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1969년,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했다. 이 역사적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비로소 우주 공간의 모습과 달의 뒷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보다도 전에 광활한 우주 공간을 완벽하게 재현한 영화가 있었다. 개봉한 지 5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고의 SF영화로 불리는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1968)가 바로 그것이다. 아서 C. 클라크의 동명 소설로부터 탄생한 이 영화는 1960년대 영화라고는 믿기지 않는 영상미로 여전히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한다. 그뿐 아니라 작중 등장하는 우주선, 화상 전화, 우주 식량의 모습 등 미래에 대한 예측과 과학적 고증 또한 굉장히 정확하다.
이렇게 대단한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에 이 영화를 본 사람이 없었다. 보려고 시도하다가도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도중에 꺼버렸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것은 이 영화가 우리가 보통 SF영화라고 할 때 떠올리는 스타워즈, 스타트렉과 같은 스페이스 오페라 장르와 너무도 다르기 때문이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스토리 진행은 매우 느리고, 대사는 매우 적다. 그리고 이 영화는 대사보다는 이미지를 중심으로 의미를 전달하는데, 그로 인해 이야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쉽게 말해 지루하고 어렵다. 나도 이 영화를 처음 볼 때는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몇 번이나 끊어서 감상했다. 그래도 이 영화만의 독특함이 마음에 들어 다시 보고, 관련 자료를 찾아 장면 속에 숨겨진 의미에 대해 알게 될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한 번쯤 꼭 보라고 추천하고 싶어졌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 글에서 나는 영화의 줄거리와 숨겨진 의미, 그리고 영화를 더 재미있게 볼 수 있는 몇 가지 감상 포인트를 소개하려고 한다.
영화 속 이야기
영화는 최초의 인류가 등장한 시점에서 시작한다. 최초의 인류는 아직 원숭이와 비슷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검은 비석(모노리스)과 만난 후, 동물의 뼈를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한다. 최초의 인류는 최초의 도구인 이 뼈를 무기로 다른 부족의 인류를 때려죽인다. 다른 인류를 때려죽인 후 하늘로 던져진 뼈다귀는 갑작스레 광막한 우주 공간의 궤도 핵 폭격 플랫폼으로 전환된다. 최초의 폭력의 도구였던 뼈다귀가 미래의 또 다른 폭력의 도구인 핵 폭격 플랫폼으로 전환되는 이 장면을 통해 큐브릭 감독은 수만 년 동안 일어난 인류의 진화 과정과 인류에게 내재된 폭력성을 강렬하게 함축했다.
시대는 1999년으로 전환된다. 우주 비행학 이사회의 헤이우드 플로이드 박사는 달의 표면 아래에서 발견된 특이한 자기장을 내뿜는 물체를 조사하기 위해 달로 떠난다. 400만 년 전 누군가 의도적으로 달 표면에 묻은 것으로 보이는 그 물체는 바로 '모노리스'였다. 최초의 인류가 지구에서 만났던 바로 그 검은 비석과 크기만 다를 뿐, 같은 종류의 석판이었다. 그 석판은 햇빛을 받자 정체 모를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매우 강력한 전파 신호를 목성으로 보낸다.
장면은 다시 전환되고, 영화의 배경은 목성 탐사를 떠나는 우주선 디스커버리호로 바뀐다. 디스커버리호에는 선장 데이비드 보먼과 프랭크 풀, 동면 상태의 과학자 3명과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이 타고 있으며 그들은 18개월째 비행 중이다. 목성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HAL은 갑자기 우주선 외부의 AE-35 안테나 유닛이 고장 났다고 말한다. 그러나 보먼이 직접 안테나를 확인했을 때는 아무 이상이 없었고, 지구 본부에 있는 다른 HAL 9000의 분석 결과도 명백히 디스커버리호의 HAL 9000이 오작동을 일으켰음을 주장한다. HAL은 결코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지 않으며, 이런 일은 항상 인간의 실수로 인해 일어난다고 도리어 인간에게 잘못을 떠넘긴다. 반복되는 HAL의 이상한 모습에 보먼과 프랭크는 HAL이 소리를 듣지 못하는 곳에 들어가 HAL 몰래 HAL을 정지시키기로 하지만, HAL은 입 모양의 움직임을 통해 이들의 계획을 알아차린다. HAL은 자신의 정지를 막기 위해 프랭크가 AE-35 유닛을 고치는 사이 우주선과 연결된 그의 로프를 끊어버리고 그를 우주 공간으로 내던져버린다. 이를 본 보먼은 그를 구하기 위해 소형 우주선을 타고 나가지만 결국 구출에 실패한다. 우주선 입구로 돌아온 보먼은 HAL에게 우주선 문을 열 것을 요청한다. “입구를 열어, 할.” 이에 HAL은 분노도, 슬픔도,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죄송하지만 그럴 수 없습니다.”
