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앞으로 나올 몇 편의 글들은 내가 본 영화들 중에 테마로 묶어 소개해볼 만한 것들 위주로 5편 이내로 골라 쓰일 것 같다. 이유는 단순하다. 사실 발행된 글을 제외하고 서랍에 담겨있는 몇 편의 글들을 보니 만족감이랄까, 약간 그런 류의 감정에 대한 욕구가 있는 나에게는 많이 부족했고,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가 본 영화 중에 그래도 이해는 했다 싶은 것들을 거의 반 억지로 썼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있는 그대로 쓸 수 있을 법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면 그래도 완성은 했다는 기분이 들지 않을까 싶어서 방향을 틀어본 것이다. 그리고 뭔가 재밌을 것 같기도 했다. 이 글의 의도와 비슷하게, 테마를 정해서 영화들을 선정해 감상한 시기도 마침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 백 편의 영화를 봤기에 테마를 선정하고 그에 해당하는 영화를 고르는 건 쉽긴 하다. 지금같이 '괴수'라는 테마를 가지고 시작을 하면 10편이 넘게 나올 수 있긴 할 건데, 이러한 테마 관련 글은 타인에게 영화를 소개 or 리뷰한다는 생각으로 쓰일 것 같다고 생각해서, 쳐낼 건 쳐내고 그중에 몇 편을 엄선해보려고 한다. '괴수'라는 테마를 다룬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으로서 각 설정들에 대한 나의 개인적인 코멘트와 비교도 섞어볼 예정.
#1-1 <프릭스, 2002>
내가 영화 채널에서 처음 접해본 괴수 영화인 <프릭스>를 제일 처음으로 가져와봤다. 괴수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이 거대한 놈(들)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묘사되어 있고, 관객들에게 얼마나 희열(눈호강)을 줄 수 있는가,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하는데 <프릭스>는 다른 건 모르겠는데 디테일함만큼은 매우 살아있다. 여기서 말하는 디테일은 단순하게 2002년도에 만들어졌다고 하기에는 생각보다 자연스러운 거미의 움직임뿐만 아니라 각기 다른 거미의 종류들을 묘사한 점을 말하기도 한다. 깡충거미, 타란툴라, 땅거미, 여왕 거미 등 거미의 종류를 다양하게 집어넣어 어찌 보면 질릴 수 있을 법한 '거미'라는 한정된 주제를 꽤나 구체적으로 특징 잡아 표현하여 퀄리티를 높였다.
이 영화를 개인적으로 추천해주고 싶은 이유는, 사실 보진 않았지만 생각보다 거미를 주제로 한 괴수 영화가 많다고 하는데(ex) 메가 스파이더(big ass spider!) 등) 히트를 치기 어려운 장르이다 보니 대부분 절망적인 cg와 스토리로 알려지지도 않은 채 그대로 묻혀버렸다. 게다가 거대해진 거미와 너무 진지하고 어설프게 싸우는 전개도 많았기에, 거미를 위압감 있고 생동감 있게 묘사하지 않는 이상 코미디적인 면(B급 영화)을 기대하고 들어가는 관객들에게는 다소 실망감을 안겨줬을 것이다. 근데 <프릭스>는 거미의 종류와 수를 늘리고, 중간중간 코미디 요소와 흥미진진함까지 집어넣었기에 B급 영화가 갖춰야 하는 최소한의 모든 요소들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적어도 킬링 타임용으로는 꽤나 흥미롭게 볼 수 있고, 다 보고 나서도 실망감보다는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긴다. 또한 '누나가 왜 여기서 나와?'를 생각하게 되는, 블랙 위도우 스칼렛 요한슨이 이 영화에 아역으로 출연한다. 무려 20년 전의 스칼렛 요한슨의 미모를 볼 기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아쉬운 점은 존재한다. 괴수 영화 일부에게서 나타나는 치명적인 단점은 이 거대해진 놈(들)의 어설픈 최후인데, <프릭스>에서도 그 아쉬움은 존재한다. 수가 많은 만큼 다대다 전투를 기대했던 관객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엔딩이 묘사되어 생각보다 허무하게 영화가 끝난다. 또한 난 지상에 남아있는 거미가 한 마리도 없었다는 점도 추가적인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람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난 놈들이라는 설정 때문이었나... 진짜 '이런 완벽한 엔딩까지.... 이건 진짜 1000% B급 영화다.'로 결론지었다.
