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현혹시키는 영상, 그와 대조적인 메시지
#1.
인간이란 얼마나 잔인한 존재인가. 나란 존재는 얼마나 무심한가. 영화를 다 본 후 나는 주인공들에게 미안한 감정이 앞섰다. 감독은 잔인하게도 플로리다를 너무 아름답게 담아냈다. 영화가 담아내는, 관람객들에게 쏟아내는 메시지는 한 박자 늦게 나를 찾아왔다. 영화 플로리다 프로젝트는 내 향수를 자극했다. 영화에 나왔던 매직킹덤 리조트를 잘못 예약했던 커플처럼 나 역시 유니버셜스튜디오 리조트를 잘못 예약한 적이 있다. 심지어 우리는 바꿀 돈도 능력도 없었기에 순응하고 무려 3박을 묵었다. 비슷한 구조의 모텔, 앞에 딸린 싸구려 수영장은 물론 엘리베이터에서 괴상한 냄새가 나 계단으로 다녔었고 정수기도 어딘가 찜찜해 물은 무조건 자판기행이었다. 우리는 영어를 거의 할 줄 모르는 동양 여자였고, 미국인들은 무서웠다. 어딘가 껄렁해 보이는 프론트 직원, 마주치면 나도 모르게 눈을 깔게 되는 같은 리조트 투숙객들. 그럼에도 올랜도는 미국 여행 중 최고의 장소이다.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다 합쳐도 내가 여행했던 모든 도시 중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살고 싶었던 플로리다는 그만큼 아름다웠다. 영화에서 그려내는 만큼, 아니 그보다 더. 한겨울에도 초여름처럼 포근했고, 변화무쌍한 날씨였음에도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하늘을 보여줬던 그래서 아직도 생각나는 그곳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내 버킷리스트였던 디즈니월드를 선물해줬던, 내 꿈의 나라를 말이다. 그래서 감독은 가혹하다. 그 아름다움 이면의 것을 보여주려면 플로리다는 내 기억과 같이 선명하지 않아야 했다. 내 꿈과 같이 따뜻한 색과는 달라야 했다. 그래, 무니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티 없이 맑은 얼굴을 해서는 안됐다. 아무 걱정은 없는 것처럼 사고만 치고 다니면 안 되는 것이었다. 내가 꿈의 도시라고 생각했던 곳이 누군가에겐 지옥이었듯이, 보라색은 보라색이 아니어야만 했다.
#2.
영화를 함께 본 사람은 미디어를 전공했다. 그는 불안정한 구도와 롱테이크 기법을 보며 초반 집중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어딘가 불편하고 다큐스러운. 화려한 영상미로 극찬받는 것과는 살짝 다른 의견이었다. 나는 영상기법에 대해서는 무지하지만, 공감 가는 의견이었다. 현란한 색감과 흔들리는 화면, 화려함 속 외면받는 진실. 이것이 감독이 의도했던 바가 아닐까 생각한다.
#3.
나는 스포를 싫어한다. 줄거리조차 모르고 가는 경우가 태반이다. 대신, 영화가 끝난 후 영화에 대해 찾아보는 이상한 버릇을 가지고 있다. 특히 끝이 찜찜한 경우에는 더더욱.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사람들은 결말에 대해 다양한 이야기를 펼쳐놓았다. 가장 보편적인 해석은 무니의 상상이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을 보고 내가 영화를 보며 했던 우스운 생각이 떠올랐다.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정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곤 한다. 주인공들이 식당에서 싸우고 나갈 때 계산은 하고 나가는 것인지, 한다면 누가 하는 것인지 하는 것들 말이다. 이번에도 무니와 젠시가 표는 끊고 궁전으로 향하는 것일까, 하는 정말 스스로도 왜 하고 있는지 모를 걱정이 해결됐다. 각설하고, 이 해석이 맞다면 끝까지 감독은 자비를 보여주지 않았다. 무니에게도, 관객들에게도. 무니가 처음으로 진짜 자신의 감정과 마주한 뒤, 그 아이는 많은 것들이 변했을 것이다. 위탁가정에서는 매직캐슬에서 했던 행동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고 그 행동을 내버려두고 오히려 그렇게 하도록 유도하던 엄마의 부재는 더욱더 커질 것이다. 하지만, 무니는 학교도 가고 집에서도 교육을 받으며 우리가 생각하는 정상범주의 아이로 자라고 그때와는 엄마를 다르게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무니에게 펼쳐졌을 진짜 결말이다. 그러나 감독은 어딘가 엉성한 마무리로 여전히 아름다운 플로리다를 보여줄 뿐이다.