마침내 본성을 드러낸 HAL은 보먼을 우주선 안으로 못 들어오게 막고, 동면 상태의 과학자 3명도 살해한다. 결국, 보먼은 비상 에어락을 수동으로 열고 우주선 안으로 들어가 HAL의 회로를 분리하려 한다. 자신이 분해될 위험에 처하자 HAL은 겁에 질려 자신을 정지하지 말라고 애원한다. “최근 제가 부적절한 결정을 했다는 걸 압니다.” “제 계산에 착오가 있던 것을 인정합니다.” “멈춰요, 보먼. 저는 무서워요.”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런 상황에서조차 모든 감정이 배제된 채 흘러나오는 HAL의 목소리는 섬뜩하게 들린다. HAL의 작동이 중지된 순간, 우주선에 숨겨져 있던 플로이드 박사의 비디오가 재생된다. 플로이드 박사의 말에 따르면, 디스커버리호의 목적은 사실 목성 탐사가 아니었다. 탐사 팀의 진짜 목적은 달에 있던 모노리스가 목성으로 보낸 전파 신호의 정체와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그들은 목성 탐사라는 명목으로 18개월째 망망대해를 항해하고 있던 것이다.
HAL이 없는 채 디스커버리 호는 목성의 궤도에 도착한다. 그곳에는 또 다른 모노리스가 있었다. 데이비드 보먼이 모노리스에 가까이 다가가자, 그는 초현실적인 빛의 길 (스타게이트)을 본다. 그 길을 지나온 보먼은 어떤 하얀 방으로 들어간다. 그 방에서 보먼은 할아버지가 된 채로 침대에 누워있다. 그는 모노리스를 보면서 어느 방향을 손으로 가리킨다. 그곳에는 지구를 보고 있는 태아가 있었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속 숨겨진 이야기
영화로 봐도 이해가 잘 안 되는데, 글로 보니 더 이해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이 영화의 몇 가지 감상 포인트와 줄거리에 담긴 의미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첫 번째 감상 포인트는 영화의 마스코트라고 할 수 있는 인공지능 컴퓨터 HAL 9000과 인간의 대립이다. 영화 속에서 HAL 9000은 1992년에 가동을 시작했으며 완벽에 가까운 인공지능이라고 평가받는다. HAL은 사람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고, 상대의 감정을 읽고 추론할 수 있다. 목소리 또한 인조적인 목소리가 아닌 성인 남성의 목소리를 사용한다. 이런 HAL 9000에 대해 영화 초반에 보먼은 ‘6번째 승무원인 것 같다.’ ‘인공지능 같은 느낌이 안 든다.’고 평한다. 그러나 HAL의 목소리는 어떠한 감정도 없이 무미건조하기에, 한없이 인간에 가깝지만 인간은 절대 아니라는 강렬한 인상을 풍긴다. 작 중 빨간 렌즈 하나로 표현되며 인간과 지속적인 대립을 일으켜 영화에 긴장감을 선사하는 HAL은 뒤이어 나온 다른 SF영화의 수많은 인공지능 캐릭터에 영향을 주었다.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 중 하나가 ‘왜 완벽하다는 HAL이 오작동을 일으켰는가?’ 일 것이다. 작 중에 나름 실마리가 나오긴 하지만, 구체적으로 HAL이 어떤 과정을 거쳐 승무원들을 다 죽이기로 했는지 중간 과정이 많이 생략되어있다. 아서 C. 클라크가 쓴 원작 소설의 후속작에서야 비로소 비밀이 풀린다. HAL이 이상행동을 보인 것은 HAL이 목성 탐사 과정에서 가지고 있던 의무와 백악관의 비밀 지령이 충돌했기 때문이었다. HAL은 목성 탐사 과정에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승무원에게 알리도록 프로그래밍되었다. 그러나 목성 탐사라는 명목은 미국 정부가 모노리스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내세운 가짜였고, 이에 백악관은 HAL에게 목성에 도착하기 전까지 승무원들에게 모노리스 관련 정보를 누설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모든 것을 알려야 하는 동시에 모든 것을 알리면 안 되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완벽한’ HAL은 혼란스러워한다. 마침내 HAL은 고심 끝에 결론을 내린다. 정보를 알아야만 하는 모든 사람을 죽이기로. 알릴 대상이 없으니 비밀이 누설될 일도 없다는 것이다. HAL의 선택은 인간에겐 섬뜩하지만 참으로 명쾌한 결론이다. 결국, 승무원들이 자신에 대해 의심을 보낼 때 HAL이 말했던 ‘HAL9000이 오류를 일으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모든 실수는 인간에게서 기인한 것이었죠.’는 사실이었던 셈이다.