추천 정도 : ★★★
장점 : 킬링타임용으로 훌륭함, 거미라는 생명체에 흥미가 생김, 중간중간 섞인 코믹 요소
단점 : 엔딩, 그래도 2002년이다 보니 약간은 정교하지 못한 CG
#1-2 <램페이지, 2018>
다음으로는, 괴수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클래식한 액션의 최강의 자리를 다툴 법한 영화 <램페이지>를 가져와봤다. 그냥 보이는 건 모조리 다 때려 부순다. 게다가 주연이 드웨인 존슨. 작정하고 잡은 컨셉이다.
이 영화의 최고의 장점으로는 2018년에 개봉하였기에 실망시키지 않는 CG 도배로 인한 눈호강 장면들의 연속을 꼽을 수 있다. 애초에 거대해진 놈이 고릴라다 보니 적어도 이 정도는 무식하게 부숴야 한다는 기대감을 기대 이상으로 충족시켜주고, 악어와 늑대도 같이 커져서 날뛰니 관객들의 심장을 두근거리게 할 조건들을 충족한다. 그렇다 보니 <트랜스포머>, <인디펜던스 데이>의 후속작인 <인디펜던스 데이 : 리써전스>, <닥터 스트레인지>와 같은 CG로 눈호강 제대로 시켜주는 영화들을 재밌게 본 분들에게 매우 적합하고 추천할 만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다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면 CG에 너무 힘을 준 나머지 전개에는 힘을 주지 못 했다는 것이다. 이 모조리 부숴버리는 시퀀스가 오기까지의 과정이 많이 아쉽다는 점, 방금 언급했던 <트랜스포머>, 특히 3편 이후의 <트랜스포머>라고 이해하면 편할 듯하다. 개연성은 개나 주겠다, 난 오직 CG에 영혼을 갈아 넣겠다는 의지 하나만으로 영화를 완성시켰다고 본다. 그래서 만약 영화를 보는 관점이 개연성 중심, 다시 말하면 흐름에 의한 내용 중심이라면 이 영화를 피하는 게 좋고, 생각 없이 그냥 거대한 놈들 나와서 죄다 부수는 거 보고 싶다는 분들에게는 1000% 추천한다. 이 영화를 볼 당시의 나는 그냥 있는 그대로 즐겼기에 너무 재밌게 봤다.
추천 정도 : ★★★★
장점 : 작정하고 갈아 넣은 CG, 괴수 영화라는 장르에게서 느낄 수 있는 희열의 정점
단점 : 개연성 부족
#1-3 <미스트, 2007>
이번에는 괴수 영화가 줄 수 있는 신선한 충격 of 충격을 주었던 <미스트>를 세 번째로 가져와봤다. 이상하게 괴수 영화하면 괴수가 죽는 것으로 엔딩이 정해져 있다는 고정관념이 있다. 수많은 괴수 영화들이 그래 왔기 때문. 그래서 거기에 도달하기까지의 과정을 얼마나 잘 녹여내느냐가 그 영화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요소가 되는데, '괴수와 인간이 공존하기로 했답니다~'로 엔딩을 짓기에는 굉장한 무리가 있다는 게 그 이유일 듯싶다. 그 뻔한 결말을 이 영화 역시 보여주긴 한다. 근데 거기에 같이 곁들여져 있는 한 요소가 아직까지 몇몇 영화인들에게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아직 이 영화를 안 봤다면 꼭 보시길.
