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조각 찢어진 심장을 꿰매는 당신 (루이스 부르주아)

찢어진 몸과 마음을 꿰매는 고통스런 삶의 자리가 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다

by 김수정
난 인생은 비극이라 여긴다. 하루하루 생존해 나가는 것이 고통이라고 생각한다.

내 작업은 고통과 상처를 정화하고 치유하는 투쟁을 위해 존재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Do Not Abandon Me 1999

기대를 걸었던 모든 일들이 거절 당하고 결국 육체적으로도 무너졌을 때,
"나에게 소망이 없겠다. 어쩌면 이렇게 살고 싶지가 않은가"
소리 없는 독백이 쏟아져 나왔다.

마음이 아프면 실제 육체에 통증이 일어난다는 연구 결과가 있지 않던가
가슴의 통증이 너무나 심해 간신히 잠을 이룬 밤 꾸었던 꿈이 있다.

신이 갈기갈기 찢어진 피투성이 내 심장을 조심조심 꿰매고 있었다.
지금도 너무나 가슴아플 때면 그 꿈의 한 장면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Louise Bourgeois <Heart> 2004. Courtesy Galerie Karsten Greve

그리고 찌르는 듯한 통증과 함께 루이스 부르주아의 천 작품을 떠올린다.
루이스 부르주아가 천을 덧대고 실로 꿰매어 만들어냈던
너덜너덜한 형상의 작품들을 기억한다.


진정한 치유자는 "상처입은 치유자"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피할 수 있으려면 피하고 싶은 것이 삶의 아픈 장면들이다.
인간은 그 상처를 기꺼이 감수할 만큼 대담하고 단단하지 않다.

하지만 칼부림이 예고 없이 덮치고 간 인생은,
주저앉아 핏자국을 닦아가며 그 상처들을 꿰매고,
얼음으로 덧난 부분의 염증을 가라앉혀야 하는,
두꺼운 붕대를 다시 또 감고 감아가는,
덧난 상처 위에 화장을 올리며 감추어야 하는.
그런 덧나고 덧댄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루이스 부르주아 역시 그러하였다.
자신의 갈기갈기 찢어진 몸과 마음을 꿰매고 또 꿰매어가는 작업을 통해
자신의 인생과, 타인의 인생을 꿰매어 주고 온기로 끌어안았다.

Louise Bourgeois <CELL XIV> 2000
예술은 당신에게 무엇인가.

“카타르시스(정화)다. 내가 경험한 상처, 증오, 연민을 표현하고자 한다.”

(루이스 부르주아 인터뷰)


20세기 미술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중년의 여성, 루이스 부르주아 Louise Bourgeois (1911-2010)는

기존의 양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독창적인 예술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러한 작품은 고통받은 여성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자전적인 주제와 소재를 바탕으로 하여 기이하고 일그러진 형상,

바라보기조차 고통스러운 작품을 통해 그만이 가진 아픔을 승화시켰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유년기 아버지와 가정교사의 뻔뻔하고도 부적절한 관계를 보고 자라면서

아버지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되었고,

어머니의 죽음을 겪으면서 어머니로서의 여성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질곡은 루이스 부르주아로 인해 남성과 여성이 가지고 있는 갈등에 대해 질문하게 했다.

불균형의 사회에서 여성만이 겪어야만 하는 슬픔에 대해 질문하게 했다.


이러한 슬픔과 치유의 방식이 인간의 바닥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슬픔을 건드렸기 때문인지,

루이스 부르주아는 20세기 미술계의 가장 중요한 존재 중 하나가 되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1982년 뉴욕 현대미술관 모마 MoMA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 회고전을 열었고,

199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까지 수상했다.

Louise Bourgeois <FEMME MAISON>

루이스 부르주아는 인간이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그렇기에 인간에게 덮쳐온 고통이 얼마나 깊고 잔인한 것인지를 표현한다.

상처를 입히는 바늘을 사용하면서도 그 바늘을 통해 인간은 다시 치유입을 수 있다는 것을 표현한다.


갈기갈기 찢어진 인간은 상처를 남기더라도 다시 회복할 수 있고 더 단단해질 수 있다.

루이스 부르주아는 인간의 상처를 끌어안는다.


매끈하지 않더라도 아름답다. 그것이 상처이다.

상처는 두렵지만 반면 감동을 준다.

Louise Bourgeois <Seven in a bed> 2001, Fabric, Stainless Steel, Glass and Wood

나약한 인간에게 닥친 불행, 그래서 찢어진 정신과 몸을 꿰매어가는 삶,
나는 그 고통스러운 삶의 자리가 신의 가장 가까이에 있다고 생각한다.


내게 삶이 존재하는 한,

이 답 없는 삶에 고통의 비명과 존재의 물음을 가지고 이 바느질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면 나도 언젠가 예술 비슷한 것을 남길 수 있을까.

아니,
이 삶의 의미만이라도,
결국엔 이번 생의 의미만이라도 예술에 가까워진다면 좋겠다.


<요정 재봉사 Fée Couturière> 1963. Plaster. Collection The Easton Found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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