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 예술을 읽다
작년 12월, 교양 수업 과제로 동생과 함께 덕수궁 근처에 있는 국립 현대 미술관에 갔다. 미술관의 이름대로 전시 중인 대부분의 작품들은 2차원의 회화가 아닌 3차원 조형물 또는 영상, 음악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올해의 작가상 후보인 송상희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와 미국 독립 영화의 대부인 요나스 메카스의 <365일 프로젝트>였다. 두 작품 모두 영상을 예술의 표현 매체로 활용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작품을 깊이 들여다보면 이내 작가가 이 두 작품을 만든 목적,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매우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송상희,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
너비 10m가 족히 넘는 벽에 커다란 스크린 세 개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세 개의 스크린은 소리 없이 서로 다른 영상을 보여준다. 오직 섬뜩한 오르간 소리만이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귓전을 울린다. 세 대의 카메라는 각각 프리파야트, 바이마르 유대인 강제 수용소, 홋카이도의 폐탄광, 노근리 쌍굴다리, 보도연맹 학살지를 앵글에 담는다. 이 모든 장소는 과거에 강자와 약자가 확연히 구분되었던 곳이자, 그로 인해 약자에 대한 탄압이 이루어졌던 곳이다.
또한 작가는 우리나라 곳곳에 전해지는 '아기장수 설화'를 자막으로 전달한다. 임금의 폭정이 심하던 시절, 어느 마을에서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린 아기가 태어난다. 폭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기다리던 영웅이 될 운명을 가진 아기가. 마을 사람들은 아기의 존재를 숨겼지만 결국 소식은 임금의 귀에 들어가게 되고, 아기를 살려두면 가족은 물론 온 마을이 몰살되리라는 두려움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이 아기를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결국 겁에 질린 부모는 아기를 죽이고 만다. 아기장수는 후에 무덤에서 부활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권력의 손에 재차 죽고 만다.
요나스 메카스, <365일 프로젝트>
거대한 홀 가운데에 열두 개의 텔레비전이 원형으로 놓여있다. 각 텔레비전에는 1월부터 12월이라고 쓰여있는 12개의 스티커가 붙어있고, 끊임없이 영상이 나온다. 2007년에 제작된 <365일 프로젝트>는 요나스 메카스가 1년간 매일 한 편의 비디오 다이어리를 만든 것을 달 단위로 묶은 것이다. 영상에는 친구들과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는 등 소중한 추억도 나오지만, 그냥 산책을 하거나, 아침을 먹는 등 우리가 일일이 기억하지 않는 사소한 일도 나온다. 모든 영상은 별다른 특수 효과나 편집 없이 요나스 메카스가 보낸 있는 그대로의 1년을 재생한다.
송상희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과거 약자에 대한 탄압이 자행되었던 공간과 아기장수 설화를 통해 관람자에게 인간의 잔혹성 때문에 어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는지 알리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반성하자는 속뜻을 전달한다. 항상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아기장수 설화’ 속에서 자신들의 안위가 걱정되어 아기를 죽이기로 결정한 마을 사람들은 권력에 거스르지 않기 위해 타인의 고통에 귀를 막고, 공동체를 위한 불가피한 희생이라며 폭력을 합리화하고 방관하는 과거 우리의 모습이다. '아기장수'는 타인의 고통을 방관하는 이들로 인해 희생된 모든 희생자들을 대변한다. 이렇듯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는 우리 민족의 전통 설화와 과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던 공간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을 고발하고 우리들에게 반성을 촉구한다.
반면 요나스 메카스의 <365일 프로젝트>는 프레임으로 쓰여진 삶에 대한 찬가다. 영상들의 비서사적 구성은 전형적인 영화의 산문체와는 다르며, 오히려 노래나 시의 운문체와 비슷하다. 앞서 말했듯, 그는 이 작품에서 일상의 소중한 추억뿐 아니라 매일 반복되는 사소한 순간마저 열렬히 포착했다. <365일 프로젝트>가 영상으로 써 내려간 일종의 일기라는 관점에서, 이것은 마치 일기에 ‘아침을 먹었고, 양치를 했고, 점심도 먹었다.’는 당연한 내용을 적는 것과 같다. 학생이 이런 식으로 일기를 써서 낸다면 보통 선생님에게 ‘그렇게 특별한 일이 없느냐.’느니, ‘일기 쓰기가 많이 귀찮았냐.’ 등의 싫은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요나스 메카스는 이 작품을 통해 이렇게 주장하는 듯하다. 우리가 보내는 모든 시간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그렇기에 우리가 무엇을 하든 삶의 모든 순간은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고, 축복해야만 한다고. 따라서 이 작품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소중히 여기자는 가사의 찬가일 수밖에 없다.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와 <365일 프로젝트>는 같은 영상 매체를 활용했지만 전달하는 메시지와 삶과 예술을 연관 짓는 방법에서 매우 큰 차이를 보인다. 송상희의 <다시 살아나거라 아가야>가 관람자에게 고발과 반성을 촉구하며 삶 속에서 예술을 끌어냈다면, 요나스 메카스의 <365일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삶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삶 자체를 예술로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