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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Aug 15. 2015

공수래 공수거

즐거운 빈털터리가 되는 방법

호시절 유행가 후렴구마냥 머릿속에 항시 우물대는 말이 있다. 요즘에는 그것이 공수래 공수거이다. 가령 이어폰 두알로 귓구멍을 단단히 틀어막고서 뻐스 창밖의 간판을 읽을때나, 스킨로션를 바르다가 삐죽 튀어나온 눈썹 몇올을 눈썹칼로 깎아낼때처럼 말이 없어지는 시간이면 자꾸만 머릿속으로 공수래공수거 공수래공수거 거린다. 무슨 좌우명이나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가사도 아닌데 희한한 리듬까지 실어서 나는 연신 내적 되새김질을 한다. 환장하는 것은 어떤 필요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고민할 때나 친구에게 문자를 할때도 계속 공수래공수거가 머릿속 단어 중에 선두로 튀어나온다는 것이다.


내가 공수래공수거를 처음 외우던 날은 열일곱 똑단발에 도덕이니 기술가정이니하는 것을 배우던 시절이었다. 그때 울 도덕선생님께서 특이하셔서, 수행평가로 나훈아씨의 '공'이라는 노래 가사를 외워오도록 하였는데, 관련 성어를 공수래공수거라고 필기를 하였었다. 그러고 중간 시험용으로 잠깐 공부하고 잊으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지금껏 그 노래 가사와 공수래공수거를 외우고서 머릿속으로 우물댄다.


나훈아씨는 '공'에서 삶의 덧없음을 이야기하면서, '백년도 어려운 것을 천년을 살것처럼'이라고 노래한다. 난 고때도 그 말이 참 맞다고 생각하면서 교복입은 책상머리에서 끄덕끄덕 했었는데, 어째 아이라인 그린지 반십년이 지난 지금껏 그 가사를 잊지않고 되뇌인다.

/살다 보면 알게 돼 알면 웃음이 나지

우리모두 얼마나 바보처럼 사는 지

잠시 왔다가는 인생 잠깐 머물다갈 세상

백년도 힘든 것을 천년을 살 것 처럼


하도 공수래공수거가 나를 괴롭혀서 우째 현실에서도 본격 공수래공수거 펄슨이 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엄청 좋은 방법을 고안했다. 돈을 쓰는 상황일 때마다 공수래공수거를 생각하믄서 '죽을때 가져가지도 못하는데 지금 미리 이만원쯤 더 쓰면 어때?'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마 나는 성실해왔고 성실할 예정이니 죽기전에 통장에 암만 적어도 몇천만원을 있을 것 같고, 그중에 이천원 이만원 땡겨쓴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사치를 야기할 수 있는 마인드이지마는 그럴때는 본래의 짠순이 모드를 발동시키고, 내가 세상살이에 쪼잔해지는 순간에 이것을 생각하면 아주 좋다.


뭐 예를 들어서 내친구랑 쏘주한잔 얼큰하게하고 돈을 나누었을 때 일이천원이 애매할 경우에 내가 조금 더 내는 것이다. 나는 만수르는 아니지만 그럴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면 만수르님처럼 진심을 담아 시원하게 쾌척할 수 있다. 또 내동생이 시험으로 고통받고 있을 때, 나도 백수나부랭이에 불과하지마는 이런 생각을 하면 즐거웁게 응원의 도너츠나 커피같은 것을 쏘아줄 수 있다.


돈은 인간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성공한 허상이다. 사람들은 질깃한 녹색 종이를 앞에 두고 다함께 이것을 만원이라하자 약속의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폐의 통일으로 인간 생활에 편리를 가져다주었지만, 한편으로는 인간보다 앞서는, 가치의 주객전도를 선도하여 윤리라는 것에 혼란을 주기도 해왔다. 사람에 따라서 다양한 가치의 중심점은 다를 수 있지만, 가치의 주객전도가 일어나는 순간은 다같은 마음으로 비판하는 것이 옳다. 그러한 태도는 사회의 기본적인 가치 판단의 토대로 자리하여, 괜찮은 세상을 이어나가게 한다.


나는 그다지 돈이 없지만, 앞으로도 딱히 없을 것 같다. 내게 필요한 돈은 나라는 사람이 사회적으로 기여함을 인정받는 성취감을 주는 정도와 내 친구들에게 맛있는 술을 일년에 한두번 대접할 수 있는 정도이다.


난제, 내가 입술 분홍케 칠한 아줌마가 되면, 나도 돈을 좋아하게될지도 모르겠다. 많은 돈을 장롱 뒤에 쟁여두고싶을지도 모르겠다. 그때에 빈털터리 자신을 보며 우울해진다면, 커피믹스 두개타서 거실 소파에 앉아, 다시 이십대의 일기를 읽으며 공수래공수거로 내 욕심쟁이 마음을 마인드컨트롤 해야겠다. 그리고서 혹시라도 누구든 나처럼 빈털터리가 되고 싶은 이가 있다면 공수래공수거를 젊은 시절부터 자주 우물댈수록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떠날 때 가져갈 나의 빈 손. 공수래공수거이다.









_ 제가 한글로 글을 쓸 수 있도록 광복을 이끌어주신 모든 독립운동가 분들과 어려운 시절에도 열심히 살아주신 옛 분들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어렵게 물려주신 이곳에 긍정적으로 기여하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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