이 영화의 명확한 장점으로는, 일단 직접적으로 묘사되는 괴수의 모습이 대부분 인간과 근접해 있을 때 드러나기 때문에 안개 내부의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상태로 계속 진행이 된다. 그렇기에 대단히 긴장감 있는 진행이 이루어지는데 이것부터 일단은 차별화된 요소라고 생각한다. 보통 괴수 영화는 괴수가 그 모습을 드러내는 과정이 굉장히 단순하다. 빨리 괴수가 등장을 하고 모습을 드러낸 채 날뛰어야 관객들이 덜 답답해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미스트>는 적당한 씬에 적당한 모습과 적당한 수와 각기 다른 종류의 괴수를 안갯속에서 꺼내어 등장시키면서 호기심을 자극시킨다. 그로 인해 호흡이 전체적으로 보면 조금은 느리다는 점, 타 괴수 영화들과는 차별화된 전개이며 이 영화만의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하나 더 추가하자면, 영화를 보는 관점이 갈릴 수 있다는 점이다. 두 가지를 골라봤는데, 하나는 종교와 관련된 인물 하나를 굉장히 발암 유발 캐릭터로 집어넣은 것, 다른 하나는 논란의 중심인 엔딩이다. 끊임없이 짜증을 유발하는 한 종교인이 등장하는데, 종교 집단에 대한 비판으로 볼 수도 있으면서 다른 시각으로는 영화 내 뻔한 클리셰로 바라볼 수도 있는 두 가지 관점을 제공한다. 또한, 엔딩에 대한 반전은 '충격이다, 어떻게 이런 신선한 결말이 나오지?'와 '엥? 왜 이렇게 찝찝하지?, 이렇게 끝나?'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이 영화는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작품 중 하나다. 저 위의 갈림길 중 어디를 택하느냐에 따라 이 영화의 의미가 달라질 듯하다. 즉, 아까 말한 내용과 연관 지으면 영화를 보는 관점이 갈리는 건 클리셰적인 요소를 집어넣긴 해도 한 번은 더 생각해보게 만드는 것, 아까는 전개의 차이를 말했다면 이번에는 요소의 차이를 장점으로 꼽는다.
단점은 있다. 2008년 작품인데 뭔가 실망스러운 CG, 만약 시원시원하거나 뻔한 괴수 영화를 기대하고 왔다면 실망할 것 같은 전개 등을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근데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좋아하는 입장에서 단점을 더 찾아보는 건 힘들 것 같다. 뭔가 누구나 한 번쯤은 봤으면 하는 영화라고 생각한다.
추천 정도 : ★★★★☆
장점 : 뻔하지 않음, 느린 호흡에 가미된 호기심 유발 요소들, 기가 막힌 엔딩
단점 : 살짝 엉성한 CG, 다 뚜까 부수는 괴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실망할 수 있음
#1-4 <러브 앤 몬스터스, 2020>
(포스터의 크기가 점점 커지는 것 같은 착각)
다음으로 넷플릭스에서만 볼 수 있는 영화, <러브 앤 몬스터스>를 소개한다. 제목에서부터 심각하게 B급의 냄새가 나길래 우려했는데(원제도 Love and Monsters), 생각보다 재밌게 봤기에 가져와봤다.
바로 장점부터 꺼내보면, 전개가 일단 답답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찾아가는 여정이라 그런지 빠른 템포의 전개를 기반으로 그 사이사이에 욱여넣을 수 있는 온갖 흥미로운 요소들은 다 집어넣었다. 주인공 또한 미로를 달려봐서 그런지 영리하지 못한 답답한 캐릭터가 아니었던 점이 너무 좋았다. 또한, 2020년에 개봉한 영화인 만큼 CG 하나는 기똥차게 잘 만들었다. <램페이지>처럼 다 부수고 그런 건 없지만, 거대한 생명체 자체에 대한 묘사가 잘 되어있다고 표현하면 맞겠다. 제일 인상 깊었던 건 '여왕 벌레'랑 '게'라는 놈인데 넷플릭스에서 고화질로 직접 확인해보시길. 그리고 하나 덧붙이자면, 포스터에 나와있는 개 자체가 그냥 이 영화의 장점이다. 인물이나 로봇 등을 추가로 배치하는 것이 아닌 인간에게 친숙한 동물인 개를 집어넣으므로써 영화를 비교적 순하게 바라볼 수 있는 시각까지 제공한다. 그래서 이 영화를 좋아했나.
