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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성 Apr 06. 2021

리차드 파커의 라이프 오브 파이와 아서 고든 핌 이야기

<파이 이야기>의 리차드 파커와 <아서 고픈 핌 이야기>의 더크 피터스

꽤 오래전, 그러니까 아이가 7살때, 둘이 기차여행을 떠났다. 당시 나는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라는 책에 매료되어 있었고, 마침 영화로 만들어져서 극장에서 본 뒤 아이와 또 한번 보려고 아이패드에 담아왔었다. 7살짜리 꼬마가 아무런 불만 없이 보아준 것이 신통할 정도로 초반은 지루했다. 눈치가 슬슬 보이는 순간 갑자기 아이가 박장대소를 하며 웃는 장면이 있었다.


"아하하하하, 아하하하하"


난파선 구명보트에는 주인공 파이와 얼룩말, 오랑우탄 그리고 하이에나가 타고 있다. 배가 고픈 하이에나는 난데없이 보트 위를 헤집고 다닌다. 상처난 얼룩말로 배를 채운뒤 오랑우탄도 죽인다. 이에 화가난 파이는 하이에나를 상대로 싸움을 건다. 


"더이상 참을 수 없어. 덤벼라 이 망할 짐승아" 




"덤비라고"




"어서!!"




이때 파이가 올라가 있는 천막 아래에서 호랑이가 뒤쳐나와 하이에나를 공격한다. 이 호랑이가 바로 <라이프 오브 파이> 전체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 리차드 파커다. 며칠 전 중학생이 된 아들과 다시 영화를 보며 물었다. 


아빠 : 너 7살때 이 영화 보다 리차드 파커 등장하는 장면에서 왜 웃었었니?


아들 : ...?


도무지 기억을 하지 못했다. 영화가 지루하다며 안보겠다는 아들이 다 보고나서 너무 재미있었다는 걸 보면 역시 지루한 배경에서 갑자기 튀어오른 호랑이를 보고 그저 재미있었던 걸까.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그 후로 에드거 엘런 포우의 유일한 장편소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었다. 에드거 엘런 포우가 궁금해서도 아니고 그 책이 궁금해서는 더욱 아니다. 호랑이 리차드 파커의 이름이 이 작품에서 유래되었다는 글을 어딘가에서 읽은 탓이다. 네 명이 난파를 당했는데 배가 너무 고팠다. 한 명을 살해해서 세 명이 먹자고 했다. 그 네 명 중에 살해당한 비운의 인물이 바로 리차드 파커라는 것이다. 이 글을 읽고 이런 생각이 들었다.


"글쓴이는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지 않은 것 같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파이프 오브 파이의 리차드 파커는 가해자이지 피해자가 아니다. 

둘째 식인이라는 키워드에서 살펴볼때 리차드 파커는 살해 당한 비운의 인물만은 아닐 것이다. 아니 비운의 인물이었으면 그 이름을 영화에 호랑이 이름으로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직접 읽어보기로 했다. 에드거 엘런 포우의 작품은 전개가 독특하다. 지독한 만연체이고 행동을 구구절절이 설명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처음엔 힘들다. 그러나 일정한 포우 문체의 패턴 안에 들어가면 빠져나갈 수 없다. 이런 것을 글의 흡입력있다고 하나보다. 


주인공 아서 고든 핌은 부자집 젊은이다. 그에게는 담력 있고 사나이다운 어거스터스라는 친구가 있다. 그램퍼스 호의 선장인 바너드와 어거스터스는 고래잡이를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그 배에 부모님 몰래 아서 고든 핌도 함께 탑승한다. 방법이 묘하다. 


"아서, 나는 며칠 후에 탑승할테니 빈 배에 먼저 가 있어라. 식사와 마실만한 술이 가득하니까 걱정말고"



실제로 배 안의 방은 호텔급이었고 아서 고든 핌은 부모님으로부터 벗어난 자유를 만끽하며 며칠동안 먹고자고 하게 된다. 그런데 이상하다. 단순히 생각해도 열흘은 족히 넘은 것 같은데 친구가 오지 않는다. 먹거리와 마실거리도 슬슬 떨어졌다. 안돼겠다 싶어 어거스터스를 찾아 나선다. 엉망진창인 배의 수하물칸을 넘어넘어 한참을 헤매는데 어거스터스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서? 미안하다. 지금 나오면 안돼. 이 배에 반란이 나서 바너드 선장은 잡혔고 해적이 점령했어."

"뭐라고? 그럼 언제까지 여기 있어야 하는거니?


"더크 피터스라는 사람이 나한테 잘해주고 있어. 그는 해적왕을 싫어해. 그와 함께 세력을 만들어볼께 그때까지만 좀 더 견뎌. 자 여기 물 가져왔다."


우여곡절 끝이 더그 피터스와 아서 고든 핌, 어거스터스는 해적을 무찌르게 된다. 적들은 모두 다 죽였다. 한 사람만 뻬고. 그는 쿠테타 상황에서 머리를 맞고 기절한 리차드 파커라는 청년이다. 


<그램퍼트 호의 생존자 명단> 

아서 고든 핌

어거스터스

더크 피터스

리차드 파커


이 네 명은 중간에 폭풍을 만난다. 그램퍼트 호는 난파되고 이들은 잠긴 배 아랫 쪽에서 식량을 찾아 먹으면서 연명하게 된다. 음식이 부족해지면서 위기가 찾아온다. 특히 쿠테타 과정에서 다친 어거스터스의 팔은 이미 까맣게 썩어가고 있었다. 더그 피터스 역시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아서 고든 핌과 리차드 파커는 열심히 낚시 등을 해서 먹을 것을 장만하고 이들을 보살폈다. 


