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있다
나는 이주 전에 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곧바로 대학원생이 되어, 연구실에 출근한 지 오늘로 1주일 째다. 아직 특별히 힘든 점은 없지만, 아무래도 학부 때와 다르게 매일매일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해야 하는 것과, 방학이 따로 없다는 것을 떠올리면 '좋은 시절 다 갔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살짝 씁쓸하다. 지금 이 시간조차 충분히 좋은 시절인 걸 알면서도. 뮤지컬, 컨퍼런스, 자원봉사, 동아리 임원, 여행 등 학부 때 나름 다양한 경험을 했지만, 지금 와서는 더 많은 것을 하지 못한 것을 아쉬워한다. 특히 해외여행을 많이 해보지 못한 게 가장 아쉽다. 그나마 올해 말에 원 없이 유럽을 종횡무진 유랑하다 온 것을 위안 삼고 있다.
나의 학부 시절 마지막 여행은 두 달 전에 끝났다. 12/18에서 1/18일까지 31일 동안, 매일매일 색다르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맛있는 음식도 참 많이 먹었고,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다. 연주회에, 때로는 엄청난 자연경관에 풍경에 눈을 떼지 못하기도 했다.
당황스럽고 어이없었던 일도 있었다. 파리 개찰구에서 소매치기에게 친구 뒷주머니가 털릴 뻔한 일, 프라하에서 체코 여자에게 도촬 당한 일, 크리스마스에 차가 끊겨 어둑어둑한 강변을 따라 숙소까지 2km를 떨면서 갔던 일, 이상형을 어이없이 놓친 일, 자다가 환승 기차를 놓쳐 계획이 틀어진 일, 쓸데없이 돈을 날린 일, 로마 팔찌 사기단을 역관광 시켰던 일 등등, 당시에는 어쩔 줄 몰라 당황했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때 생각만큼 심각한 일도 아니었고, 그것조차 추억이 되었다.
여전히 한 장씩 여행 사진을 넘겨 볼 때면 그때 풍경과 내가 느낀 감정들이 오롯이 떠올라 웃음이 난다. 대체 갔다 온 지가 언제인데 여행기는 언제 쓸 거냐던 친구의 말을 계기로, 이 추억이 저 멀리 사라지기 전에 글로 남겨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내 친구 두 명이 이번 여름 방학 때 유럽 여행을 간다고 한다. 그들이 우리 못지않게 즐거운 여행을 하고 돌아오는데 보탬이 되고, 지금보다 더욱 치열하게 살고 있을 미래에 들춰보고 추억에 잠기기 위해 주섬주섬 여행에서 쓴 글, 사진들을 늘어놓고 여행기를 쓰기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