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입고 피흘리는 홀로인 당신 (프리다 칼로)

이제 그대가 찾아와 상처를 어루만져 준대도 이번 생은 이미 그른 것 같다

by 김수정
그대여, 내 옆구리에서 흘러나오는 사이렌 소리를 듣고
멀리 나를 찾아온대도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
피는 벌써 칼을 버리고
어두운 골목으로 달아나버리고 없다

그대여, 내 그토록 오래 변치 않을 불후를 사랑했느니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아래
붉은 저녁이 오누나
장미를 사랑한 당나귀*가
등에 한 짐 장미를 지고 지나 가누나

송찬호 <안부>


"이번 생은 그른 것 같다"는 시구를 읽다가 여러 번 눈물을 흘렸다.

아픔이 가득하고 선혈이 낭자하여 눈 앞이 희미해지는 매일이 이번 생인 것 같아서 찌르는 듯이 아팠다.

어쩌면 그렇게도 사는 것이 벅차기만 한지,

여기저기 잠복된 칼과 창들 사이를 가까스로 피하거나 큰 상처를 모면하는 것이 고작이어서 아프기만 했다.


이제 그대가 찾아와 상처를 어루만져 준대도 이미 이번 생은 글렀다.

소망이 없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ciervo_FKahlo.jpg <The Wounded Deer>

일 년만에 재회한 친구와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를 셋 키우고 있는 그녀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살아가는 것이 버겁다고 했다.

그렇지만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상황의 사람도 있다는 것을 보면서 감사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가로막았다. 그 생각은 옳지 않다고 했다.


누구에게나 상처 없는 삶은 없다고 한다지만

인생은 공평하다고도 불공평하다고도 이야기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은 내 인생의 감사를 위한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에 나의 고통을 위안하려는 시도는 부끄러운 일을 넘어선 것이다.

그것은 잔인하고 끔찍한 일이다.


타인의 고통과 나의 고통은 비교할 것이 못 된다.


나의 고통은 내게 절대적인 것이다.

그의 고통은 그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찔리운 화살도 흐르는 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달려야만 하는 삶도, 포기하지 못하는 삶도,

이 삶은 나에게 절대적인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이야기했다.

그 사람의 고통을 존중하고 네 고통을 존중하라고 했다.

그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을 외면하지 말고 많이 위로해주라고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 무거운 고통을 지니고 사는 인생이 있음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뜨거운 마음이 치달아 오르면 조용히 프리다 칼로를 떠올린다.

미술사의 주인공 중 가장 피투성이의 드라마를 가졌다 해도 과언이 아닌 프리다 칼로,

프리다에게는 비교를 시도해 볼 타인의 고통이 없었다.

<Henry Ford Hospital>

"나의 골반, 나의 척추, 나의 다리, 나의 아이, 나의 사랑, 내가 어이없이 잃어야만 했던 것들..."

프리다는 자신의 고통을 하나하나 세어 본다.

유년기의 소아마비와 청소년기의 교통사고와 척추 수술, 결혼 후의 배신, 유산,

지긋지긋하게 이어지는 수술은 지긋지긋하게도 잔인한 흔적을 남겼다.


이미 인간의 육체로 지탱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겪어냈다. 이 운명은 지극히 잔인하다.


고통이 밀물이 들어와 쓸려나갈 때마다 머리카락을, 손가락을, 손목을 잘라내어 주는 것 같다.

이미 너무 많은 곳에 치명상을 입었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달려야 이번 생이 끝날 날이 올까.


이미 이 인생에서 남은 것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지니 살아가야만 한단다.

그것이 삶의 진실이라고 한단다.


사람들은 프리다 칼로가 시련을 이겨낸 강인한 여성이었다고,

그림으로 고통을 승화시켰다고 그녀를 사랑하지만,

나는 한편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

프리다 칼로는 마지막 날이 머지않기를 몰래 기도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Frida Kahlo, 1930s-40s (10).jpg
the-two-fridas.jpg
디에고. 진실은 너무 거대해서, 나는 말하기도, 잠들기도, 듣기도, 좋아하기도 싫어요. 피에 대한 두려움 없이, 사원이나 마법의 힘 없이 나는 당신의 두려움 속에, 당신의 커다란 불안 속에, 그리고 당신의 심장 소리 안에 갇히고 싶습니다.

(프리다 칼로)


이미 육신은 거의 바스러졌다. 목숨만 붙어 있어 간신히 살아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인간이 홀로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두려운 고통이다.

혈관이 얼어버릴 것 같은 외로움이 덮쳐온다.

서걱서걱 얼어서 곧 바스러질 것 같은 외로움.

누군가가 나를 좀 잡아 주면 좋겠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


육신이 아프고 마음이 외로운 프리다 칼로는 결심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이라도 사랑하기로 몇 번을 결심했을 것이다.


프리다 칼로의 <Two Frida>는 그렇게 그려진 그림이 아닐까

이제 삶을 사랑하는 방법은 홀로인 내가 홀로인 내 손을 잡아주는 것이라고.

고통스러운 삶은 이미 주어진 것이고, 거둘 수 없는 것이니 살아가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고.

kahlo-18.jpg

우리들 역시 삶이 고통이라는 것을 매일 더 알아가고 있다.

나 자신이 내 손을 잡고 또 나 자신이 나를 이끌어가면서. 그렇게 우리는 기어이 살아가야만 한다.

점점 무거워지는 눈꺼풀 아래 붉은 저녁이 올 때까지, 그렇게 살아갈 수 있을 뿐이다.

그것이 생명에게 주어진 삶의 진실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프리다 칼로는 상처 입고 피 흘리며 홀로 살아가 줌으로써,

기어이 홀로 손 잡고 살아가 줌으로써

삶이 버겁고 고통스럽고 외로운 나와 당신에게 강력한 메시지를 남기고 떠났다.


사람이 꿋꿋이 삶을 살아내는 것만큼의 놀라움과 대단함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나와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피 흘리며 외로우며 그저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 대단한 사람이다.

2080 Frida Kahlo 0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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