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군자

by 김수정
20721_윤덕희_독서하는여인.jpg 「여인독서도(女人讀書圖)」, 비단에 담채, 20㎝×14.3㎝, 18세기, 서울대학교박물관,


낙서 윤덕희(駱西 尹德熙, 1685~1766)는 조선시대 3재 화가 중 하나로 불렸던 문인화가 윤두서(尹斗緖)의 첫 번째 아들이었습니다. 자연히 아버지의 화풍을 따라 산수화와 인물화 등을 그리며 단단한 작품세계를 이어갔습니다. 인물화에서 큰 두각을 나타내 숙종 어진의 모사에 감독관으로 참여하였고 그 공으로 정릉 현감의 벼슬을 받았습니다. 물론 윤덕희는 아버지가 개척한 풍속화의 끈을 이어가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윤덕희의 아들 윤용도 풍속화를 발전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답니다.

아버지 윤두서는 「미인독서도(美人讀書圖)」라는 그림을 남기는데, 중국 명나라에서 유입된 ‘책 읽는 여인’의 주제에 영향을 받아 중국품의 의상과 정원 배경을 보여줍니다. 이를 보고 자랐을 윤덕희는 「여인독서도(女人讀書圖)」를 통해 (비록 배경은 중국식 정원이기는 하지만) 우리나라 치마 저고리를 입고 가채를 쓴 우리 아낙네의 한때를 구현하였지요. 두 작품 역시 우리나라 미술사에서 여성의 이지적 활동을 그린 중요한 작품입니다. 아쉽지만 조선시대는 유교 정신에 따라 여성이 사회활동을 하는 것을 무척이나 꺼렸습니다. 재능이 있고 똑똑한 여성들은 자신의 재주를 밖으로 드러내지 못했고, 겸손하게 자신을 감추며 남편을 뒷바라지하도록 종용받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여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고 공부하기를 원했습니다. 아버지와 오빠 동생의 어깨 너머로 글을 배우고 어머니와 함께 책을 읽었습니다. 훈민정음이 여성을 위한 글이라고 폄하되기는 했지만, 그만큼 수많은 여성들이 열의를 다해 글을 배웠음을 방증하는 것입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여성에게도 독서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고, 사서삼경과 제자백가를 읽는 여성들을 ‘여중군자(女中君子)’라 부르기 시작한 때가 이때부터였습니다.


조심스레 숙인 고개와 내리깐 눈이 얼마나 진지하게 책에 열중하고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손가락으로 글줄을 짚어가며 글자 하나라도 놓칠까 진지합니다. 이토록 배워서 그녀가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유교적 이상상을 구현한 여성이 되라는 것이 여중군자라지만, 아마도 그녀가 원하고 또 바라는 것은 독서의 즐거움에 흠뻑 빠진 여중군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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