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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Sep 19. 2015

아빠카드

아버지와 나의 연결고리

저녁 도보의 시간에 크리스마스의 냄새를 맡았다. 이거슨 즉슨 조곰만 더 기다리면 붕어빵의 계절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붕어빵은 밀가루도 맛있고 단팥도 맛있어서 맛 더하기 맛의 조합이라 정말 맛있다. 값도 싸기때문에 저녁술먹고 집에오는 길에 가게앞에 덜컥서서 만수르마냥 친구들에게 하나씩 쥐어줘도 삼처넌도 안하는 고마운 빵이다.


울아빠는 술은 좋아하지 않으시지만 입김이 나오는 계절에 약주를 하시면 누랴낚시해왔따나와봐라 하믄서 기름이 덕지덕지 새어나온 종이봉다리를 건네곤 하셨다. 지난 8월에는 본가에 있으면서 낚시마니아 아부지덕분에 주2회씩 바다구경을 했는디, 9월이 되어 고작 삼주남짓 바다냄새 안맡았다고 아빠가 보고싶다.


아빠는 스물둘이 되던 해에 나에게 아빠이름의 카드를 쥐어주셨는디 그걸 긁으믄 아빠에게 결제확인문자가 간다. 엄마는 모르게 아빠만 문자를 보면서 저멀리 딸내미가 살아있음을 확인하신다. 경상도냄자 바다냄자인 울아빠는 간지러운 전화나 문자를 못하셔서 내가 가끔 카드를 쓰믄, 고 내역을 보면서 이놈이 잘묵고다니는구나 어디가아프구나 확인하시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허리가 아파서 아침에 정형외과에 갔는디, 구처넌짜리 정형외과 결제 알림에 어디 아프냐고 대낮전화가 왔다. 하루에 여섯마디 남짓하시는 무뚝뚝 울아빠의 전화라니 감동의 모멘트라 이름지어도 부족하지 않은 순간이었다.


아빠카드를 오랫동안 안쓰면 가끔씩 살아있냐고 문자좀하라고 하면서 넌지시 연락이 온다. 나는 그러면 그날의 점심밥은 아빠의 카드로 먹으면서 아빠딸냄잘살아있소하고 응답한다.


카드결제문자는 나와 아빠 사이의 연락책이고 안부인사이다. 오늘도 올리브영에서 몇가지 주전부리와 립글로즈를 아빠카드로 긁으면서 아부지를 생각했다. 나는 마흔이 넘어서도 주책맞게 울아빠카드로 가끔 점심을 먹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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