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물길이라도 난 뛰어들게
#1.
어째서 실력과 인성은 비례하지 않는가. 애탄스럽기 그지없다. 나는 불완전한 존재이다. 살면서 누구 앞에서나 당당하다고 절대 자부하지 못한다. 그래서 완벽을 추구한다. 특히 내가 사랑하는 것에서 더더욱. 이러한 부분에서 많은 예술인들은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곤 한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의 감독 '기예르모 델 토로'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것도 아니고 소아성애자 감독을 위해 구명운동을 펼쳤다는 것을 안 후 없던 정도 떨어져서 절대 영화를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래서 택한 영화가 <플로리다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나는 모순적이다. 나는 가끔씩 1분도 안 되는 고민 끝에 초코에몽을 사 먹으며, 일본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한다. 도덕적 완벽을 추구하는 이성은 하고자 하는 욕망 앞에서 나약할 뿐이다.
#2.
요즘 대세는 스토리 대신 영상미를 때려 박는 것인지 궁금하다. 영화 소비를 안 한지 너무 오랜만에 3편의 영화를 연달아 봤는데 다들 알맹이보다는 껍데기에 치중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다웠다. '영화관에서 볼까' 하는 아주 작은 갈등까지 생겼다. 유럽을 연상케 하는 그때 그 시절 미국은 확실히 매혹적이었다. 거기에 세상 모든 초록 계열은 다 나온 듯한 색감들. 나는 여기서 일종의 굴복감을 느꼈다. 그 미친 영상미에 주인공의 연기와 얼굴이 더해져 영화는 완벽에 가까웠다. 거기에 속아 서사의 미흡함마저 넘어갈 아량이 생겼다. 하긴, 원래 사랑은 스며드는 것이라고 스스로 개연성을 부여해가며 영화에 몰입했다. (게다가 그는 축축해서 더 잘 스며들었을 것이다.) 사실 샐리 호킨스의 연기가 개연성이었다. 박사의 의문의 사랑은 그냥 넘어가도록 하자.
#3.
초록이 지배하는 영화에서 빨강이 등장한다. 엘라이자와 그의 사랑이 이루어진 후다. 대비되는 두 색은 내 마음속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샐리 호킨스가 너무 예뻤다.) human-thing과의 관계보다 human-human의 관계가 더 역겨울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이 잘 짚어냈다. 영화의 포스터이기도 한 둘의 포옹 장면은 아마 많은 이들이 뽑는 명장면이 아닐까 싶다. 엘라이자의 환한 미소는 쉬이 잊히지 않을 것이다. 또 다른 명장면은 'F-U-C-K-Y-O-U'를 날리던 그의 모습. 영화를 보면서 저건 대체 무슨 의미일까 혼자 궁예도 했는데 뻑큐였다니, 역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법을 어기는 사람다운 유쾌함이다.
아,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꼽은 장면 중 엘라이자의 노래 장면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이건 정말 내 취향이다. 나는 <라라랜드>의 천문대 장면도 별로 안 좋아한다. 뭔가 좀 뜬금없달까. 그는 젠장, 결국 신이었는데 엘라이자의 후두 따위 진짜 진작에 고칠 수 있지 않았을까. 어떤 사람의 해석에 따르면 엘라이자 역시 인어였다던데, 기발한 발상이다. 물가에서 발견된 고아, 말을 하지 못하고 목에는 3개의 상처가 나있다. 하지만 이 이론에 따르면 내 헤드라인인 '네가 물길이라도 난 뛰어들게'는 소용 없어진다.. 둘 다 물이면 의미 없잖아. 아무튼 소리에 반응하는 그가 말 못 하는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는 설정은 참 신기하다. 물론 감독이 왜 엘라이자를 벙어리로 설정했는지는 충분히 짐작 가지만.
자일스가 게이인 것을 끝까지 긴가민가 했다는 사람들도 봤다. 나는 처음 도넛 가게가 나왔을 때부터 게이네, 했던 부분이어서 의외였다. 좀 더 일찍 태어나거나 좀 더 늦게 태어났어야 했다는 자일스의 말은 너무 슬펐다. 뭔가 고흐가 생각나기도 하고. 그리고 젤다의 남편은 너무 화났다. 또 한 번 명언 가슴에 박고 간다. '네가 말을 할 때에는 그 말이 침묵보다 나은 것이어야 한다.' 리처드 새끼랑 같이 전기고문이나 받아라. 리처드 얘기가 나와서 하는 말인데, <헬프>에서도 묘사됐던 그 시대 지배층들의 아내는 굉장히 불쾌했다.
괴물이 나오는 영화라고, 극혐 주의라고 해서 걱정하면서 봤는데 웬걸, 그는 졸귀탱이었다. 하지만 고양이 먹는 건 좀 그랬어. 잠깐 탈덕했음.
#4.
OST. 왜 음악상을 받았는지 납득이 간다. 영화의 결점을 커버 치는 최고의 무기였다.
#5.
특히 시에서 사랑과 물을 연결 짓는 경우가 많다. 물속에 있지만, 전혀 숨 막히지 않는.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 느낌을 가장 잘 시각화해냈다. 아마 나는 며칠을 물에 빠져 허우젹거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