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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루 Oct 29. 2021

10월의 크리스마스

가을의 생각

친구가 뜬금없이 면접준비 화이팅이라고 감귤 세트를 보내줬다. 먼저 연락하는 스타일은 아닌 친구라서 나는 무슨 일이라도 있는 줄 알았다. 흔히 남자들끼리 이런 경우는 여자친구와 헤어졌거나, 아니면 오히려 좋은 일이 있거나 그런 경우가 많다. 그래서 뭔일있냐고 물었는데 알고보니 진짜 생각나서 연락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꼬였나보다. 자취생이라 과일을 잘 못먹는데 정말 고마웠다. 솔직히 면접 준비가 그렇게 힘들거나 그런게 아니라서 머쓱하긴 하다. 뭘 하는것도 아니고 안하는것도 아니고 시간 때우는 느낌. 어쨌든 면접 끝나면 밥을 먹기로 했다.


면접스터디 가는길엔 스벅 커피를 테이크아웃 하는데, 어제 가니까 어느덧 크리스마스 분위기였다. 나는 이 무렵에 저 빨간색 데코와 자그맣게 놓인 트리가 너무 좋다. 11월로 들어서면 캐롤도 나올 것이다. 어째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는 시점이 점점 앞당겨지는 것 같다. 어쩌면 사람들이 사는게 팍팍해서 미리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홀리데이 분위기를 느끼고 싶어하기 때문 아닐까. 이유가 어찌됐든 나는 11~12월 연말까지의 기간이 너무 좋다. 날이 추워서 입김이 나오고 코트 입고 카페에선 캐롤이 흘러나오고, 연말에는 괜히 센치해져서 못보던 사람들과 연락도 하고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그런 모든 것들이 좋다. 그게 끝나고 1월 1일이 되었을 때의 공허함이란. 일단은 연말까지만 생각하련다.


최근에는 고등학교 친구들을 좀 만났다. 본가에 갔을때는 고3때 같은반이던 친한 친구와 카공을 했다. 같이 아는 다른 친구도 껴서 저녁을 먹고 술도 한잔 했다. 나 빼고 둘은 같이 성대라서 매우 친하다. 나로서는 약간 소외될 수 있는 구성이었는데, 둘만 아는 얘기는 거의 안해서 고마웠다. 토크 중 기억에 남는게 내 핸드폰이 오래된 걸 보고 친구가 왜 안바꾸냐고 물었는데 내가 "뭐 성과가 있어야 바꾸지"라고 말했다. 친구들 모두 이 말에 엄청 공감했다. 지금 나이대의 남자들이 특히 공감하는 정서인 것 같다. 졸업은 다가오는데 아직 취직이나 합격의 성과를 낸 건 없고, 이러다가 밥만 축내는 백수가 되어가는게 아닐까 하는 부담감에 '나를 위한 소비'를 하지 못한다. 나도 모아둔 돈이 없는 건 아닌데 합격 소식을 받기 전까지는 아이패드고 뭐고 못사겠다. 애초에 그럴 기분이 아닌가보다.


이틀 전에는 로스쿨 다니는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 저소서 첨삭을 부탁했을때 2~3차례 도와줬기 때문에 고마워서 내가 밥을 사기로 했다. 양꼬치와 꿔바로우, 그리고 고량주와 맥주를 섞어마셨다. 이 친구와는 고등학교 때 성적을 놓고 경쟁하던 사이라서 마냥 좋은 관계는 아니었다. 친하기는 했지만 서로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는. 이 친구가 로스쿨 입시가 잘 풀렸을 때 약간의 부담감을 느끼기도 했던 것 같다. 뭔가 나도 잘 되어야 할거 같은 느낌. 사실 그럴 필요는 전혀 없는거지만. 그런데 자소서를 도와달라고 했을 때 너무 정성껏 열심히 도와줘서 감동받았다. 물론 먼저 잘 끝낸 입장이기 때문에 그게 가능했을수도 있지만, 어쨌든 공부하기도 바쁠텐데 시간 내줘서 정말 고마웠다. 나도 그럴 입장이 되면 힘을 다해서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대학교 와서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고등학교 친구들은 확실히 뭔가 다른 느낌이 있다. 기본적으로 대학에서의 관계는 '인맥'이 밑바탕이 되는 느낌인데 고등학교 동창들은 보다 가족같다. 누군가 내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래도 같이 고생한 동창들을 먼저 도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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