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9번의 일>
독서모임 선정 도서로 김혜진 작가의 <9번의 일>을 읽었다.
김혜진 작가는 소외계층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온 작가다. 예전에 읽었던 <딸에 대하여>는 성소수자 문제를 다뤘고, 이번에 읽은 <9번의 일>은 노동 문제를 이야기한다. 최근에 나온 신작 <불과 나의 자서전>도 재개발 문제에 관한 소설이라고 들었다. <9번의 일>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30대 여성인 김혜진 작가가 (전통적 관점에서 보면) 남성 가장이 담당하는 육체 노동에 관한 문제를 다루었다는 것이다. 자신의 위치와는 상관없이 다양한 사회적 약자의 이야기를 써내려고 하는 모습이 좋게 보였다.
또한 작가가 노조 취재를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음에도 일방적으로 노조 편을 들지 않았다는 점이 좋았다. 노조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면 자칫 정치적 성향이 담긴 글이 될 수 있는데, 이 소설은 집단 간 대립 구도에 집중하기보다는 그 안에서 소외되는 노동자 개인에게 초점을 맞췄다고 느꼈다. <딸에 대하여>를 읽고서도 사회적 문제와 개인의 이야기에 적당한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작가라고 생각했었다. 이번 소설에서도 그런 점이 빛나지 않았나 싶다. 물론 그런 점에서는 <딸에 대하여>가 조금 더 좋았지만 말이다.
다만 나는 개인적으로 주인공이 왜 그렇게까지 회사를 나오지 않으려고 버텼는지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 처음에는 당연히 경제적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 인물들과의 대화를 들여다보면 주인공에게는 기술이 있고 충분히 이직이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경제적으로도 당장 굶어죽을 만큼 힘든 상황은 아니었다. 주인공은 돈 때문이 아니라 다른 어떤 이유에서 회사에 끝까지 남아있고 싶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작가도 명확히 말할 수 없는 그 이유를 표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어떤 애사심같은 감정이었을까? 아니면 타성에 젖은 감정이었을까? 내가 속해있는 2030 세대에게는 퇴사나 이직이 트렌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친숙하기에 주인공의 판단에 동의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 세대는 조금 더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결과적으로 주인공이 점점 더 힘들어진 데에는 스스로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한다.
경영학은 기업의 입장에서 의사결정을 배우는 학문이다. 그러다 보니 나는 이번 책을 읽으면서도 기업의 입장을 계속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경기가 안 좋을때 직원을 해고하는 건 기업의 생존을 위해 내린 합리적 의사결정이다. 다른 사람의 일을 뺏을 수 있으니, 업무 범위를 넘어서 남을 돕지 말라는 팀장의 조언도 매우 합리적이다. 다만 효율성 측면에서 그렇다. 때로는 다른 가치를 위해 효율성을 어느 정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업의 의사결정 자체를 비난할 수는 없는 일이다. 기업은 자선단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시장경제 시스템 안에서 효율성을 추구하되 그 폐해를 법으로 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회대 분과 함께 <9번의 일> 발제를 준비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그분은 개인적으로도 노동 문제에 관심이 있으셨다. 나로서는 새로운 시각을 접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고, 또 내게는 당연한 사고방식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낯선 시각일 수 있다는 점을 새삼 깨달았다. 치우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경영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서 생각해보는 기회도 필요한 것 같다.
<9번의 일> 김혜진,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