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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정 Jul 07. 2024

한국적인, 가장 한국적인 강아지

이암,「꿩 깃털로 놀고 있는 강아지」, 비단에 수묵 담채, 31.1 × 43.8cm, 16세기 혹은 17세기, 필라델피아 미술관, 미국


1957~58년 미국에서 열렸던 <국보전>은 우리나라만의 소박한 미감과 정서로 서양인들의 눈길을 끌었고, 미국 여러 미술관에 ‘한국관’을 개설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때 소개된 이암(李巖)의 「어미개와 강아지(母犬圖, 모견도)」 역시 조선의 정취를 보여주는 오묘함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두성령(杜城令) 이암(李巖, 1499-?)은 세종의 아들이었던 이구(李璆)의 증손으로서 그림을 그려 독특한 이력을 자랑합니다. 『인종실록』에 의하면 승정원에서 중종(中宗)의 어진을 그릴 화가로 도화서의 화원이었던 학포(學圃) 이상좌(李上佐, 1465년~?)와 이암을 추천하였을 정도로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꿩 깃털로 놀고 있는 강아지」는 꿩의 깃털을 입에 물고 어딘가로 놀러 가는 강아지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댕글댕글한 눈에서는 장난기와 호기심이 가득하고, 깃털을 앙 다문 입에서는 웃음기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외국 ‘품종견’이 가득한 지금은 오히려 낯설어 보이는 동글동글하고 짧은 털은 ‘시고르자브종’의 미감을 나타냅니다. 이 천진한 강아지의 뒤를 따라가보고 싶습니다. 이 모험에 함께하고 싶습니다.      


영모화(翎毛畵) 즉 털이 있는 짐승을 그리는 동물화는 산수화와 인물화의 뒤를 이어 그려진 그림입니다. 새의 날개를 뜻하는 영(翎) 과 짐승의 털을 뜻하는 모(毛)를 합하여 깃과 털의 보드라운 결을 치밀하게 그리는 예술입니다. 이암의 영모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뽀시라기’라고 불릴 정도의 따뜻한 털결 뿐 아니라 한국인이 가진 정(情)의 끈끈함과 다정함을 잘 보여주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암은 동물을 관찰하여 똑같이 그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동물이 가진 정신적 특성을 인격화하여 성격이 드러나도록 그렸습니다. 어머니 개의 모성애와 강아지의 천진함 등은 이전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개성이어서 시선을 끌었고, 영조 시대에 등장할 화재(和齋) 변상벽(卞相璧, 1730~1775)의 고양이 그림에까지 영향을 미쳤다고 합니다. 어떻게 건너갔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암의 그림은 일찍이 일본에까지 그림이 알려져 인기를 끌었습니다. 덕분에 국내에서는 이암의 작품이 다소 희귀하답니다. 우리나라 민족 미술을 지키려는 열의를 지닌 간송 전형필마저도 이암의 작품은 소장하지 못했고, 한국전쟁 때 다수가 소실되었다고 추정되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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