단점은 주인공 버프가 좀 많이 들어갔다는 것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게 거대한 놈들이 수년간 인간들을 잡아먹으며 심지어 탱크의 탄환에 맞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던 탱크 크기의 곤충에 대한 묘사가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비교적 쉽게 쓰러뜨리는 주인공의 모습을 볼 수 있던 게 아쉽긴 하다. 그저 주변에 주인공에게 아무것도 부여하지 않은 상태에서 영화를 풀어가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생각하면 편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하다.
추천 정도 : ★★★☆
장점 : 굉장히 친숙한 거대한 놈들 나옴(With great CG), 전개가 빠름, 주인공보다 강한 개
단점 : 주인공이 호크아이
#1-5 <더 샌드, 2015>
이 영화를 아는 사람이라면 굉장히 당황스러운 픽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나도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본 시간이 너무 아까워서, 그리고 혹시나 재밌을까 해서 고르실 것 같은 분들의 의지를 저지하기 위해 가져와봤다. 이걸 게다가 여러 명과 같이 본 기억이 있는데, 그들의 정수리 위에 물음표들이 쌓여가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그 정도로, 이 영화는 의문점 투성이다. 좋게 말해야 의문점 투성이라는 거지, 세게 말하면 왜 만들었나 싶기도 한 영화다.
이 영화의 장점은 관객에게 커다란 의지를 하나 부여해준다. 본인이 훗날 영혼이 하늘나라로 떠날 때 머릿속에 <더 샌드>라는 세 글자가 떠오르면서 '아, 지상에 두 시간 더 있어야겠다.'라는 노력을 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난 반드시 그럴 예정.
단점은 따로 다뤄야 할 만큼 많은데, 등장인물들의 지능 수준이 너무 안 좋다는 점, 그렇게 모래 밑에 파묻혀있었으면서 후반부에 제대로 등장했을 때의 그 자태를 보고 난 후 밀려오는 허탈감, 괴수의 최후에 대한 실망감 등등 당장 생각해도 몇 가지 더 있다. 사실 영화를 깐다는 게 굉장히 주관적일 수 있긴 한데, 이거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는 수준이다. 타인에게 적극적으로 비추천하는 영화가 되었다.
추천 정도 :
장점 : <7광구>의 위치를 한 단계 높여줌
단점 : 그냥 괴수 나오는 것 자체가 마냥 좋다 하시는 분에게도 비추천하고 싶은 영화
마지막 <더 샌드>는 사실 코미디적으로 넣어본 거지, 개인적으로 괴수 영화를 지금도 좋아하지만 과거에는 엄청 좋아했다. 그냥 거대한 놈들, 떼로 나오는 놈들 보면 흥분하고 그랬다. 근데 지금은 다양한 영화 장르들을 접하다 보니 영화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는데, 그 때문인지 괴수 영화를 킬링타임용으로 보기는 하지만 개연성이나 클리셰도 따지고 보게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되다 보니 있는 그대로 즐기기가 힘들어졌다는 게 큰 타격으로 다가와있다. 그래서 괴수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괴수 영화라는 장르를 있는 그대로 즐기고 있다면 정말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으면 좋겠고, 이제 막 괴수 영화에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즐길 준비 됐냐고 신나게 물어보고 싶다. 괴수 영화라는 장르는 그렇게 보는 거니까..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