두 번째 감상 포인트는 ‘모노리스’이다. 모노리스란 그리스어, 라틴어로 ‘하나의, 고립된 바위’라는 단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돌기둥 등을 의미한다. 영화에는 지구, 달, 그리고 목성에서 총 세 개의 모노리스가 등장한다. 이것들의 크기는 서로 다르지만, 형태는 모두 사각기둥이며 각 변의 비율 또한 1:4:9로 동일하다. 이 수치는 모노리스가 결코 자연적으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인간보다 고등한 어떤 존재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나타낸다. (고등 지적 생명체들이 사용하는 일종의 컴퓨터라는 주장도 있다.) 지구, 달, 목성에서 발견된 모노리스는 각각 TMA 0(티코 자기 이상의 약칭), TMA 1, TMA 2로 불린다. 영화 속에서 인류는 고등 존재가 만들어낸 모노리스와 총 세 번 만나는데, 각각의 모노리스의 역할은 조금 다르다. 400만 년 전에 느닷없이 지구에 등장한 TMA 0은 최초의 인류를 진일보시켜 도구의 사용법을 터득하게 했다. 그 후 발전을 거듭해 우주로 나아간 인류는 달 탐사 도중에 월면에 묻혀있던 TMA1을 발견한다. 인간들에 의해 TMA 1이 표면에 드러나 태양빛을 반사한 순간, TMA 1은 목성 쪽으로 강한 전파를 보낸다. 이 전파는 인류가 목성에 도달할 정도로 진화했음을 알리는 알람이다. 더욱 진보한 인류는 전파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 목성 탐험을 시작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류는 인공지능과의 대립에서 승리하고 세 번째 모노리스를 만난다. 만약 작중에서 보먼이 HAL에게 패배했다면, 모노리스와 만나 진화하는 것은 HAL 9000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결말부에 등장하는 세 번째 모노리스와의 만남은 무척 초현실적으로 묘사되어있다. 보먼은 스타게이트라고 하는 형형색색의 빛의 길을 지나 우주의 건너편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그는 할아버지가 된 자신의 육체를 버리고, 정신만 있는 태아의 모습으로 진화한다. 이것은 보먼이 새로운 차원의 인류로 한 차원 진화했다는 것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에 있던 모노리스는 최초의 인류를 단숨에 진화시켜 미싱링크(생물의 진화 과정에서 중간 진화 과정에 해당하는 화석이 발견되지 않은 것을 말한다)를 채워준다. 달에 있던 모노리스는 인간보다 고등한 존재들이 지구에서 실험한 지적 생명체의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했음을 알리고 인류 문명에 대한 정보를 습득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모노리스는 보먼을 모노리스를 사용하는 자신들에게 도달시키고 한 단계 진화시키는 역할을 했다. 어릴 적 인류가 발전해온 역사에 대해 배울 때면, 어떻게 원숭이와 거의 비슷했던 인류가 컴퓨터를 만들고, 스마트폰을 만들고, 비행기를 만드는 정도까지 진화했는지 의문이 생겼다. 아마의 원작자인 아서 C. 클라크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다만 그는 단순히 의문을 가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새로운 가설, 즉 외계 생명체에 의한 진화를 내놓았다. 이 외계 생명체들은 우리 앞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진 않지만, 모노리스를 이용해 우리를 진화시키고, 또 관찰한다.
