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번의 월요일

by maru


날씨가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다.

아니, 변해가는 날씨에 적응하기도 전에 겨울이 되어버렸다.

무의식적으로 누르는 유튜브의 '광고 건너뛰기' 처럼 가을이 스킵 되었다.

'가을옷 꺼내야지-' 하는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바쁘게 겨울부터 준비하게 생겼다.


마루는 이맘 때 쯤을 좋아했다.


날씨가 쌀쌀해지고 아이들의 옷이 두꺼워지는 계절.

아침마다 그 두꺼워진 옷에 바깥의 찬공기를 잔뜩 묻히고 교실로 들어오는 계절.

유치하고 귀여운 캐릭터의 장갑, 목도리, 모자를 벗으면

김이 모락모락 날 것 같이 아이들이 더 말랑해지는 계절.

아침의 찬공기를 마시고 오는 아이들을 위해

일찍 출근해서 교실 바닥을 뜨끈하게 만들어 놓아야 하는 계절.


아이들과 바닥에 앉아 놀다보면 따뜻한 바닥에 가끔씩 노곤노곤해지기도 하는 계절.

첫눈을 기다리며 눈싸움을 하고 눈사람 만들 생각에 설레는 계절.

'겨울'하면 생각나는 것들- 고구마, 호빵, 붕어빵 등이 슬슬 거리에 생겨나는 계절.


마루는 눈, 코, 입, 귀, 피부 온몸으로 겨울이 되어가는 이 과정을 느끼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이맘 때 쯤이 되면 루틴처럼 하는 일이 있다.

"캐롤"

크리스마스 특유의 들뜬 분위기를 더 오래 많이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출근길마다 일부러 캐롤을 들으며 출근을 하곤 했다.

마루에게는 10월 말부터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시작이었다.


이토록 좋아하는 계절이지만 그 이면에는 다른 세계가 있었다.

마루의 설레는 마음과 기분은 현실과 별개라는 듯이 일이 봇물처럼 터져나오기 때문이었다.


신입유아, 생활기록부, 반편성, 졸업식, 예비소집...

별일 아닌것 같지만 굵직하고 연중 손꼽히는 중요한 일들이 연말에 몰린다.

파워 J인 마루는 뭐든 미리 준비하고 눈앞에 갑자기 닥치는 일을 극혐했지만,

위에 나열된 일들은 미리 할 수도 없는, 말그대로 이 시기가 되어야만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들숨에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 다가오는 연말, 크리스마스까지 생각에 꼬리를 물며 두근대던 가슴이,

10월 말부터 몰리는 업무생각에 쿵-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연수실의 아침풍경도 슬슬 달라졌다.

선생님의 옷차림이 달라졌고, 아침마다 타먹는 커피가 아이스에서 따뜻한 음료로 바뀌었다.


아침부터 날라온 교무부장님의 공지에 선생님들은 올것이 왔다는 눈치였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작은 탄성과 한숨이 섞여 나오기 시작했다.


'11월 중으로 생활기록 작성 해주세요.

반편성은 12월 전에 미리 완성해주세요.

이제 곧 신입유아 모집이 시작됩니다. 각장 업무분장 확인해 주세요...'


메신서 하나가득 빽빽하게 해야 할 일들이 써있었다.

막내 지현이 입을 열었다.

첫마디 앞에 한숨을 단 채 였다.


"휴...이제 곧 11월이네요.

할일은 점점 많아지고, 방학까지는 너무 까마득한 것 같아요."


윤아가 옆에서 맞장구 쳤다.


"겨울방학...60일정도? 남았나? 그런데, 문제는 그전에 해야 하는 일이

3월부터 지금까지 합친일보다 많다는 거야..."


두달은 과연 짧은 시간일까, 멀고도 긴 시간일까?

10월부터 방학만을 기다리는 12월까지의 두달은 세상에서 가장 긴 두달이겠지만,

12월, 방학이 시작된 후 2월말 출근 전까지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두달이 될 터였다.


이때 마루가 마법의 단어 하나로 겨울방학을 코앞까지 당길 수 있었다.


"8번!!!"


"????"


"우리 이제 월요일 8번만 나오면 방학이에요!!!"


마루의 기적의 논리를 들은 선생님들은

방학을 앞둘 때마다 하는 마루의 얘기를 들으며 조금이나마 표정이 풀렸다.


8번의 월요일만 보내면 방학이다.

달력의 맨 앞칸에 있는 월요일을 하나씩 지우다 보면

연말에는 월요병도 어느정도는 치료가 될 수 있었다.


달력에서 가장 싫어하는 요일을 8번만 지우면,

남은 2025년도 눈코뜰새 없이 바쁜 업무와 함께 지워질 것이었다.

마루는 문득 생각했다.


'크리스마스를 오래 느끼고 싶어서 10월 말부터 캐롤을 들을만큼 좋아하는 시기.

교실의 온도부터 아이들의 두꺼워지는 옷까지 좋아하는 계절.

온몸으로 겨울을 느끼며 차가운 공기에도 설레일 정도로 좋아하는 연말 분위기.


하지만 고작 일때문에 이 시기가 빨리 사라져버렸으면- 싶은 시기.

월요일에 동그라미를 치며 지워갈 정도로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 시기'


마루는 헛웃음을 웃으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좋아하려면 싫어하는 것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된 마루는 철든 어른이 되어버린 느낌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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