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올해 하반기 최고의 화제작, <내부자들>,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감독과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박훈 등 화려한 배우 라인업을 갖춘 <하얼빈>을 보고 왔다. 감독의 전작들을 꽤나 재밌게 본 입장으로서 이번 작품도 기대를 할 수밖에 없었고, 박정민, 조우진 같은 관심 가는 배우들이 나온다고 하니 개봉일에 예매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간단하게 내는 총평은 'so so'. 위인을 다룬다는 건 왜곡이 없는 선에서 최대한 영화스럽게 풀어내야 하기에 어떻게 보면 조심스러운 부분일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이 조심스러운 느낌이었다. 초반 전투씬을 제외하고는 러닝타임 내내 묵직하면서도 느린 호흡을 가져가는데, 이게 전체적으로 보면 영화 자체와는 어울리지 않았다. 한 1시간이면 풀어낼 수 있는 얘기를 굳이 2시간으로 늘린 느낌이랄까.
윗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이어보자면,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노스탤지아>를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체감상 <하얼빈>보다 2배 이상의 느린 호흡을 가져가는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노스탤지아>는 영화 전체에 인물의 감정이 스며들어 있어 흐름이 바뀌면 감정도 따라 바뀌는 전개를 보여주어 감상하는 입장에선 충분히 감정에 이입하여 빠져들 시간이 제공되는 기분이었다. 근데 <하얼빈>은 역사적인 사실과 인물의 행보를 이미 어느 정도 알고 있다는 게 전제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안중근이라는 인물의 감정에 이입한다기보단 하얼빈으로 가는 이 과정을 과연 어떻게 풀어낼까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 보니 이렇게 묵직하고 느린 호흡이 영화의 전체적인 의도와는 맞지 않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근데 이건 어디까지나 나, 혹은 나와 비슷한 입장에서 바라보는 시각의 일부일 뿐이지 역사적인 사실을 꽤나 담백하게 잘 담아낸 것은 명확한 장점으로 보인다. 전체적으로 감독의 전작인 <남산의 부장들>과 매우 흡사한 전개 방식을 보여주는데, 거기서 약간의 오락성이 들어가 있었던 점을 쏙 빼고 한기와 묵직함을 첨가한 점을 보면 얼마나 인물과 사실을 조심스럽고 숭고하게 담아내려 했는지에 대한 노력이 많이 보였다. 안중근을 비롯한 독립군들에 대해 다시 한 번 기억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인 것은 확실했다.
또한, 배우들의 연기도 빛났다. 안중근을 연기한 현빈 배우만을 중점적으로 다룬다기보단 독립군으로서 각자의 역할을 훌륭히 수행하는 인물 하나하나를 꽤나 섬세하게 다루려고 노력한 영화의 틀 안에서, 누구 하나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영화에 잘 녹아들어 있었다. 그리고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했던 <어느 가족>에 출연했던 릴리 프랭키의 무거운 연기도 참 좋았다. '한국에서 개봉하는 영화에 일본인으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연기한다는 건 꽤나 불편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한 건 비밀.
GV 시사회에 당첨되지 않은 건 너무 아쉬운 부분이었지만(기대도 안 했다), 오래간만에 깔끔한 한국 영화를 볼 수 있었다는 점 자체가 좋았다. 올해를 돌아보면 흥행에 성공한 <파묘>를 제외하면 작품성과 재미 중 하나 이상을 갖춘 한국 영화가 없었던 것 같은데, 이 영화가 그래도 '작품성' 하나는 건진 것으로 보인다. 내년에는 꼭 다시 흥했으면.
3.5 / 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