마침내 먹을게 동이 났다. 음식을 구하러 다니던 아서와 리차드도 점점 지쳐가고 있다. 더그 피터스와 어거스터스는 자는지 죽었는지 도통 움직임이 없다. 이때 리차드 파커가 말한다. 


"아서. 이대로 가다간 우리 모두 죽을거예요. 우리 넷 중에 한 명이 희생해서 세 사람을 살리는 게 어때요?'  


리처드 파커의 말에 깜짝 놀란 아서는 극구 반대하고 나선다.


"아냐 그래선 안돼. 그럴 순 없어" 


"알아요 아서.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잖아요. 다른 사람들 의견도 들어봅시다."

마침내 아서는 더그 피터스와 어거스터스에게 리차드 파커의 제안을 전한다. 아서의 예상과 달리 둘은 극구 찬성을 한다. 


"그래! 어차피 이대로 가다가는 다 죽어. 네 명 모두 죽는 것보다는 셋이 사는 게 낫지."


이에 리차드 파커는 제비 뽑기를 해서 가장 짧은 쪽을 뽑는 사람이 죽는 것으로 정하자고 제안한다. 마침내 운명의 시간 가장 몸 상태가 나쁜 어거스터스가 제비를 뽑았다. 긴 것이 뽑혔다.

다음은 더크 피터스의 차례다. 긴 것이 뽑혔다. 


이제 두 개가 남았다. 리처드 파커와 아서 고든 핌 두 명 중의 한명을 먹고 나머지가 살게 될 것이다. 리차드 파커의 차례. 짧은 것이 뽑혔다. 사실 나머지 사람들은 리차드 파커가 괘씸했다. 동료를 먹고 나머지가 산다니 말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는 없었고 미웠지만 그의 뜻을 따랐다. 그러나 뿌린데로 거둔다는 말처럼 딱 리처드 파커가 걸렸다. 짧은 것을 뽑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더크 피터스가 칼을 내리쳐 죽인다. 


덕분에 셋은 살아나지만 어거스터스는 팔에 난 상처가 덧나는 바람에 얼마 후 죽는다. 아서 고든 핌과 더그 피터스는 남극을 탐험하는 배에 구조되어 또 다른 여행을 하게 된다. 


다시, 라이프 오브 파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리차드 파커는 <라이프 오브 파이>의 호랑이와 연관성이 없어보인다. 주인공과 끝까지 여행하는 인물은 리차드 파커가 아닌 더크 피터스다. 남극에서 두 사람은 <라이프 오브 파이>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해초섬같은 곳에 다다르게 된다.   



해초섬이 식인섬으로 밝혀지듯 더크 피터스와 아서 고든 핌이 찾은 원시 부락도 알고보니 그들의 배를 빼앗으려는 나쁜 사람들이었다. 그곳에서 살아 남은 두 사람의 관계가 파이와 리처드 파커의 관계와 비슷하다.


가령 <파이 이야기>에서 파이는 잘 생긴 호랑이와 함께 난파 된 것을 행운이라고 표현한다. 못생기고 찌질한 동물과 있었다면 힘든 바다 위를 견디기 어려웠을 꺼란 논리다.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에서 섬에 갖힌 아서 역시 더크 피터스를 보며 내가 헤쳐나간 모든 해결책은 똑똑한 더크 덕분이라고 강조한다.    


그리고 둘은 무사히 구조된다. 

파이(Pi) X 리처드 파커(Richard Parker)

핌(Pym) X 더크 피터스(Dierk Peters)


<라이프 오브 파이>는 확실히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오마주 한 작품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리처드 파커는 호랑이와 아무 상관 없고 오히려 하이에나에 가까운 인물이다. 호랑이는 더크 피터스이다. 


왜 얀 마텔은 호랑이에게 왜 리차드 파커라는 이름을 붙였을까? 

아들은 왜 리차드 파커가 등장하는 장면에서 웃음을 터뜨렸을까?


누가 알겠는가. 다만 이런 추측을 조심스레 해본다.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얀 마텔은 애초에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더크 피터스라는 이름을 쓰고 싶었을 것 같다. 많은 부분에서 영감을 받은 데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서. 하지만 어려운 이름이다. 어거스터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고른게 발음하기 쉬운 리차드 파커를 고른 것이다. 오랑우탄을 오렌지주스라고 부르듯 편안한 발음으로.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아들은 항상 영화를 좋아했다. 특히나 재미 없는 어른 영화를 참고 볼 줄 알았다. 분명 아이에게 <파이프 오브 파이>는 재미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신이 좋아하는 호랑이가 난데 없이 등장해서 웃은 것이다. 그러니 애초에 아이는 영화와는 아무 상관 없이 웃었다. 아이가 좋아하는 호랑이니까.  


많지는 않겠지만 <파이 이야기>와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 중에서 어떤 책이 더 재미있을까 궁금한 사람을 위해 한마디 거들어본다. 쥘 베른의 작품을 좋아한다면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는 읽어볼만하다. 실제로 쥘 베른은 <아서 고픈 핌의 이야기>를 읽고 그 후속편격인 <빙원의 스핑크스>라는 책을 썼다. 어디 그뿐인가. 해저 2만리의 선장실은 이 책 초반 아서가 감금되어있는 호화로운 방과 비슷하고 남극 탐험장면도 거의 그대로 재현시켰다. 


고전문학은 세대를 초월해서 읽히는 힘이 있기에 명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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