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마주치지 못한다.
할말이 있는듯 주변을 뱅뱅 돌기는 하는데, 직접 말을 걸어오지는 않는다.
자신이 여기있다며 존재를 알리려고 하지만 방법을 모른다.
그저 주변을 서성이다가 우연히 눈을 마주치면 눈을 피하고 한걸음 물러날 뿐이다.
이재인.
마루네 반에서 가장 조용한 아이였다.
'재인이 같은 아이들만 있으면 혼자서 서른명도 보겠다...'
방학 전 분위기가 들뜨는 시기에도, 날이 흐려 날궂이를 하는 날에도,
게임활동을 하느라 아이들의 흥분이 최고에 달했을 때에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아이였다.
어디선가 간지러운 시선이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면 항상 수줍은 표정으로
마루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피하는 아이.
등원후 가방검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혹시 약이 있는데 꺼내놓지 못한 아이가 있는지, 가정에서 회신보낸 가정통신문을
꺼내놓지 못한 아이가 있는지 하나하나 확인하는 일이었다.
'아이들은 프라이버시가 없는 것인가...'
남의 물건에 손대지 않아요-
라고 가르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아이들의 가방을 뒤적거리며
빠뜨리거나 꺼내놓지 못한 준비물을 확인하고 있는 마루였다.
그때였다.
'마루 선생님 사랑해요'
재인이의 가방에서 편지가 눈이 띄었다.
순간, 마루는 망설였다.
'왜 안줬지? 내가 먼저 아는 척을 해볼까? 재인이가 당혹스러워 할까?'
꺼내놓기에는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고백인데, 본인이 꺼내기 전에
마루가 먼저 가볍게 남의 가방에 손을 대듯 도둑질 하는 것은 아닐까?
마루는 가방 속에 편지를 그대로 넣어둔 채, 못본 척 다시 조용히 가방문을 닫아주었다.
'도담반 이재인 보호자'
이제 막 퇴근을 준비하려던 마루의 핸드폰이 울렸다.
"선생님, 재인이가 선생님한테 편지를 썼는데 그대로 가지고 왔네요.
아무래도 부끄러워서 전달을 못했나봐요."
"어머님~ 저한테 쓴 편지가 맞았네요.
혹시나 해서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두었었거든요."
"내일 선생님이 재인이 가방 확인할 때 편지 가져가 주실 수 있으실까요?"
잠시 마루는 말을 멈췄다.
찰나의 순간 생각을 정리한 마루는 다시 입을 열었다.
"어머님. 혹시 집에서 재인이한테 선생님께 직접 편지를 줄 수 있도록 얘기해주실 수 있을까요?
저도 재인이가 편지를 못 꺼내면 그 때 먼저 아는 척을 해볼게요."
"그래주시겠어요? 감사해요 선생님."
마루는 재인이의 가방안에 덩그러니 놓였 있던 편지를 떠올렸다.
전달되지 않아 주인을 찾지 못한 마음.
한글자 한글자 정성스럽게 꾹꾹 눌러썼지만, 재인이에게도 선생님에도 있지 않았다.
전달되지 않은 마음은 엉뚱하게 가방 속에 남아 주인 없이 있을 뿐이었다.
다음날 아침 재인이는 비장한 표정으로 등원을 했다.
어깨에 맨 가방끈을 두손으로 꼭 쥐고 씩씩한 걸음으로 성큼성큼 들어왔다.
마루는 일부러 재인와 눈을 마주치며 평소보다 더욱 활짝 웃어주었다.
'용기를 내!!!'
마루만의 소리 없는 응원이었다.
그럼에도 재인이의 비장한 표정은 풀리지 않았고 오히려 눈에 힘을주어
마루를 바라보는 바람에 노려보는 것 같이 느껴질 정도였다.
털썩-
재인이가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가방을 풀어 내려놓고 가방문을 힘차게 열었다.
그리고 그안에서 어제 마루가 못본 척 지나쳤던 편지를 꺼냈다.
마루 선생님 사랑해요.
저벅저벅 걸어와 마루앞에 힘껏 손을 뻗어 내민 편지 안에는
비뚤비뚤한 글씨로 종이 한가득 크게 쓴 글자들이 있었다.
큰 마음을 먹어서 그런지 사랑고백 편지를 주면서도 표정은 계속해서
마루를 노려보는 것만 같았다.
"푸흡"
마루는 웃음이 나왔다.
혹시나 오늘 재인이가 용기를 내지 못하면, 편지를 주지 못하면
마루는 또 배우가 되어 연기를 해볼 예정이었다.
"어머! 이게 뭐지? 재인아~ 혹시 이거 선생님 주려고 쓴 편지야?"
신대륙을 발견한 듯 한껏 들뜬 목소리로 처음 보는 물건인 마냥,
재인이에게 먼저 편지의 존재를 알리려고 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고마워 재인아~ 선생님 주려고 편지 쓴거야? 선생님이 잘 간직할게"
마루가 지을 수 있는 가장 환한 웃음을 지으며 편지를 받아들고
재인이를 안아주었지만 재인이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아마 오늘은 재인이 인생에서 손에 꼽을만한 용기를 쥐어짜낸 하루였을 것이었다.
마음은 전달하지 않으면 가방 속 편지처럼 그자리에 있을 것이다.
재인이는 오늘 4년 인생에서 가장 큰 용기를 내어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을 알아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