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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리 Oct 22. 2024

여는 글

내 인생 세 번째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지는 어느덧 2년이 지났다. 불안장애가 심해지며 지칠 대로 지친 나에게 소리소문도 없이 다가온 이 녀석은 온종일 나를 괴롭히고 있다. 첫 번째 우울증은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 한 채로 떠나보냈고, 두 번째 우울증은 그 후 2년 만에 다시 나를 찾아왔지만 약 복용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금세 나아졌다. 그 사이에 대학도 졸업하고, 취직도 하고, 대학원도 가고, 박사 과정을 시작하며 다시 나의 우울과 재회했다.


대학원을 다니는 동안 겪는 마음의 병은 꽤나 흔한 일이라 내가 조금만 노력하면 더 나아지겠지 생각했지만, 상황은 이전과 다르게 심각해서 응급실을 가기도 하고 자살 예방 전화를 붙잡고 살려 달라 빌어보기도 하고, 일에서 손을 떼고 휴가를 다녀와도 전혀 나아지지 않는 상황에 다시 약 복용을 결심했다. 하루종일 먹지도 뭘 하지도 않은 채로 잠만 자던 것은 조금 나아졌으며, 여전히 나의 불안은 종일 나를 괴롭히지만 적어도 약 덕분에 잠에 드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멍 때리는 시간도 줄어들고, 안개가 낀 것 같던 머릿 속도 조금씩 안개가 걷히기 시작했으며, 사람들과 다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일을 하기에도 훨씬 수월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에 몇 시간씩 찾아오는 우울감은 떨쳐내기가 어렵고 나의 불안장애는 시도 때도 없이 다가와 사람들과 있다가도 화장실이든 차 안이든 어딘가로 도망가야 했던 적도 있고, 비행기 타기 직전에 와 버린 불안발작으로 비행기를 타지도 못 하거나 종일 구토를 한 적도 허다했다. 네 가지의 약을 매일 같이 챙겨 먹으며 언제까지 이 질환을 가져가야 할까, 나는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사람인 걸까 수도 없이 나 자신을 자책하고 이 모든 상황을 원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나의 우울을 내 인생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고 해서 24시간 내내 우울한 것만은 아니며, 불안장애를 가지고 있다고 해서 평온한 날을 맞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내 자신이 싫어지는 날들도 있지만 그래도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여전히 나 자신이기를 바라며, 내 자신에게 해주고 싶던 말들을, 내 머릿속에서 민들레 홀씨처럼 흩어지는 작은 생각 조각들을 모아 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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