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다

by maru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이었다.

잠을 잔 것도 아니었다.

무언가 생각에 잠긴것도 아니었다.

말 그대로 눈을 감았다가 떴을 뿐이었다.

찰나의 깜빡임.


그 사이에 꿈이라도 꾼 걸까?

잠시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경험을 한 것일까?


눈을 감기 전에는 7월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9월이었다.

그렇게 마루의 여름방학이 지나갔다.


소음이 없는 고용한 순간들이 지나가고

다시 북적북적 아이들의 소움과 소란스러움에 둘러싸여 있었다.




분명 어제 이시간에는 혼자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면서 옆에 향이 가득한 커피를 두고

좋아하는 책을 읽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찐한 파랑의 하늘과 뭉게구름과는 다르게 밖은 찌는듯한 찜통 더위일 터였다.

바깥의 날씨를 상상하며 에어컨 바람 밑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는데...

분명 24시간도 안된 일이었는데 전생같이 느껴졌다.


불과 어제의 일을 회상하고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린 마루는 밑을 바라보았다.

마루의 바지를 붙잡고 늘어지는 아이들,

색종이를 들고와 접어달라는 아이들,

1초마다 들리는 "선샘미" 부르는 소리, 각자 자신의 얘기를 하고 싶어서 순서없이

몰려드는 바람에 목소리가 섞여 많은 얘기를 듣고있지만 누구의 얘기도 들을 수 없는 순간들-


개학이다.

다시 마루의 선샘미가 시작되었다.


2학기 목표 : 우리 아이들에게 친절하기!


개학 전날 으레 그러하듯, 어제 잠을 못자고 뒤척인 끝에 내린 결론이었다.


'2학기에는 화내지 말기!

조금 더 웃어주자.

조금만 더 친절하자.

조금 더 예쁜 말을 많이 해주자.

아이들의 얘기를 조금만 더 귀담아 들어보자.'


거창한 목표는 아니었지만, 17명의 아이들과 부대끼며 생활하다보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놓치기 쉬운 일들이었다.

다행히 개한 첫날인 오늘- 고요했던 어제와는 다르게 소음가득한 상활 속에 적응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잘 실천되고 있는 중이었다.




다가오는 개학의 두렴움이 뭐였냐는 듯, 방학동안의 공백이 무색하게

어제 했던 일과처럼 하루를 보내고 연수실에 앉아있는 마루였다.


짧았던 방학.

찰나의 방학만큼 2학기도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갈 것이었다.

그렇게 또 짧은 겨울방학이 오고,

다시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가는 1학기,

짧은 여름방학과 또, 2학기....

그렇게 짧고 짧은 마루의 인생은 그 안에서 반복될 것이었다.


방학도, 출근하는 하루도 똑같은 인생이었다.

어느 순간만 소중하게 아끼고, 어느 순간은 미치도록 싫어하기에는

짧은 인생이었다.


방학을 마치고, 첫출근을 한 날.

짧은 순간의 소중함을 느낀 마루였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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