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끝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당신 (이케나가 야스나리)

"당신을 사랑했다" 단지 그것뿐인 일일 뿐이다

by 김수정
실은 너를 껴안고 싶었다.
꼭 껴안은 대신에 이 그림을 그렸다.
그것이 내 나름의 포옹이라면 그것으로 좋다.

매끄러이 빛나는 어깨, 홍조 띤 뺨에,
사랑했던 이의 그것을 만지는 것이 비록 실현되지 않더라도.
화면에서만은 유일한 나의 것이 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육체가 사라져버린 후에도
나의 붓질은 당신이 존재하는 일.
당신에게 찬미를, 나의 열정을 계속 선언하고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당신의 애정과 지체가 현세에서 나 이외에 다른 누구의 것이었어도
나는 그리는 일에서 영원의 승리를 얻었다고는 말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리는 일은 고백이며, 극히 사적인 사건처럼 느껴진다.

"당신을 사랑했다" 단지 그것뿐인 일일 뿐이다.

(池永康晟 이케나가 야스나리)

고운 선을 가진 이케나가 야스나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조금 울고 싶어진다.
주제만 생각하면 그저 미인도인데도 불구하고
뭔가 아련하고 애틋한 감정이 가득 젖어 있기 때문이다.
손끝으로 그림 표면을 만져 보면 촉촉한 물기가 뚝뚝 떨어질 것 같다.

린넨 천의 질감이 그대로 드러나는 바닥재의 재질감,
맑은 미색과 갈색빛의 바탕 화면 위로 차분하게 드러나는 금빛 도는 피부색,
발그레하게 드러나는 볼과 입술의 혈색, 정교한 필법을 사용한 검은 머리카락의 표현,
인물의 깨끗한 피부빛와 대조되는 패브릭의 화려한 무늬 표현이
강약의 흐름과 여백의 흐름을 만들어가며 화면을 조화롭게 구성한다.

池永康晟 <朝闇>

이케나가 야스나리는 현대여성을 모델로 하여 미인도를 그려내지만
그가 사용하는 재료와 기법은 그야말로 전통적이다.
일본화의 채색화 기법에 걸맞게 천을 배접하여 천연원료인 가루 물감과 먹을 사용한다.
그로 인해 만들어내는 미인도는 고전과 현대가 결합되어 나타난 오묘한 공간을 만들어낸다.

미인의 명확하지 않는 표정과 힘 없는 자세는 화면에서 동세를 제거하지만
그야말로 고요하고 깊은 꿈 같은 세계를 표현하고 있다.

<甘い水・真喜子>
내 눈 앞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남길 수 있는 건 내 손가락뿐입니다.

내 눈도, 귀도, 코도, 입술도
그 사람의 기억을 나만의 것으로 하는 데 도움이 되지만,
모양으로 만들어 남길 수 있는 것은 내 손가락뿐입니다.

사랑했던 사람을 그려서 남겨둔다면,
내세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池永康晟 이케나가 야스나리)


이케나가 야스나리 池永康晟 Ikenaga Yasunari (1965)는 세 살 때 이미 화가로서의 운명을 실감한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자신이 그림을 그리는 이로 태어났다는 확신을 얻는다.
그는 미술을 전공으로 할 수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만 놀랍게도 미대에는 진학하지 않는다.
그는 대학에서의 가르침 없이 거의 독학으로 일본화를 공부하다가 재료를 다루는 법에 매진한다.

자신이 애매하게 살아있어도 어떻게든 화가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에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은 방향성이 있었다.
어떠한 계기로 10년간 그림을 그리지 못하던 중,
먼저 세상을 떠난 연인으로 인하여 다시 그림을 시작한다.
그녀를 그리는 방식으로서라도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인지 그림 속의 미인들은 웃고 있기보다는 우수에 가득 차 있다.

닿을 수 없다는 깊은 슬픔에 젖어 있다.

<根・真喜子>

이케나가 야스나리는 상실의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절망의 바닥에 닿은 순간 새로운 삶이 시작되었다.
놀랍게도 사랑을 겪어내야 하는 고통이 그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어떻게든 사랑을 못이겨 살아 보려는 몸부림이 그의 인생을 놀라운 방향으로 돌려 놓았다.
"당신을 사랑했다" 그것뿐인 일을 했을 때, 그가 그렇게도 갈망했던 방향으로 인생이 열리기 시작했다.


나는 가끔 생각한다. 사랑은 죽음도 초월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했다면 이별이나 생사와 상관없이
그 사랑은 영원에 가깝도록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山姫-樹子」

누군가를 당장 잊고 싶지만 잊을 수가 없고,
끝끝내 그 이를 잃은 슬픔은 사라지지 않고,
남겨진 사랑의 감정은 끊어지지 않는다.

그 이를 잊기 위해 무엇이라도 하며 살아가야 하는 과정에서도
사랑하는 마음은 여간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밥을 먹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잠을 자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일을 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일 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이 년을 보내고,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삼 년, 사 년을 보낸다.
사랑하는 사람을 잊기 위해 나이를 먹는다.**

사랑하는 사람은 갔어도, 나는 사랑하는 사람을 잊을 때까지 살아간다.
그래서 내가 존재한다면 사랑은 어떻게든 남는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사랑을 남기고 간다.
내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이었다면 나에게 놀라운 것을 남겨 주고 간다.
이케나가 야스나리가 해 온 것처럼 온 세계를 그 연인의 사랑으로 물들일 수 있다.

「血痕-樹子」

이제 이케나가 야스나리는 다시 사랑하는 사람을 찾은 것 같다.

그리고 이 다정한 남자는 "미인"을 그리는 데 지치지 않는 것 같다.
이제 그가 그리는 미인에게서 조금씩 표정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의 새로운 그림을 계속 볼 수 있어 다행이다.

「うつふせて泣いたるきみは未だ夏果の微匂ひ-樹子」

** "당신을 잊기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으셨는데 저는 나이를 먹었어요" (신용목)
신용목 시인의 말에서 인용하여 쓴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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