궂은 일상을 어김없이 품어주는 당신 (하삼)

바쁘고 불편하고 쌀쌀한 비의 날, 마음이 가는 곳에 시선이 가는 법이다.

by 김수정

비가 오는 날에는 더욱 강력한 무장을 하고 나서야 한다.
머리카락을 더 꼼꼼히 말리고 더 튼튼한 머리끈으로 묶어내고, 화장도 좀더 진하게 한다.
잘 마르는 치마와 미끄러지지 않는 구두를 신고, 튼튼한 우산살을 확인해 집을 나선다.
비가 오는 날에도 어김없이 일상은 계속된다.

출근하면서 SNS에 차일드 하삼의 그림 네 점을 올렸다.
오늘은 더욱 더 우아하게 하루를 견뎌야지. 비가 오면 일상은 더욱 속도전이 된다.

Childe_Hassam,_Rainy_Day,_New_York,_ca._1889._Oil_on_canvas.jpg
495px-Frederick_Childe_Hassam_Promenade_at_Sunset_Paris.jpg

눈 비 오는 날의 도시 풍경을 여러 점 그린 프레데릭 차일드 하삼.
비가 오는 날에는 시야가 부서진다. 빗물 덕택에 눈 앞에서 부서지는 풍경들을 볼 수 있다.
장관이다. 하루 종일 도시의 풍경이 번쩍번쩍거린다.

어떻게 생각하면 인상주의라는 것이 참 쉽다. 반짝이는 순간의 빛을 빠르게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쁜 일상이 자연스러운 도시의 재빠른 리듬에 적합한 화풍이 인상주의라는 생각에도 일리가 있다.

여느 인상주의 화가가 그렇듯이 프레데릭 하삼 역시 다작형의 작가이다.
어림잡아 3000점이라는 놀라운 그림을 순식간에 그려내고 쌓아내고 남겨냈다.

하삼은 왜 그렇게 수많은 도시의 풍경을, 비 오고 눈 오는 날의 사람들을 담았을까,
우왕좌왕 바쁘게 총총히 걸어가는 사람, 행여 부딪힐세라 경계하는 사람,
한 손으로는 우산을 쥐고, 한 손으로는 치마를 말아 쥐고 힘겹게 길을 걸어가는 사람을 담았던 하삼.

나는 하삼이 마음이 따뜻하고 선한 사람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마음이 가는 곳에 시선이 가는 법이다.


바쁘고 불편하고 쌀쌀한 비의 날,

다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마음에 품고 화폭에 담았으리라 생각한다.

1444165934-rainy-day-new-york-1892.jpg Frederick Child Hassam <Rainy Day New York> 1892

프레데릭 차일드 하삼 Frederick Childe Hassam (1859~1935)은 미국 인상주의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그 역시 예술적인 분위기의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해 늦게 그림을 시작했다.
20대 초부터 바르비종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했으며, 미국 내에서 신진 작가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파리의 아카데미에서 미술교육을 받았고, 파리 일대를 돌아다니며 자유 스케치에 몰두했다.


그러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면서도 당시 프랑스 미술계의 거대한 축을 이루었던 인상주의 화가들로부터 인물화에 대해, 색과 빛의 인식에 대해 영향을 받았다.

그리하여 빛의 효과를 인식하고 색채를 빛 그 자체로 해석하여 적용하는 작품을 만들어냈다.

놀라운 것은 그가 인상주의 작가와의 직접적 접촉이 없었다는 점이다.

간접 경험만으로도 인상주의가 가진 색채감과 빛의 느낌을 자기화할 수 있다니 놀랍기만 하다.


이후 하삼은 고국으로 돌아와 수많은 작품을 발표한다.

시골의 풍경보다는 가정의 정원을, 그리고 주로 거리, 공원, 빌딩 등의 도시 풍경과 시민의 일상을 주제로 하여 호평을 받았다.

하삼,_1893년._Rainy_Day_On_the_Avenue__캔버스에_유채,_40.6_x_45.7_cm._출처_Sotheby's.jpg Frederick Child Hassam <Rainy Day On the Avenue> 1893

나는 도시를 사랑한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만 머물러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거듭 서울로 진학을 하며,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가운데 도시를 떠난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다.
도시의 수선함과 도시의 속도, 도시의 바쁨이 너무나 익숙하고 편리하다.
지하철, 편의점, 통신망, 서점, 영화관... 복잡한 편리성에 힘입어 시시때때 일상을 도움받는다.
그 편리 덕에 조금이나마 시간을 아끼고 조금의 일을 더 할 수 있고,
마음을 가다듬고 나를 다독일 잠깐의 시간을 쪼개어 얻을 수 있다.

하삼이 그려낸 그와 그녀들 역시 일상을 속도전으로 살아냈을 것이다.
전투의 결과물을 순간순간 쌓아나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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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를 걷기도 불편하고 도로를 운전하기에도 어려운,

비가 오는 날의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사람들.


좀더 궂은 일상을 살아내야 하는 오늘의 나에게도 그리고 당신에게도,
쌀쌀한 날씨와 축축한 빗물이 견디기 힘든 나에게도 당신에게도,
하삼이 바라보았던 이 다정한 시선이 함께 머물면 좋겠다.

이렇게 궂은 날, 우리는 서로 더욱 다정한 날을 완성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일상의 전투를 치르고 있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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