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만 살자!
‘하루살이’라는 단어에는 어딘가 모르게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오래 버티지 못하고, 깊이 뿌리내리지 못한 채 금세 사라져버리는 존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에 ‘인생’이라는 단어까지 붙는 순간, 그 울림은 더욱 무거워진다. 마치 미래를 꿈꿀 여유도 없이 오늘을 겨우 견뎌내는 삶, 하루 벌어 하루를 살아내는 팍팍한 현실을 뜻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래서 우리는 ‘하루살이 인생’이라는 표현을 들으면 본능적으로 고개를 젓게 된다. 어쩐지 초라하고, 어쩐지 애잔한 삶의 풍경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극심한 불안과 우울,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불면 속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중학생이던 시절부터 시작된 그 감정들은 계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 내 삶의 바닥에 눌어붙어 있었다. 몇십 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나는 늘 ‘괜찮은 척’하며 하루를 버텼고, 밤이 오면 다시 무너졌다.
그러다 낮과 밤의 경계가 무너졌고, 나는 완전히 무너져 버렸다. 시간이 흐르는 감각조차 희미해진 채, 하루가 하루인지도 모른 채로 버티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런데 2026년의 나는, 놀랍게도 꽤 많이 나아져 있다. 완벽하게 치유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숨을 고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변화의 시작은 ‘하루살이’처럼 살기로 마음먹은 순간이었다. 멀리 있는 미래를 붙잡으려 애쓰는 대신, 오늘 하루만 무사히 살아내자고 다짐했다. 내일의 걱정도, 몇 달 뒤의 결과도 잠시 내려두고, 지금 이 하루에만 집중했다.
그렇게 하루를 살고, 또 하루를 살았다. 그리고 그 하루들이 모여 어느새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물론 꾸준히 약을 복용한 덕도 있다. 그 시간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변화가 있었다. 나는 어느 순간, 과거도 미래도 잠시 내려놓고 그저 오늘 하루만 살다 가겠다는 마음으로 살아보기로 했다. 멀리 보지 않고, 오래 버티겠다는 다짐도 하지 않은 채, 단 하루만 무사히 건너가자고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렇게 시작한 하루가 쌓여, 어느덧 1년이 되었다.
딱 하루만 살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나는 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일이면 내가 이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그렇다면 적어도 내가 머물다 간 자리는 단정했으면 했다. 누군가 문을 열었을 때, 어지러운 흔적 대신 조용히 정돈된 풍경이 남아 있기를 바랐다.
그래서 방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리라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찌나 쓸데없는 물건들이 많은지... 버리고 또 버렸다.
당연히 하루 만에 끝나지 않았다.
'조금만 쉬었다가 해야지.'
그렇게 잠이 들었고, 눈을 뜨니 아침이었다.
'아, 오늘이 마지막이지. 얼른 치우자.'
그렇게 또 정리를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또 힘이 빠졌다. 잠깐 멍하게 앉아 있다가, 그대로 또 하루가 지나갔다.
그렇게 하루가 하루를 밀어내듯 이어졌다. 매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시작했지만, 피곤해서 멈추고, 쉬다보니 또 다음날이 밝아 있었다. 그렇게 방 정리를 하다가, 멈췄다가, 다시 시작하기를 반복하는 사이 일주일이 흘러 있었다.
나는 사라지지 않았고, 대신 조금씩 정리된 방이 남아 있었다.
불교에서는 다이어트를 하면 운이 좋아진다는 말이 있다.
처음 들었을 때는 다소 과장된 이야기처럼 느껴졌지만, 곱씹어 보면 꽤 그럴듯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내가 떠올린 이유는 이렇다.
다이어트를 하려면 우선 몸을 움직여야 한다. 그리고 먹는 것 또한 신경 써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배가 고프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음식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그래서 운동을 하든, 산책을 하든,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몸을 쓰게 된다. 먹는 것 역시 무심코 입에 넣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고르게 된다.
그렇게 살다 보면 하루가 꽉 찬다.
덜 먹고 더 움직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다이어트에 한 걸음 다가섰다는 뿌듯함이 생기고, 그 작은 성취감이 하루를 단단하게 만든다. 결국 시선은 멀리 있는 결과가 아니라 ‘오늘’에 머문다. 다이어트가 자주 실패하는 이유는, 너무 먼 미래부터 계산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달 뒤 5kg이 빠진 내 모습을 상상하는 것까지는 좋다. 하지만 막상 오늘, 아니 지금 당장 배가 고파지면 마음은 쉽게 흔들린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게 된다.
'오늘 하루쯤은 먹고, 내일부터 해도 아직 두 달이나 남았잖아.'
하지만 ‘오늘 하루의 계획’만 실행하는 데 집중하면, 생각보다 오래 지속할 수 있다.
〈나 혼자 산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면, 연예인들이 몸 관리를 위해 하루의 루틴을 만들고 그 루틴에 맞춰 꽉 찬 하루를 보내는 모습을 자주 보여준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직접 그렇게 살지 않았는데도 괜히 기분이 좋아지고, 왠지 모르게 멋있어 보인다.
멋진 집이나 비싼 차, 명품 옷 때문이 아니다.
소소하게 하루의 계획을 세우고, 운동을 하고, 자신을 위한 식사를 하고, 지인을 만나 수다를 떨다가 밤이 되는 그 하루. 어쩌면 사람들이 그 장면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우리 모두가, 결국은 ‘꽉 찬 하루’를 살고 싶어 하기 때문 아닐까.
운이 좋아진다는 말의 뜻도, 어쩌면 거기에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하루살이 인생’은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삶이 아니라, 가장 충실한 삶의 방식일지도 모른다.
먼 미래를 붙잡으려다 오늘을 잃어버리는 대신, 오늘 하루를 단단히 붙잡는 것. 사라질 것처럼 살았지만, 그렇게 붙들었던 하루들이 결국 나를 다시 살게 했다.
나는 이제 안다. 인생은 길어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를 살아내며 이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운이 좋아진다는 말의 진짜 의미도, 아마 거기에 있을 것이다.
오늘을 끝까지 살아낸 사람에게만 내일이 온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