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속도를 따라 사는 삶
몇 년 전에, 한 해를 마무리하며 같이 살던 사람들과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길 했다. 자신의 지금 상황을 표현하는 수식어와 동물을 정하고, 그 이유를 말해보기로 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빠르게 달리고 싶어 하는 거북이'라고 말했다.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 갓 6개월이 지난 때였고, 내가 선택한 길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기적 같아서 흔들리는 날이 많았다. 나 자신의 어떠함이 늘 옆에 있는 누군가와 비교되어서,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질문이 멈추지 않았다. 절박함으로 애쓰는 시간이었지만, 그만큼 나에게 많은 스트레스와 부담을 주었다.
그런 나를 나 자신도,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사람처럼,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해내려는 사람처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며 자라게 된 것은 업무능력뿐이 아니었다. 다행인 일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얼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하고 싶은지 조금씩 알아가게 되었고, 그때, 나를 수식하던 이름을 새롭게 만들었다. 춤추는 거북이, 무구라고.
남들이 보기에 춤을 추는 건지, 그저 몸부림인지 알 수 없다 하더라도, 내가 춤을 추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충분했다. 좋은 기회가 생겨 바닷물에 들어갈 수 있으면 감사할 따름이었다.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을 테니. 그러나 대부분은 뻑뻑한 모래사장 위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것이 최선인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많았다.
내 주변에만 유난히 그랬던 걸까? 어린 나이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져서 두각을 드러내던 사람, 좋은 배경이 갖춰져서 빠르게 목표를 달성한 사람들만이 눈에 보였다. 나는 그들을 쉽게 질투했고, 남들에겐 말하진 않았지만 어딘가에 있을지 모를 그들의 흠을 상상했다. 그러나 이런 남모를 습관은 결국 내 마음을 상하게 할 뿐이었다. 내 속만 거메질 뿐이었다.
메마르고 쩍쩍 갈라진 모래밭 같은 마음을 가지고 일단 운동장으로 나갔다. 사실은 그 무엇보다 마음에 안 드는 건 다름 아닌 내 마음이었다. 아름다움 한 점 없는 버석버석 거칠어진 내 마음.
일단 달렸다. 달리면서 생각했다. 내 안의 지저분한 마음들도 달리면서 다 털어버리자.
왼발에 미움, 오른발에 다툼, 다시 왼발에 시기, 다시 오른발에 질투.
미움, 다툼, 시기, 질투.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콱콱 땅을 박차며 운동장을 달렸다. 내 안에 버리고픈 마음들을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발밑에 던져버렸다. 꾹꾹 밟혀서 조각조각 나 사라져 버려라. 다시는 내 마음속에 들어오지 말아라.
온몸에 땀이 비 오듯 내리고 있었다.
헉헉거리며 가빠진 숨을 다시 고르는 데에 시간이 좀 들었다. 크게 숨을 들이쉰다. 갈비뼈가 양옆으로 벌어지도록. 그리고 다시 크게 숨을 내쉰다. 배가 쏙 안으로 들어갈 정도로. 몇 번 반복하고 나니 다시 평소의 숨소리로 돌아갔다.
옆에 있는 사람이 아닌 나 자신의 숨쉬기. 그리고 나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속도.
다른 데를 향해 곁눈질하는 것은 그저 내 마음의 조급함만 부추길 뿐이다.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빛나는 문장과 아름다운 기록이 부럽고 질투가 나서 쉽게 잠들지 못하곤 한다. 그러나 그럴 때마다 마음속에서 떠오르는 말이 있다.
나는 나만의 속도가 있어.
나는 나만의 속도를 따라서 갈 거야.
덜컹거리던 심장이 이내 사그라든다. 잠잠히 제 속도를 찾을 때까지. 잠시만, 두 눈을 감고 나를 기다려준다. 빠르게 달리는 거북이가 아니라, 춤추는 거북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속도를 찾아, 그렇게 계속 나한테 주어진 길을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