#4.
영화를 다 본 후 영화를 찾아보며 깜짝 놀랐다. <플로리다 프로젝트> 배역을 맡은 배우 중 진짜 배우는 바비뿐이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사실 내가 느끼기에 이 영화의 스토리라인은 전혀 탄탄하지 않다. 이 영화의 5할은 영상미, 5할은 배우들의 연기이다. 물론 각 캐릭터가 입체적으로 그려지긴 했지만, 그 캐릭터들이 입체적으로 느껴질 수 있었던 결정적인 요소는 배우들의 연기력이었기 때문이다.
캐릭터 하나하나 미워할 수 없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특히 핼리는 나를 자주 울컥하게 만들었다. 물론 핼리는 일반인이 생각하는 '좋은 엄마'의 기준에서는 한참 벗어난다. 아니, '최악의 엄마'이다. 그러니 아동국에서 맨날 천날 오지. 그러나 핼리가 정상적인 환경에서 정상적으로 무니를 낳고 길렀다면 누구보다 좋은 엄마가 됐을 거란 사실은 영화를 본 누구나 수긍할 것이다. 나는 '핼리-젠시'의 관계가 인상 깊었다. 그는 좋지 않은 상황에서도 젠시를 위해 초를 켜고 불꽃을 보여준다. 돈이 생겼을 때도 딸은 물론 딸의 친구의 선물을 잊지 않고 챙긴다. 사람은 돈이 없으면 공격이면서 동시에 방어적이게 된다. 그러나 핼리가 젠시를 대하는 방법은 공격적이지도 방어적이지도 않다. 이는 핼리의 본성을 잘 나타내 준다.
그리고 동시에 영화에선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무니의 아빠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어디선가 감독의 의도 때문이라도 봤는데, 감독님 저에게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감독이 이 영화를 찍기 위해 3년 동안 자료 조사하고 그랬다던데 현실 고증에 박수를 보낸다.
이야기가 좀 샜지만, 내가 소개할 또 하나의 매력적인 캐릭터는 이 영화의 히로인 바비이다. 흔히 말하는 츤데레 캐릭터이면서 극이 너무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게 중심을 잡아주는 무게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내가 바비를 주목한 까닭은 그런 이유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핼리를 아동국에 신고한 사람이 애슐리, 즉 스쿠티 엄마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 신고자가 바비라고 생각한다. 물론 영화의 영웅인 바비가 악감정을 가지고 핼리를 뒤통수치는 그런 망상은 아니다. 바비는 무신경해 보이지만 사실 누구보다 매직캐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장기 투숙객이 대부분인 매직캐슬에 절대적인 정신적 지주. 그 역시 자신의 위치를 모를 리 없고 츤데레 캐릭터를 위해 아닌 척 하지만 그들에게 애정을 느끼고 있다. 일례로 아이들에게 접근했던 변태 새끼를 그만의 방식으로 처리한다. 또한 개개인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그 속에 사는 인물들이 그 사실을 모를 리 없다. 이 사실을 핼리 역시 알고 있기 때문에 바비에게 '내 아빠도 아니니 신경 끄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핼리가 간과한 사실은 바비가 매직캐슬의 '관리인'이라는 것이다. 영화의 중반부쯤 바비는 1층에 사는 한 여성을 쫓아낸다. '누군가가 들락거린다'는 이유로. 그러나 바비는 오랫동안 지켜봐 온 무니네를 매몰차게 쫓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2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지켜봐 온 바비는 옳음을 추구하는 사람이다. 무너져내리는 무니네 가정을 지켜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그가 그 가정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