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켄 시걸의 '미친듯이 심플'을 읽었다. 광고대행사 샤이엇 데이에서 스티브 잡스와 일을 했던 '을'의 입장에서 바라본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였다. 과거에 읽었던 자서전 '잡스'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스티브 잡스처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인물도 드물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출판사에서 영화 예매권 이벤트를 진행했다.
미친듯이 심플을 보고 그가 너무 그리웠습니다.
아이작의 '잡스'라는 자서전은 잡스의 관점이어서 경영자 마인드가 강했다면. 미친듯이 심플은 잡스와 함께 일했던 광고 제작사 CD의 관점이어서 직원의 관점에서 경영자의 생각을 들여다 볼수 있었습니다. 영화로 다시 본다면 어떨지 기대되네요. 까다로운 상사를 모시는 셀러리맨이라면 꼭 한 번 읽어보시길...
간단하게 읽은 느낌을 적어서 응모했는데 당첨이 됐다.
아이의 롤모델이 될 것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에 마음대로왕자를 데리고 가까운 상영관을 찾았다.
스티브 잡스라는 걸출한 영웅의 이야기이고 아카데미 각본상 후보에 올랐다는 소식이 들린다. 더구나 두명의 주인공은 여우조연상(케이트 윈슬렛), 남우주연상(마이클 패스벤더)에 노미네이트 됐다니 기대가 크다. 특히 아일랜드 출신인 마이클 패스벤더는 일반 미국 배우와는 느낌이 많이 다르다.
마이클 패스벤더는 최근에 엑스맨으로 유명해졌지만 예전 '제인에어'라는 영화에서 로체스터 역으로 강한 인상을 주었다. 최근에 활약이 많은 매력적인 배우다.
케이트 윈슬렛의 영화도 오랜만인듯하다. '타이타닉' 이후 잠잠하다가 '더 리더'를 기점으로 최근에 활약이 많다. 여자 배우는 나이가 들면 전성기가 지난다고 하는데 케이트 윈슬렛은 빼어난 외모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연기 변신이 돋보이는 배우다.
영화의 평가와는 별개로 위인전에서만 읽었던 스티브 잡스의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기회. 기대에 부풀어서 영화 소개를 읽고있는 마음대로왕자다. 과학자를 꿈꾸는 이 아이가 과연 이 영화를 어떻게 볼지 궁금해진다.
- 아빠 싸우는 장면 많이 나와?
- 응. 많을 꺼야. 사나운 사람이니까. 그런데 거의 말싸움일건데...
영화의 구성이 독특하다.
각 런칭을 앞에 두고 무대 뒤에서 벌어지는 개인사가 이야기의 중심이다. 그의 화려한 프리젠테이션을 보고 싶은 사람은 유투브를 참고하는 것이 좋겠다. 정작 프로젠테이션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쉽게 스티브 잡스의 위대함을 떠들지 않는다. 인간적인 무대 뒷 이야기를 다룬다. 영화는 총 3막으로 구성되어있다.
1막은 1984년 매킨토시 런칭전 무대 뒷이야기,
2막은 1988년 넥스트 큐브 런칭전 무대 뒷이야기
3막은 1998년 아이맥 런칭전 무대 뒷이야기이다.
그 중심에는 매번 그의 딸 리사가 등장한다. 1984년 애플2의 성공이후 새로 개발한 컴퓨터 '리사'를 소개하는 프레젠테이션 날에 처음 5살 리사가 친자소송문제로 엄마손에 끌여서 아빠의 대기실을 찾는다.
앞에서는 딸아이에게 모질게 구는 스티브 잡스. 불연듯 아이를 테스트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그림을 그려보라고 한다. 이 컴퓨터에 그린 리자의 그림이 15년 후 1998년 프리젠테이션에서 아이맥의 디자인이 되어 대학생이 된 리사를 감동시킨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의 전기 '잡스'에서도 리사가 아빠를 두둔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프리젠테이션 준비가 수월하지 않다. 음성인식프로그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잡스의 계획에 따르면 컴퓨터가 선보이자 말자 HELLO라는 말을 해야한다. 담당자 앤디에게 무조건 하라고 시킨다. 협박을 당한 앤디... 더러워도 스티브 잡스가 시키는 일이니 어떻게든 해내야 한다. 행사는 그럭저럭 치뤘지만 앤디는 평생 스티브 잡스의 협박을 마음에 두고 미워하게 된다.
15년 후 앤디가 스티브 잡스에게 묻는다.
- 왜 당신은 사람들에게 미움받을 짓만하는거야.
- 나도 모르겠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스티브 워즈니악이 찾아왔다. 애플2의 맴버들을 소개해달라는 것이다. 이미 애플2는 시장에서 사라졌지만 그들의 공로를 따듯하게 인정해달라는 부탁.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과거일 뿐이라고 거절해버린다.
워즈니악은 독선적이라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경멸을 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아랑곳하지 않고 무대로 향한다.