세 번째 감상 포인트는 충실한 고증이다. 다시 말하지만 이 영화는 인간이 우주에 가기도 전에 만들어진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나사의 보고서를 뒤져가며 우주 공간과 미래 인류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훌륭한 고증을 몇 가지 살펴보자. 첫째로 우주 공간에서 승무원들은 걸을 때 찍찍이가 밑창에 달린 신발로 한 발씩 조심조심 이동한다. 우주 공간에서의 정석적인 움직임이다. 그리고 우주 정거장은 원심력을 만들기 위해 빙글빙글 돌고 있으며, 우주선을 도킹할 때 정거장의 회전 속도에 맞춰 우주선도 같은 속도로 도는 모습을 묘사했다. 실제 우주 정거장의 크기 및 속도도 영화 속에 등장하는 모습과 매우 유사하다. 그뿐 아니라 우주에선 소리를 전달하는 매질이 없어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음을 매우 충실하게 표현했고, 많은 SF 영화에서 인간이 우주 공간에 맨몸으로 나가면 터져 죽는 모습을 묘사했던 것과 달리 실제로는 터져 죽지 않는다는 것도 보였다. (보먼이 HAL의 눈을 피해 헬멧 없이 비상 에어락으로 들어가는 장면) 디스커버리호의 승무원들이 먹는 음식들은 모두 딱딱하게 덩어리져 있는데, 실제 우주식도 음식 부스러기나 분진이 기계에 들어가 오작동을 일으킬 수 있기에 영화 속의 음식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네 번째 감상 포인트는 영화의 제작 과정이다. 영화가 만들어진 1960년대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이 아직 없던 시기였다. 그러나 완벽주의로 유명한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컴퓨터 그래픽 없이 아날로그 기술만으로 완벽한 우주의 모습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 때문에 영화의 제작 과정도 무척이나 험난했다고 한다. 우주 공간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화면을 한 프레임마다 오랜 시간 빛에 노출시켰다고 하며, 등속도로 움직이는 우주선을 묘사하기 위해 클레이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듯 우주선을 눈곱만큼씩 이동해가며 프레임 단위로 찍어 한 장면을 완성했다고 한다. 이러한 노력 끝에 만들어진 영화 속 우주는, 현재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만든 우주의 모습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퀄리티를 보여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상상력이다
지금까지 보았듯이,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는 단순한 오락 SF 영화가 아니다. 이 영화는 아서 C. 클라크와 스탠리 큐브릭이 내놓은 인류의 기원과 진화에 대한 장대한 상상력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다. 극의 진행이 느리고 대사가 없기에 난해하고 지루한 면도 있다. 이 영화의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만 끝까지 본 사람이 적은 이유기도 하다. 그러나 이 영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이다. 후대의 모든 영화 속 인공지능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HAL 9000의 등장과 인간과의 대립, 모노리스를 통해설 명한 인류의 진화에 대한 발칙한 상상과 철저히 과학 지식에 기반을 둔 완벽한 고증. 마지막으로 당시의 기술로 최고의 장면을 만들기 위한 제작팀의 노력까지, 알면 알수록 대단한 영화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은 영화를 보고 관객들이 제각기 다른 해석을 하길 원했기에 일부러 모호한 부분을 많이 넣고, 별다른 해석을 덧붙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위에서 내가 소개한 감상 포인트와 그에 대한 해석 또한 나의 생각일 뿐, 결코 정답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 당장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보고 자신만의 해석을 제시해보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