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왔다.
고생끝에 낙이 온다고 했던가.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고 했던가.
지난주 푹풍같은 학부모 공개수업을 끝내고 나니, 마루가 가장 좋아하는 시기가 왔다.
D-22
이제 방학만을 기다리며 하루하루 지워나가는 시기.
막상 방학이 시작되면 또 하루하루 지나가는게 아쉬워서,
개학이 다가오는게 무서워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겠지만-
그런 이유로 방학보다 방학 전을 더 좋아하는 마루였다.
짧다면 짧을 수도 있고, 길다면 길 수도 있을 3~4주.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설레임으로 무언가를 기다릴 수 있는게 좋았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지현에게서 콧노래가 절로 흘러져 나왔다.
"지현쌤 이제 살만 한가봐요? 난 진짜 공개수업 준비하면서 지현쌤 죽는줄 알았잖아."
"마루쌤~ 놀리지 마요. 부담이 커서 그랬다고요.
이제 큰 행사도 없고 방학만 기다리면 되잖아요~"
"맞아요. 우리는 진짜 방학 없으면 죽을지도 몰라요."
연수실에서 마루와 동료들이 들뜬 마음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름방학을 얘기하고 있을 때였다.
"우리는 방학때 죽어나가요."
연수실에 물건을 가지러 들어온 방과후 선생님이 마루의 무리를 지나가며 뼈있는 말을 던졌다.
목청을 높이거나 공격적인 말투가 아니었음에도 왠지 모르게 말끝에 가시가 있는 것 같았다.
'너희가 쉴때 우리는 일한다.'
는 의미의 말이었다.
마루는 아차! 싶었다.
유치원 구조상 교육과정 교사들이 방학에 들어가면
방과후과정 강사는 오후에만 들어가면 되는 교실을 오전부터 오후까지
내내 들어가서 아이들과 함께 있어야 한다.
말그대로 누군가에게는 천국의 시간이 누군가에게는 지옥의 시간이 될 수도 있는 거였다.
방학을 목전에 두고 좋아하는 자신들의 모습이 아니꼬워 보였을 수 있겠다- 싶었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연수실을 덮었고, 그 사이 방과후과정 강사는 찾던 물건을 가지고 연수실을 나갔다.
문을 닫는 소리도 묘하게 반항적이었다.
- 방학하면 뭐가 제일 하고 싶어요?
- 방학때 여행 갈꺼에요?
방학을 어떻게 보낼껀지 물어보려던 질문이 목구멍으로 다시 삼켜졌다.
눈치를 살피는 마루를 보며 지현이 입을 열었다.
"마루쌤. 눈치보지 마요~ 그동안 고생했으니까, 방학 정도는 좋아할 수 있는거잖아요."
"맞아요. 너무 마음쓰지 마요. 방과후선생님도 마음은 그게 아니었을 꺼에요."
마루는 지현과 시영의 말에 웃으며 대답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요? 우리는 우리 일이 있는거고, 저들은 저들의 일이 있는거잖아요.
괜히 분란 일으키기 싫어서 가만히 있었던거에요.
우리가 방학까지 눈치 봐가면서 해야 하는건 아니잖아요."
자신 때문에 다른 선생님들까지 방과후 선생님들 눈치를 볼까봐,
괜히 마음쓸까봐 마루는 일부러 더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했다.
하지만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마루 자신도 마음이 좋지는 않았다.
그동안 힘들게 고생했을 선생님들의 꿀같은 방학의 시작이,
방과후에게는 오히려 고생이 시작이 될 것이었다.
세상은 신기했다.
알다가도 모를일로 가득했다.
누군가에게는 즐거운 기다림이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기다림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붙잡고 싶을 정도고 아쉬운 하루하루가
누군가에게는 어서 끝내고 싶은 날들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