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한 기회로 당신께 가 닿기를
선생님, 여름이 되니 모기가 극성이네요. 저는 모기에 무척 취약해서 자주 모기에 물리곤 합니다. 그래서 모기가 사라졌음 좋겠단 생각도 자주 해요. 이런 생각은 아마 저 혼자 하는 건 아닌가 봐요. 최근에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모기를 유전적으로 조작해서 번식을 못하게 만들어 멸종시킬 수 있는 기술이 이미 현대의 과학자들에게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순록 때문이래요. 뜬금없이 순록이라니,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굉장히 놀라운 사실이었어요. 순록은 자신들의 무리가 살 지역을 찾아 이동할 때 모기의 거주지를 피해서 옮겨 다닌다고 합니다. 그런데 만약 모기가 아까와 같은 방법으로 멸종하게 되면 순록의 이동경로에 변화가 생긴다고 해요. 그러면 우리가 다 미처 예측할 수 없는 생태계의 균형에 큰 흔들림이 일어나는 것이겠죠. 쉽게 말해 먹이 사슬이 깨지는, 모기의 멸종이 불러오는 나비효과라 할까요.
나는 무심코 선택했고, 우연히 마주하게 되었다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무척이나 필연적이고 당연한 일이었을 수도 있다는 관점으로 보이기도 합니다. 지금 이렇게 제가 의자에 앉아 글을 쓰고 있는 서점과의 만남만 해도 말이에요. 처음엔 그저 무료 강좌를 듣기 위해 우연히 방문했던 곳인데, 그로부터 거의 일 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니, 그때의 저는 어떻게든 계속해서 제가 글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환경이 필요했고, 이곳은 그런 저에게 아주 적합한 공간이 되어주었습니다. 우연이 돌아보니 필연처럼 느껴졌다 말한다면 너무 비장한 표현이 될까요. 그래도 저는, 작년 여름날의 우연이 일 년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의미를 입게 된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마도 지나온 시간이 그 우연에게 좀 더 무게를 부여해 준 것이겠죠.
최근에 또 다른 우연한 만남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합니다. 날씨가 무척 더웠다가도 열대지방의 스콜처럼 비가 쏟아지기도 했던 때에 저는 서울의 어느 유명한 골목을 걷고 있었어요. 특히 밤이 되면 다양한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던 동네를 저는 한낮의 태양이 내리쬘 때 걷고 있었고, 비가 오면 쓰려던 우산을 양산처럼 받쳐 들고서 한참을 걸었습니다. 골목길을 걸어도 걸어도 끝이 안보이길래, 무더위를 잠시나마 피하고 목도 축일 겸, 방금 길을 걷다 지나쳤던, 눈에 들어온 작은 카페에 들어가서 차가운 유자차를 한 잔 시켰습니다. 아주 작은 가게였고 사장님 홀로 운영하는 공간이었는데요, 음료가 나오면서 사장님과의 대화가 자연스레 시작되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카페에서는 금지된 몇 가지가 있었어요. 혼자 책 읽고 공부하기 금지, 사장님 빼고 일행 하고만 대화하기 금지, 연인이 와서 애정행각 금지. 마침 저는 공부할 책도, 일행도, 애정행각을 벌일 연인도 없었던 차에 사장님의 규칙을 무리 없이 지킬 수 있었어요.
동네를 구경하다가 시원한 음료 한 잔 마시고 싶어서 왔다는 제 말에 사장님은 이런 것도 다 인연이라며, 이렇게 우연히 만나기 위해서는 전생에 삼천 번은 만났어야 되는 일이라고 말했어요. 저는 전생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 표현 뒤에 담긴 반가움과 환영의 마음이 고마웠어요. 그날은 정말 정말 더웠거든요. 저는 혼자서 조금 지친 마음으로 길을 걷고 있기도 했고요. 이미 그 사장님은 저 말고도 이렇게 우연히 가게에 들어와 만나게 된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며 단골을 만들어 온 것 같았어요. 갈 시간이 되어서 카페를 나오며 제가 이곳의 단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한 번쯤은 다시 사장님을 보러 올 수도 있겠다 생각했어요. 돌아보니 그날의 만남이 제겐 좀 필요했던 위로의 시간이었거든요.
선생님, 저는 제게 주어진 이 인생의 복무시간을 그래도 잘 살아보려고 노력하는데, 삶이라는 게, 또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세상이라는 게 참 알면 알수록 모르겠더라고요. 무조건 열심히 산다고, 최선을 다한다고 해서 늘 그것이 정해진 공식처럼 좋은 결과를 보장해주지는 않더라고요. 한 편 게으르고 악하게 사는 이에게 반드시 합당한 처벌이 주어지지는 않는, 불합리하고 모순적으로 느껴지는 일도 제 생각보다 참 많이 이 세상에선 공공연하게 일어나고 있더라고요. 모든 것이 내가 계획했던 것처럼, 생각했던 것처럼만 흘러간다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참 많았었는데.
그러나 돌이켜보니 제가 예측할 수 없었던 우연들이 제 삶의 균형을 뒤흔들며 오히려 지금까지 살아올 힘을 주곤 했다는 걸 발견하게 되었어요. 참 신기한 일이에요, 그쵸?
앞으로 제 삶엔 얼마나 더 많은 우연들이 찾아올까요? 전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많이 기대돼요. 그 우연들이 제게 선물할 균열과 낯섦, 그리고 일상의 생기 같은 것들 말예요.
오늘 저의 짧은 편지는 어떠셨나요? 선생님께 우연히 가 닿은 제 이야기가 어떠셨을까 궁금하네요. 우리는 우연으로 기억되고 끝나게 될까요, 아님 시간의 더께를 입고 필연과 자연, 당연이 될까요. 아직 알 수는 없지만, 다만 바라는 건 재미있으셨길 바라요.
몸과 마음 건강한 여름 되시길.
아참, 그리고 모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