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도의 햇빛이 쨍했던 어느 가을의 시작, 아침부터 심장이 심하게 두근거려 결국 집 근처 공원으로 책을 들고 나왔다. 강을 따라 걷다 보면 자전거 타는 사람들, 물가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나처럼 산책을 하거나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내가 산책하고 있어요, 내가 지금 어디에서 누구와 함께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소셜미디어에 올리기 위한 산책이 아닌, 다른 누군가도 아니고 내 자신을 위한 가벼운 산책.
이리도 맑은 날에 초록색으로 가득 찬 거리를 걸을 때면 나도 이 자연의 일부라는 느낌을 자연스레 받게 된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들리는 잔디 깎는 소리 대신 새가 지저귀는 소리를 듣는다. 소방차가 지나가는 대신 강가의 물이 흘러가는 소리를 듣는다. 기분 좋게 살랑거리는 바람을 느끼며 걷다가 맞은편에 걸어오는 사람과 아침 인사도 나눠본다.
거울 속 내 얼굴보다도 화상회의 중 카메라 속 내 얼굴이 더 익숙해진 오늘날에는 기계로 살아가는 나보다 현실을 살아가는 내 자신을 느끼는 것만큼 중요한 건 없다. 지구 반대편의 인플루언서가 어디서 무엇을 샀는지 궁금해하는 것보다 옆에서 빨간 티셔츠, 파란 모자를 쓰고 달리는 중인 70대쯤 되어 보이는 노인은 저 루틴을 얼마나 반복했을까 궁금해하는 것이 내게는 삶을 느끼는 방법이다. 아마도 그는 이 루틴을 3년 이상은 반복했으리라. 나도 필라테스도 6년을 하고 꾸준히 운동을 해왔지만 유산소 운동이란 꾸준한 노력 없이는 단숨에 발전시키긴 아주 어렵다는 걸 알고 있으니. 게다가 그 노인은 반대 방향에서 가던 다른 한 사람과 손 인사를 나눴다. 그 둘은 같은 시간대에 같이 뛰며 자주 만나던 사이이거나, 혹은 이웃일 수도 있겠다. 나도 이 산책 길에 언젠가는 아는 이를 마주할 날이 올까? 아마도 개와 함께 주기적으로 나오는 사람이라면 더 쉽기도 하겠다.
쭉 길을 따라가다 보니 이웃 주민들이 모여 작은 파티 같은 것을 하고 있는 게 보인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음식도 있는 것 같은데, 사람을 마주치기 싫었던 나는 다시 등을 돌려 왔던 길을 되돌아 걷는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했던 적은 인생에 단 한 번도 없지만, 박사를 시작한 이후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더 피하게 된 것 같다. 왜였을까? 내 인생이 너무 지루하고 따분해서?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두려워서? 다른 사람 목소리를 듣는 것이 버거워서? 누군가를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 그저 처음 보는 사람과 가볍게 인사 나누는 것뿐인데,라고 누군가는 생각하겠지만 나에게는 5시간을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하는 일보다도 더 어려운 것이 낯선 이와 대화를 나누는 일이다.
미국에 살다 보면 그런 일들을 많이 맞이하게 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스몰 토크를 나누고, 필라테스를 하러 가서 옆 사람과 일상을 공유하고, 혹은 같은 프로그램에 있는 다른 학생들과 교수들과 해피아워를 가서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들이 있다. 이 사람이 싫어서도, 무서워서도, 내가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되어서도 아닌, 그저 사람과 대화하는 일이 너무나도 어렵다. 기가 빨리기도 하고, 저 사람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궁금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산책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다르다. 이들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나온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나에게 대답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서로가 서로의 바운더리를 지켜주는 듯하다. 그게 내가 산책을 좋아하는 이유다. 누구도 나의 반응을 기대하지 않고 같은 공간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산책을 한다. 그저 걷는다.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내 기분이 보내는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