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앞의 한숟가락

by maru

먹이려는 자 vs 먹지 않으려는 자


오늘도 식판을 가운데 두고 마루와 시아는 대치 중이었다.

한입이라도 더 먹이려는 마루와 한입도 더먹기 싫은 시아-

마루는 문득 아이들이 부러웠다.


'누구는 먹고 싶어도 살찔까봐 억지로 참는건데, 밥을 먹기 싫다니...!!'


이런 순간에도 다이어트 걱정이 스쳐 지나가는 마루였다.


'어떻게 하지...'


먹기 싫어한다고 해서 밥을 건드리지도 않게 놔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굳게 입을 다물고 먹기를 거부하는 시아를 가만히 바라보며 마루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가 이내 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시아의 식판에 다시 놓아주었다.

그리고 천천히 말했다.


"시아야. 밥 다 안먹어도 돼. 한 숟가락만 먹어도 되고, 두 숟가락만 먹어도 돼.

시아가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보자."


어떻게든 먹이려고 했던 마루의 태도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목소리에 힘을 빼며 '다 안먹어도 돼'라고 얘기하는 마루의 말에

시아의 마음이 흔들린 것 같았다.


'다 안먹어도 돼.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보자'


다먹지 않아도 된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 된다.


시아의 시선이 잠시 웃어주는 마루의 얼굴을 향하더니 이내 식판으로 옮겨졌다.

시아가 천천히 식판 위의 숟가락을 집어 들었다.


잠시 후-


"선샘미! 반찬 더주세요!"

- 맛있는 반찬만 쏙쏙 골라 먹어버린 아이

"선생님! 그만먹고 싶어요."

- 입이 짧은 아이

"선생님. 밥 다 먹었어요."

- 마루가 밥을 한술 뜨기도 전에 이미 다 먹고 더 달라는 아이

"선생님. 후식은 한개씩만 먹는거에요?"

- 밥보다 후식에 더 관심이 많은 아이


천번의 '선생님' 소리를 듣는 시간-

오늘도 마루는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밥을 먹은게 채 1분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이리저리 선생님을 부르는 아이들의 식사를 지도하며 급식실 안을 바쁘게 돌아다닌 마루였다.


점심시간을 마무리 하려고 아이들을 스윽- 돌아보던 마루의 눈에 시아의 식판이 눈에 띄었다.

식판이 깨끗했다.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밥을 다 먹었다.

마루가 눈앞에 숟가락을 들이밀며 '더 먹어보자'할 때는 미동도 없던 아이가,

'그래. 너 먹을 수 있는 만큼만 먹어'라며 돌아서니 밥을 다 먹은 것이었다.




그날 저녁.

오늘도 에너지를 유치원에 다 쏟은 마루는 집에 오자마자 쓰러지듯 소파에 몸을 기댔다.


퇴근 후의 삶.

오늘은 유산소 운동을 하는 날이었다.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2학기를 들어서며 스스로에게 했던 약속이었다.


하지만 피곤했다.

운동이고 뭐고 손하나 까딱할 힘이 남아있지 않은 것 같았다.


'오늘은 제낄까...운동 하루 더 한다고 내가 장원영 되는 것도 아니고...!'


쇼파에 누워 운동보다 힘든 나와의 싸움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운동을 하려는 마루 vs 운동을 하지 않으려는 마루


그때였다.

낮에 시아에게 해준 말이 문득 마루의 머리 속을 스쳐지나갔다.


'오늘은 1시간 다 채우라고 안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

10분을 해도, 20분을 해도 괜찮으니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마루는 주섬주섬 운동복을 갈아입었다.


'오늘은 딱! 10분만 하자. 10분만 몸 좀 움직이고 얼른 쉬자'


마루는 실내 자전거 위에서 패달을 밟기 시작했다.

정해진 10분이 채워지자 오히려 피곤이 사라졌다.

'10분만더 할까?'

20분이 되자 욕심이 생겼다.

'이왕 하는김에 조금만 더해서 30분 채우지 뭐'


그렇게 마루는 40분을 자전거 위에서 보냈고, 마루와의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


먼 길을 갈 때 저- 멀리 목적지를 보면 처음 한걸음을 떼기가 무섭다.

하지만 눈앞의 한걸음만 생각하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저 멀리있는 도착지가 아니라, 지금 내가 봐야할 건 내 눈앞에 있는 한걸음 이었다.

그렇게 가다보면 어느새 눈앞에 도착지가 나타나 있을 것이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자-

내 눈앞의 한걸음만 걷자-


오늘 마루는 마법의 주문을 알아냈다.

식판 가득한 밥이 아닌, 시아의 딱! 한숟가락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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