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을 하고 대답을 한다.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한다.
상대방의 말을 자르지 않는다.
순서를 지켜 이야기를 한다.
주제에 맞는 이야기를 한다.
흔하고 평범한 것들, 당연한 것들이 무엇보다 지키기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사실 어른들에게도 어려울 수 있는 이 대화의 기술이,
아이들에게는 그 무엇보다 지키기 힘든 일이었다.
수업시간-
오늘은 주제'우리나라'에 맞추어 옛날 물건에 대해 알아본 날이었다.
마루에게조차 이름도 쓰임도 낯선 물건들- 심지어 이제는 실제로 보기도 힘든 물건들을
'옛날옛적에 사용했던 물건이란다' 하며 알려주는건 아이들에게도 생소할 따름이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오늘 선생님이랑 무엇을 알아보았죠?"
'우리나라의 옛날 물건들이요!' 예상되는 마루의 대답과 달리
"오늘 이서랑 놀았던게 생각나요."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
'아니, 그게 아니라...'
"옛날 사람들이 쓰던 물건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지요?"
'가마랑 짚신이요!' 를 예상했던 마루의 기대와 달리
"오늘은 엄마랑 동생이 보고싶었어요."
라고 대답하는 아이들.
순간 윽-하는 짧은 신음과 함께 뒷목을 잡을 법도 하지만, 마루는 명연기자다.
"그랬구나.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구나"라고 웃으며 마무리 한 후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야 했다.
"오늘 알아봤던 옛날 물건들 중에 어떤게 제일 생각나나요~?"
'왜 질문을 생각을 안하는거야!!!!!!'
수업시간 마다 같은 질문을 계속 하는 마루-
그때 마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쏟아내는 아이들-
'나 저거 봤어요! 저기 가봤어요! 저거 이름은 OOO인데, 지난번에 박물관 갔을 때 봤어요!"
자기 지식을 앞다투어 뽐내고 싶어하는 아이들...
오늘도 우당탕탕 수업을 마무리 하려던 그때 였다.
"맷돌이요! 거기에다가 브로콜리도 넣고 갈아보고 싶어요!"
마루의 눈이 순간 반짝였다.
대답을 한 아이에게 반짝이는 눈빛을 보냈다.
마루의 질문을 듣고 있었다.
마루의 질문을 듣고, 알맞은 대답을 생각해냈다.
자기가 하고싶은 말이 아닌, 상대방이 들어야 하는 말을 했다.
그자체로도 기특했다.
목소리의 주인공을 따라가니 영우였다. 다른 아이들보다 유독 덩치가 큰 영우.
웃으면 통통한 볼살이 올라가는 바람에 눈이 접히며 눈웃음을 웃는 아이였다.
오늘따라 영우 주변에 반짝이를 뿌려놓은 듯 빛나보였다.
영우의 해맑은 웃음을 보니 지난달 수업시간에 있었던 황당한 일이 떠올랐다.
마루는 자기도 모르게 '풉'하고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마루를 바라보았으나, 마루는 명연기자였다.
"와~ 영우는 맷돌에 브로콜리도 넣어보고 싶구나. 그러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영우 덕분에 무사히 수업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자유놀이 시간-
아이들의 놀이를 관찰하고 있다가 신나게 놀고있는 영우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웃어주며 '나는 신경쓰지 말고 계속 놀아'라는 신호를 주었는데
갑자기 영우가 저벅저벅 다가왔다.
"선생님, 그런데 아까 왜 웃었어요?"
기억력이 비상하다.
"글쎄~? 영우가 한 대답이 너무 귀여워서 그랬나봐"
영우는 대답이 마음에 들었는지 곧 자리로 돌아가 다시 놀이를 시작했다.
'미안...그게 아니라-'
마루는 지난달 이야기나누기를 떠올렸다.
'여름'을 주제로 이야기 나누기를 하고있는 중이었다.
다른날과 마찬가지로 아이들은 자기 하고싶은 말만 하고 있었고,
마루는 같은 질문을 인내심을 새겨가며 반복중이었다.
"여름에 볼 수 있는 동물들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선생님! 저 지난주에 수영장 갔었어요!"
"저도요! 아파트 놀이터에서 친구 만났었어요"
오늘도 역시나 아이들은 동문서답을 하며 질문과 상관없이 하고 싶은 말들을 쏟아내는 중이었다.
그때,
"매미랑 개구리랑 돼지요"
마루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을 듣고, 알맞은 대답을 했다!
마루의 눈이 반짝이며 영우를 향했다.
항상 웃고 있는 영우의 눈이 더욱 휘어지며 대답했다.
"선생님 저 돼지고기 엄청 좋아해요!"
살짝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중에 바다에 사는 동물에는 무엇이 있었나요?"
"문어요. 문어는 엄청 맛있어요! 지난번에 엄마랑 바다갔을 때 먹어봤어요!"
"맛있었겠구나! 바다에는 또 어떤 동물들이 살고 있었지?"
"물고기요. 저 물고기 엄청 좋아해요! 그리고 오징어도 있어요! 엄마가 오늘 급식에 오징어 나온다고 했어요."
묘-하게 엇나가는 느낌이 있었지만, 어쨌든 질문에 알맞은 대답이긴 했다.
고개를 살짝 갸우뚱 하며 질문을 이어나갔다.
"그럼, 바다에서 사는 동물 중에 선생님이랑 알아본 것 말고 또 아는게 있나요?"
역시나 영우가 손쩍 들었다.
"소라게요!!!!!"
생각지 못했던 신선한 대답에 마루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그래! 바다에는 소라게도 사는구나! 그런데 왜 소라게가 생각났나요?"
영우의 집중력에 들뜬 마루가 웃으며 질문을 했다.
"왜냐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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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소라게는 못먹어봤거든요."
오늘도 이마를 탁! 짚으며 이야기나누기 시간을 마무리 하는 마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