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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Dec 04. 2020

믿음과 진실의 복수성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종교와 영화 수업의 두번째 영화로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를 감상했다. 8년 전에 이 영화를 보러 영화관에 갔던 기억이 난다. 그때 같이 보러 가자고 한 친구는 이 영화에 대해서 ‘영상미가 좋대’라고 소개했고, 나는 3D 안경을 낀 채로 바다와 자연을 시각적으로 경험하는 측면에 집중했다. 다소 1차원적 시각에서 영화를 관람했던 그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수업 내용을 바탕으로 종교적 관점에서 영화의 의미를 해석하고자 했다. 같은 영화라도 어느 정도의 깊이로 받아들이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을 실감했다. 감독이 영화의 의미를 다층적으로 잘 구축했기 때문일 것이다.


과학적 이성이 지배하는 현대 사회에서 비이성적인 무언가에 대한 ‘믿음’을 가지기는 매우 어렵다. 그런데 때로 혼란스러운 점은, 비이성적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동시에 과학적 이성을 신뢰하는 듯 보인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진화론과 창조론의 문제를 살펴보자. 과연 오늘날 신을 믿는 모두가 절대적으로 창조론을 신뢰하고 진화론은 터무니없는 헛소리라고 생각할까? 만약 그렇다면 공식 교육과정에서 진화론을 가르치고 공룡 박물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왜 분노하지 않는가? 과학이 발견한 것들과 성경에 쓰여있는 내용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괴리가 존재하는데 신자들은 이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는 것인가? 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 두 가지 상반된 진실이 모종의 신비한 방식으로 공존하는 것 같다고 생각해왔다. 그런 면에서 <라이프 오브 파이>와 이번 수업은 내게 큰 시사점을 안겨주었다.



파이는 폴 벤느가 제시한 ‘진실의 복수성(구성적 상상력)’이라는 개념을 잘 활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본래부터 종교적 상징에 끌리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동시에 아버지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가지지 말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파이는 의심을 품고 있으면서도 그 의심을 자신의 믿음을 유지하고 강화하는 수단으로 활용하게 되었다. 파이는 맹목적 믿음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현실과 종교 세계를 교묘하게 넘나든다. 그는 종교를 통해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나 결코 종교적 세계관에 침잠하지 않는다. 파이가 종교적 세계를 상징하는 식인섬에서 잠깐만 머무르고 다시 현실 세계(거친 바다)로 돌아왔다는 점이 이를 보여준다.


파이가 들려주는 두 이야기는 진실의 복수성을 명확하게 표현한다. 파이 본인은 어느 쪽이 진실인지 알기 때문에, 두 이야기를 모두 믿는 것은 역설이고 자기모순이다. 그러나 그는 애초에 그러한 모순을 품고 살아갈 수 있는 인물이다. 어쩌면 이러한 모순, 즉 진실의 복수성은 우리의 삶에 꼭 필요한 요소일지도 모른다. 한때 나는 이 세계에 하나의 진실만이 존재하므로 두 가지 이상의 진실을 믿는 행위는 비겁하고 기만적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영화를 통해 기존의 생각을 되돌아보고 모순의 필요성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인간은 하나의 이야기만을 가지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 첫 번째 이야기(종교적 신화)와 두 번째 이야기(불합리하고 무질서한 현실)는 서로를 필요로 한다. 우리에게 복수의 진실이 필요하다면, 어느 쪽이 진실인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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