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에서 보는 자연재해와 관련된 재난 영화가 얼마만이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니 <문 폴>이 마지막이었던 것 같다. 그땐 너무 큰 실망을 하고 와서 'Moon Fail'이라고 코멘트를 남긴 기억이 있다.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이 그래도 재난 영화 쪽에서는 베테랑이라 기대를 하고 갔더니 이게 뭐람, 달 저글링만 몇십 분째 보고 나왔다. 그로부터 2~3년 뒤, 또 하나의 재난 영화가 개봉됐다. 같은 날 개봉된 <에이리언 : 로물루스>를 참을 수가 없어서 먼저 관람하고, 이 영화는 일주일 정도 평가가 쌓일 때까지 기다렸다. 결국 개봉 일주일 후, 영화 <트위스터스>를 보기 위해 극장을 찾았다.
관람 후, '그래도 볼거리는 많다'라는 결론을 냈다. 재난 영화가 갖춰야 될 요소는 대부분 갖춰져 있었다. 우리가 보통 재난 영화하면 기대하게 되는 가장 큰 요소는 시각적인 것과 청각적인 것인데, 이 두 가지는 빼먹지 않고 충분히 잘 녹여냈다. 강도별로 묘사된 토네이도의 위엄이나 역동성이 꽤 훌륭했고, 그것이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나 인간에 가해지는 피해를 잘 묘사한 것도 좋았다. 그리고 관객들에게 소리를 생생하게 전달하기 위한 주연들의 희생정신이 담긴 토네이도 헤딩 덕분인지 청각적인 자극도 꽤 훌륭했다.
인생이 얼마나 재밌을까
또한, 주연으로 나온 데이지 에드가 존스와 글렌 파월의 비주얼도 이 영화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오히려 어쩔 땐 토네이도가 눈에 안 들어올 정도. 영화 중간중간 보면 이들 각자의 모습만을 찍기 위해 카메라 구도를 의도적으로 신경 쓴 장면들이 꽤 많이 있다. 그때마다 '이게 영화야, 화보 영상이야?' 하면서 봤던 기억이 있을 정도로 두 주연 배우의 외모는 빛이 났다.
근데 장점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었다. 첫째로, 메인 포스터들에 묘사된 인물들의 모습이다. 마지막에 발생한 거대한 토네이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토네이도와 멀어지는 것이 아닌 가까워지는 구도로 설정되어 있고, 심지어 그 상황을 즐기는 모습까지 들어가 있다. 물론 케이트(데이지 에드가 존스)는 친구들을 잃게 만든 본인의 계획이 있었기 때문에 토네이도를 몇 년간 두려워하긴 했지만, 토네이도의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이 아닌 본인의 트라우마 자체인 것처럼 보인다. 조금 더 자극적인 홍보를 위한 거라 생각하지만 여느 재난 영화와는 다른 구도라는 점을 장점으로 삼아 포스터를 제작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둘째로, 극적인 상황을 연출하기 위한 장치가 너무 허술해 보였다는 점을 꼽고 싶다. 건물도 뜯겨 나갈 정도로 강력한 토네이도가 발생됐는데, 그 안으로 차를 몰아서 들어가는 것과 거기에 30cm 정도 땅에다가 철심 박는다고 토네이도를 견뎌내는 것까지... 물론 재난 영화의 특성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요소들이 참 많아서 이런 거 하나하나 신경 쓰다 보면 끝도 없이 추락하게 되지만, 그래도 영화 보면서 '말도 안 돼.'라는 생각을 한 장면 이상 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소위 '극장용 영화'라고 말하는 영화가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극장에서 못 본 걸 후회하는 영화는 나중 가면 발생하기 마련이다. 나에겐 <라이프 오브 파이>나 <인셉션> 같은 영화들이 그런데, <트위스터스> 역시 그런 영화가 됐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래도 꽤 재밌게 관람했다. 재난 영화로서의 스릴을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티켓값 했다고 생각한다. <미나리> 이후로 정말 오랜만에 만난 정이삭 감독과 <탑 건 : 매버릭>에서 행맨 역할로 나왔던 글렌 파월이 개인적으로 너무 반가웠고, 스크린에서 처음 봤던 데이지 에드가 존스의 작품도 찾아보고 싶어 지게 됐다. 재난 영화는 꼭 극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