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덜이 스머프

by maru


갑작스럽게 추진되고 있는 일이었다.


누구도 원하지 않는 것 같아 보이지만,

위에서는 우리가 누구보다 간절하게 원하고 있을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

받는 사람은 아무 느낌도 생각도 없는데, 주는 사람만 공치사가 민망할 정도인 일.

누군가의 생색과 공치사를 위해 실무를 담당하는 사람은 발바닥에 불이나게

뛰어다녀야만 하는 일.


전.체.회.식.


전체회식 공지가 떴다.

왜 관리자들은 교직원들이 회식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평소에 고기 한 번 못먹어본 사람들에게

'이것이 고기란다. 나 아니면 먹어보지도 못할 음식이니 마음껏 고마워 하렴'

이라는 태도의 관리자가 싫었다.


그리고 절망적인건 아무도 원하지 않고 고마워 하지도 않는 그 일을 위해,

한 두명의 공치사를 위해, 수십명이 되는 사람들의 고작 한끼를 위해 누군가는 희생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무원이라는게 10원 한푼이라도 장부와 영수증이 안맞으면 벌벌떠는 일이기에,

정확하게 몇명이 가는지, 얼마를 써야 하는지 미리 알아내야 했다.

식당을 알아보고, 영업시간과 몇명이 수용가능한지 주차는 몇대까지 되는지...

깐깐한 관리자에게 잘못 걸리면 전화나 인터넷으로 알아보는것으로는 어림없었다.

직접 사전답사를 가봐야 했고 (그까짓 밥먹는 일이 뭐라고) 어떤 메뉴들이 있는지

관리자들에게 미리 보고를 해야했다.


그리고 안타깝게 그 모든 일들은...마루의 몫이었다.


해도 티도 안나는 일.

임용고시를 볼 때는 배우지 않았던 일.

업무분장에도 없는 일.

심지어 원장님 원감님에게는 직접 하지 못하는,

회식가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볼멘소리를 들어주는 욕받이가 되어야 하는 일.


그래도 웃어야 했다.

하기싫은 일이라고 티를 내면 삼류다.

이제 마루는 10년차가 넘는 고경력의 여우이기 때문에 앞에서는 웃을 수도 있어야 했다.

원장님 원감님 앞에서도, 도대체 회식을 왜 하냐면서 애면 마루에게

짜증을 내는 사람들 앞에서도 마루는 웃어야 했다.


웃는 모습 속 마루는 투덜이 스머프 였다.

잔잔한 육두문자들이 목구멍이 하나 둘씩 걸렸다.

그래도 얼굴의 근육은 웃고 있었다.




회식날.


수십명의 교직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회식 하기 싫다고 죄 없는 마루에게 볼멘소리를 하던 사람들도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고기 앞이라서 그런건지, 관리자들이 앞에 있어서 그러는건지는 알 수 없었다.

앞에 놓인 고기를 굽고 웃으며 원장님, 원감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마루는 웃고있는 얼굴 뒤의 무표정으로 생각했다.


'참내, 이렇게 잘 먹을꺼면 나한테 회식하기 싫다고 지랄은 왜 한거야...'


수십명 밥 한 번 먹이겠다고,

원장님 면한번 세워주겠다고

2주 가까이를 이리저리 뛰어다닌 마루의 불만이 극에 달하는 순간이었다.


그때였다.


"마루부장님 고생 많았어요. 고마워요"


윤아였다.


같은 연령의 연수실을 쓰기 때문에 옆에서 준비하는 모든 과정을 봐온 터였다.

순간, 목구멍에 간당간당 걸려있는 육두문자들이 싹- 내려갔다.


"이거 준비하느라 애썼어요. 부장님 덕분에 다들 좋아하네요. 고마워요."


마루 안의 투덜이 스머프를 잠재우는 말이었다.

누가 알아주길 바란 적은 맹세코 없었다.

오히려 해야 하기에 하지만, 불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고 노동력이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수십명을 조율하기 위해 투표를 진행하고, 식당하나를 위해 이러저리 뛰어다니면서

알아보는 과정이 소모적이라고 생각했다.

관리자와 수십명의 직원 사이에서 고작 밥한끼 때문에 새우등 터지는 마루의 신세가 서럽기도 했다.


최근 일련의 이 과정과 심정들이 유나의 말 한마디에 다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슬슬 깨어나려는 투덜이 스머프에게 유나가 마취총을 훅- 쏘아준 것 같았다.


고작 밥한끼.

'누가 원한다고 고작 밥한끼 때문에 몇날 몇일을 갈려야 하는건가-'

라는 마루의 생각이 유나의 말 한마디 때문에

'마루 덕분에 수십명이 맛있는 음식을 앞에 두고 웃을 수 있는 시간' 이 되었다.


고작 밥한끼 때문에 온갖 고생을 했던 마루지만

고작 한마디 덕분에 그동안의 고생이 녹아버린,

고기냄새가 풍기는 저녁이었다.





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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