무대오르기 직전, 잡스가 고용한 애플의 CEO 존 스컬리는 1984라는 애플의 광고가 맘에 안든다고 따진다. 마침 오늘 소개될 광고를 말이다.
문제의 광고는 바로 이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문제될 것이 없다고 두둔하지만 결국 둘의 싸움은 크게 번지고 스티브 잡스는 독선적이라는 비난을 면치 못한다. 얼마전 광고를 만든 나도 격하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광고 나가기 직전 하필이면 발목을 잡은 상황이라니... 결국 광고는 성공하지만 판매는 저조하게 된다.
드디어 무대 앞에 선 스티브잡스. 그러나 1984년 애플의 신제품 리사는 폐쇄형 제품의 특성으로 인해 실패를 하게 된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는 존 스컬리와의 파워게임에서 밀려 애플에서 쫒겨나게 된다.
이제 영화는 1988년으로 간다. 중간에 픽사로 대성공을 거뒀고 이미 과거의 충격은 상당부분 잊은 상태이다. 새로운 기업과 학교용 컴퓨터인 넥스트의 발표날.
이곳은 두 번 째 프리젠테이션 직전의 무대 뒷편이다. 넥스트 컴퓨터를 소개하는 자리에서 존 스컬리는 스티브 잡스를 급히 찾아왔다. 그리고는 갑작스레 애플로 돌아와줄 것을 부탁한다. 결국 이 프리젠테이션에서 스티브 잡스는 넥스트의 OS는 공개하지 않는다. 그리고 이 OS로 애플 컴퓨터를 새롭게 부활시킨다.
다시 10년이 지났다.
1998년 애플의 샌제품 아이맥 제작 발표회 직전 무대의 뒷모습이다. 잡스는 3개월전 대량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제품을 개발했다. 회계사 3명을 동원해 2,500명을 감원하였던 터라 마음이 좋지 않지만 프리젠테이션 준비는 완벽하다.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에 또 여러 사람이 스티브 잡스를 찾아온다.
먼저 존 스컬리가 미안하다는 인사를 하러 온다. 뒤이어 음성인식시스템으로 무시당했던 앤디가 딸 리사의 대학 등록금을 대신 내줬다는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리사를 찾는다. 마지막으로 스티브 워즈니악이 다시 찾아온다. 역시나 애플2팀의 공로를 만인에게 알려달라는 것이다.
ㅠㅠ 외울 내용도 많은 발표자에게 사건은 왜이리도 많은지.
스티브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에게 기술도 실력도 없는 사람이 말빨 하나로 성공했다며 비난한다.
이 말에 스티브 잡스는 지휘자와 연주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자신은 오케스트라 지휘자이며 워즈니악은 훌륭한 연주자 중 한사람이라는 것. 이 장면은 바로 그런 그의 생각을 담은 장면이다.
둘이 함께 창고에서 처음 컴퓨터를 개발했을때
워즈니악은 설계도면에 8개의 슬롯을 넣었다. 확장성을 고려한 것이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오로지 두개의 슬롯만 만들것을 주장했다. 사람들은 복잡한걸 싫어한다는 것이다. 처음 컴퓨터를 만들때부터 미친듯이 심플(Insanely Simple)은 그의 평생을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된다.
프리젠테이션의 귀재 스티브 잡스. 그러나 무대 뒤에서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사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타인을 적대시하며 사랑받지 못한 불행을 앙갚음하듯 한평생을 살았다. 그러나 그는 일도 인간관계도 미친듯이 심플했다. 뒷 끝도 없었고 자신을 비난하던 스티브 워즈니악을 끝까지 보호했다. 리사의 학비를 전부 대주고 자랑스러워했지만 앞에서는 냉정하게 대했다.
영화 곳곳에 애플와치와 아이폰을 암시하는 요소들이 나와서 재밌었다. 카메라 웍도 좋고 구성도 세련됐다.
아빠는 일에 미친 한 천재의 따듯한 인간미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하지만 꼬마 아이가 보기에는 약간 어려웠던 영화였다.
돈을 많이 벌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도 좋지만 한 가지에 미쳐서 사는 인생만큼 행복하지는 않다. 영화에서도 등장하고 그와 관련된 모든 책에서 등장하는 말 중에 '현실 왜곡 장'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단어가 참 좋다. 스티브 잡스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신념을 끌어내는 단어였다.
영화 첫 장면에 나폴레옹의 초상화가 등장하는 것도 아마 이런 '현실 왜곡 장'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했던 스티브 잡스의 성공비결은 두가지로 정리된다. 외적으로는 '미친듯이 심플', 내적으로는 '현실 왜곡 장'이다.
위인전에서 말하는 뻔한 교훈이 아니어서 색다른 시간.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자막으로 되어 있어서 힘들었을텐데 끝까지 함께 봐줘서 고맙다 마음대로왕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