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여름방학을 앞둔 가슴 두근거리는 시기이자, 방학 전 마지막 이벤트를 앞둔 시점.
학부모 공개수업을 이제 막 마치고 한숨 돌리려던 마루였지만,
연수실 책상에 붙어있는 '유치원 학사일정'표는 그런 여유는 어림도 없다는 듯이
빽빽하게 일정이 채워져 있었다.
방학 전 마지막을 하얗게 불태우기 위한 하루.
찌는듯한 더위.
숨막힐 듯한 습한 공기.
살이 타들어 갈 듯한 햇빛.
그 아래서 해야 하는 방학 전의 마지막 이벤트이자,
7월이 되면 각설이마냥 죽지도 않고 돌아오는 행사-
'물놀이' 였다.
웅성웅성-
등원부터 유치원에 들어오는 아이들의 말소리와 발소리가 남달랐다.
들뜬 마음에 유난히 큰 목소리와 과장된 행동, 장난들-
수영복, 수건, 갈아입을 옷들...
자기 몸만한 짐들을 잔뜩 이고 지고 오면서도 아이들은 들떠 있었다.
이런날은 선생님들도 속옷부터, 양말까지 갈아입을 옷을 준비해 와야 했다.
마루도 예외없이 갈아입을 옷을 챙겨서 출근한 터였다.
연수실 선생님들 모두 표정 없는 얼굴로, 바리바리 싸온 짐을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오늘 하루가 얼마나 바쁘고 정신없게 흘러갈지, 그 피곤의 정도가 예상되는 하루였기 때문이다.
피곤이 예상되는 하루는 시작부터 피곤 그 자체였다.
마루의 잔소리와 약속은 교실부터, 물놀이터에 오는 순간까지 반복 되고 반복 되었다.
1. 친구 얼굴에 물총 쏘지 않아요.
2. 뛰어 다니지 않아요.
3. 위험한 행동은 하지 않아요.
.
.
.
지키지도 않을꺼면서 말로는 약속을 곧잘 따라하는 아이들이었다.
더이상 따라하기도 지칠 정도로 약속에 약속을 거듭하며 마루는 아이들과 밖으로 나왔다.
바깥에 나오니 눈앞은 온통 시원한 파란색 뿐이었다.
물총놀이, 비눗방울 놀이, 간이 수영장...눈으로 보이는 풍경은 시원했지만,
정작 마루의 몸은 타들어갈 듯이 따가웠다.
아이들은 전투를 시작하는 군인처럼
"와아아아아아!"하며 원하는 물놀이 구역으로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넘어지지 않을까, 다치지 않을까 신경을 바짝 곤두세워가며
아이들 놀이를 하나하나 관찰을 하던 중이었다.
"앗! 차가워!"
누군가 마루를 향해 물총을 쏘았고, 마루의 옷은 순식간에 물총이 지나간 흔적을 남기며 젖어가고 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영우였다.
영우는 물총을 마루를 향해 겨누며 해맑게 웃고 있었다.
'훗! 걸렸군. 이때다!'
마루는 비상용으로 준비 되어있던 큰 바가지를 집어들고 물을 가득 펐다.
그리고 영우를 향해 달려가며 영우에게 물을 뿌렸다.
선생님의 반격에 영우는 당황했다.
"이렇게까지 할줄을 몰랐는데"라는 벙찐 표정으로 마루를 보던 영우는 곧,
다시 달려가서 열심히 물총 안에 물을 채웠다.
그리고 마루의 윗옷에 이어 바지까지 흠뻑 적시기 시작했다.
이제 마루와 영우는 전쟁이었다.
마루는 바가지로 열심히 물을 퍼서 영우에게 뿌렸고,
영우는 질 수 없다는 듯이 물총으로 마루에게 쉼없이 쏘아댔다.
밖에서 보면 아이들을 위해 준비한 물놀이 인지, 마루를 위해 준비한 물놀이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속옷까지 흠뻑 적셔가며 마루는 아이들에게 물을 뿌려댔다.
사실, 아이들의 웃음에 가려 마루의 의도는 숨을 수 있었다.
이건, 말 안듣는 금쪽이들에 대한 마루의 소심한 복수이기도 했던 것이었다.
물놀이를 마친 마루네 반은 바로 점심시간이었다.
지원 인력의 도움으로 아이들은 수건으로 머리까지 모두 털고
뽀송뽀송하게 옷을 갈아입었지만, 마루는 미처 옷을 갈아입을 시간이 없었다.
물이 뚝뚝 흐르는 옷을 갈아입지 못하고,
심지어 짜내지도 못하고 온몸으로 흐르는 물을 그림자처럼 달고 다니며 아이들과 밥을 먹었다.
그렇게 젖은 옷을 입고 하루종이 보낸 마루는 연수실로 돌아와서야
겨우 옷을 갈아입을 수 있었다.
연수실-
마른 옷과는 달리, 아직 말리지 못한 머리에
지워진 화장, 헬쓱해진 얼굴들로 선생니들은 자리에 앉아있었다.
다들 영혼이 물놀이 하나에 영혼이 빠져있었다.
불쑥 지현이 말을 꺼냈다
"그런데요..."
"????"
"우리 이거 왜 해요?"
"그러게요. 요즘 주말마다 수영장 가고, 계곡이며 바다며 놀러갔다 오던데,
유치원에서까지 굳이 이런걸 해야하는지 모르겠어요."
아이들과 신나게 놀고 들어온, 심지어 평소에 선생님 말을 듣지 않던 아이들에겐
물총으로, 바가지로 복수까지 해주고 돌아온 마루는 머쓱해졌다.
선생님들이 내년부터는 없애자는 말을 여기저기서 꺼내기 시작하고 있었다.
마루는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했다.
'아까 영우한테 한번 더 물을 뿌렸어야 했는데....
다음번에는 더 큰 바가지로 복수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