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루 Dec 04. 2020

폭력의 되물림

영화 <구타유발자들>

구타유발자들(원신연, 2006)은 너무나도 불편한 영화였다.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포스터와 장르 '코미디'라는 말에 속아 영화를 봤다가 극도의 찜찜함을 안고 영화관을 나왔다고 한다. 감독은 '폭력의 되물림'이라는 소재를 한국식으로 괴랄하고 엽기적으로 표현해냈다. 쿠앤틴 타란티노의 <펄프 픽션>을 본 적이 있는데, <구타유발자들>에서 폭력의 원초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방식은 타란티노를 연상케 했다. 그러나 그 처절함은 훨씬 더했다. 한국적 소재들이라 더 공감이 되기도 했다.


학창시절에 괴롭힘을 당했던 기억은 트라우마를 남기고 평생 그 사람을 괴롭힌다고 한다. 나도 초등학교 때 따돌림을 당한 적이 있다. 물리적 폭력은 없었으므로 아마 나보다 훨씬 힘든 기억을 가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 초등학교 때 친구들과의 관계로 너무 힘들었던 시기가 몇 번 있었다. 얼마 전에 문득 그때의 기억이 아직도 내 인간관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도 인간관계에 문제가 생기면 '나한테 뭔가 문제가 있나?' 라고 생각하며 필요 이상으로 심각해지고 자신감을 잃고는 하는데, 아무래도 어릴 적 기억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초등학생 때 잠깐 있었던 일이라도 그런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으니까. 어쩌면 평생 안고 가야 할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따돌림의 문제에 대해 고민하다가 12살의 나는 약육강식에 대해 생각했다. 나의 존재를 무언가로 증명하지 않으면 누군가는 나를 무시할 것이다. 그러니까 강자가 되어야 한다. 세상은 정글 같은 곳이니까. <구타유발자들>은 이 사고의 흐름을 정확하게 찔렀다. 답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따를 수밖에 없다는 걸. 폭력은 또다른 폭력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걸. 한석규의 대사처럼, 때린 사람은 경찰이 됐는데 맞던 새끼는 또 처맞는다는 걸.


영화에 대해 덧붙이자면, 한석규와 이문식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 이문식은 사극에서 감초 역할을 하는 배우로만 봤었는데, 이런 작품성 있는 영화에서 연기를 하는 모습을 보니 새로웠다. 이 영화에서 가장 연기를 잘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석규도 <8월의 크리스마스>를 보고 젠틀하고 선한 배우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에서 그의 연기는 더욱 충격적이었다. 누가봐도 악역이 잘 어울리는 배우보다 한석규 같은 배우가 악역을 하면 훨씬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한국판 조커를 찍는다면 그가 잘 어울리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왜 소설을 읽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