.

그때 지현이 아침의 기운과 달리 한숨을 푹- 내쉬며 마루에게 말했다.


"마루쌤. 역시 아무리 잘해도 꼭 이런 사람들이 있네요."


"왜요? 무슨일인데요?"


"어제 학부모 공개수업 마치고 만족도 조사지 제출하고 갔잖아요.

반응이 어땠는지 보려고 꺼내 봤는데, 안좋은 말도 있어서 속상해요."


"무슨 말들인데요?"


- 우리 애가 잘 놀지를 못하네요.

- 우리애도 발표했으면 좋았을텐데 아쉬워요.

- 시간이 빨라서 정신이 하나도 없었네요. 그래도 수고하셨습니다.


"참...'그래도'수고하셨습니다-는 또 뭐에요?"


그때 막내 시영이도 거들었다.


"지현쌤, 우리반 엄마들도 그래요. 대부분 고생하셨다, 감사하다- 하는데

꼭 한두명이 불만이네요."


두사람의 말을 조용히 듣고있던 마루가 입을 열었다.


"알잖아요.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는거. 항상 그래왔는데요 뭐.

아무리 가정통신문을 여러차례 보내도 준비물 안챙겨서 보내는 학부모도 있고,

안내를 몇번을 해도 무슨 행사가 있는지도 모르는 학부모도 있어요.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몇명은 관심도 없고, 몇명은 불만이에요."


지현이 맞장구 쳤다.


"하긴, 작년에 그렇게 행사를 많이 했는데도 연말에 뭐 했는지조차도 모르면서

유치원에 불만만 쏟아놓은 학부모님도 계셨잖아요."


마루가 이어받았다.


"하느님한테도 안티가 있고 유재석한테도 악플이 달려요.

우리가 뭐라고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겠어요.

불만 있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은 안그렇지 않아요?"


지현이 다시 웃음을 띄우며 대답했다.


"맞아요. 한두명 때문에 그걸 놓쳤네요.

사실은 '고생하셨다, 수고하셨다, 감사하다'는 분들이 대부분이에요."


"이럴때는 그냥 고생했다는 말한마디가 참 귀하네요"


결과가 어찌되었든, 마루와 선생님들은 모든걸 쏟아냈고 하얗게 불태웠다.

그걸로 어떠한 미련 한조각도 남김 없이 털어버릴 수 있었다.


지금 선생님들에게는

최선을 다한 사람들만이 느낄 수 있는-

모든게 끝난 후 결과와 상관없는 해방감만이 남아 있었다.





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