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잘 살 거예요. 영화 속에선 일이 늘 잘 풀리잖아요. 난 인간이에요. 아무리 마음이 흔들려도 난 현실을 택할래요.
종교와 영화 수업의 첫 번째 영화로 우디 앨런의 <카이로의 붉은 장미>를 감상했다. 우디 앨런의 작품으로는 <미드나잇 인 파리>, <매치 포인트>, <매직 인 더 문라이트>, <카페 소사이어티>, <원더 휠>을 보았다. 그의 1900년대 영화를 보는 건 처음이라 매우 흥미로웠다. 수업에서 영화와 종교의 연관성을 다룬 만큼 종교적 관점에서 영화를 감상하고자 했다. 가장 흥미로웠던 인물은 역시 톰 벡스터와 세실리아였다.
영화 속에서 튀어나온 톰은 이상적이고 동시에 비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는 현실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지 않고 ‘사랑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하며 세실리아에게 같이 카이로로 떠나자고 말한다. 그는 좋은 남자이고 인품이 훌륭하지만 한편으로는 현실 세계에서 무능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영화 속에서만 살아온 그는 현실 세계의 문제들을 해결할 줄 모른다. 이는 종교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부분이다. 영화 속에서 톰을 관찰하면 종교에서의 ‘신’을 연상시키는 부분들이 많다. 그는 성품이 훌륭하고 인류애와 원대한 이상을 품고 있는 완벽한 인물이다.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정직하고, 믿음과 용기가 있으며 낭만적이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기독교의 예수를 떠올리게 하는 장면들이 있다. 거리를 걸어갈 때 노숙자들이 톰을 보고 따라오는 장면, 사창가에서 일하는 여인들을 사랑으로 축복해주는 장면 등이 그렇다. 현실의 문제들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톰의 모습도 종교적 비유의 연장선에 있다. 신은 전지전능하고 완벽한 존재이지만 지금 바로 내 눈앞에 닥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마치 톰이 자동차 시동조차 다룰 줄 몰랐던 것처럼.
반면 세실리아는 낭만과 이상을 꿈꾸면서도 결코 현실을 망각하지 않는 인물이다. 영화 초반에 그녀는 현실도피적 성향이 강한 인물인 듯 보였으나, 더욱 비현실적인 성향의 톰이 등장하면서 오히려 세실리아가 현실을 일깨우는 역할을 하게 된다. 톰이 자신의 남편에게 ‘반칙’ 때문에 졌다고 말하자, 그녀는 ‘그래서 현실은 더 살벌한 것’이라고 대답한다. 길 셰퍼드와 톰 사이에서 한 명을 선택해야 하는 결정적 순간에서도 그녀는 현실을 택한다. 그녀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세실리아는 홀로 버려진 채 또다시 극장으로 들어가 영화를 본다. 처음에 그녀는 슬픈 표정이었지만 영화를 보다가 어느새 옅은 미소를 짓는다. 세실리아의 선택과 행동들은 종교가 일종의 환상에 가깝다는 걸 알면서도 비참한 현실 앞에서 종교에 기대었다가,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와 현실을 택하고, 또다시 현실에게 배신당하고 종교를 찾게 되는, 어리석지만 가장 인간적인 우리의 모습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부정적으로 바라볼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현실의 문제야 어떻든 종교는, 그리고 영화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에서 우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을 살아가게끔 하는 힘을 주는 것이다. 어리석어 보일지 몰라도 나는 기꺼이 세실리아처럼 또다시 영화관으로 들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