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직업이 판사세요?

지나온 시간을 미워하지 않는 마음

by 참지 않는 말티즈

그리고 오늘 밤만큼은,


그때의 나를 심문하는 대신


조용히 한 편이 되어주는 쪽을 선택해 보고 싶다.

나는 아직 버리지 못한 나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반추’다.


하루의 모든 일이 끝나고 혼자 남는 시간이 되면, 이미 지나간 장면들이 다시 시작된다. 나는 그 일들을 나노 단위로 쪼개어 되감는다.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왜 그런 표정을 지었을까. 조금만 다르게 행동했더라면 어땠을까. 이미 끝난 순간들에 붙잡혀, 바꿀 수 없는 장면을 붙들고 서 있는 시간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마찬가지다. 오늘 회사에서 내가 왜 그 말을 했는지, 그 한 문장을 몇 번이나 다시 꺼내 보며 조용히 후회하고 있다.


한밤이 되면 증상은 더 또렷해진다. 소위 ‘이불킥’이라 불리는, 과거에 대한 후회와 수치심이 조용히 고개를 든다. 이미 끝난 장면인데도 다시 불을 켜듯 선명해지고, 그럴 때마다 나는 점점 작아진다. 마음이 약한 날에는 종이처럼 쉽게 구겨져 버리기도 한다.

가끔은 엉뚱한 상상을 하기도 한다. 시간을 되돌려 그 순간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말할 텐데, 저렇게 행동할 텐데 하고 혼자서 장면을 다시 짜 본다. 하지만 결국 그것은 어디까지나 상상일 뿐이다. 이미 지나간 시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아마 나와 비슷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특히 지금의 자신이 썩 만족스럽지 않은 사람이라면, 더 자주 과거를 붙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그때의 나는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왜 그런 행동을 했고, 왜 그런 말을 내뱉었을까.


지금의 내가 보기엔 어설프고 부족해 보이는 그 순간들 속에서, 그때의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었을까.


사실은 알고 있다.
그때의 나는 아무 이유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순간의 나는 그때 가진 마음과 사정, 그리고 그만한 용기 안에서 가장 나은 선택을 했을 뿐이다. 다만 시간이 흐르고 결과를 손에 쥔 채 그 장면을 다시 바라보니, 모든 것이 틀린 선택처럼 보일 뿐이다.


현재의 내가 결과를 알고 있다는 이유로, 아무것도 몰랐던 과거의 나를 심판대에 세우는 일. 어쩌면 내가 반복해 온 반추의 본질은 그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결과를 본 뒤에야 쉬워지는 판단으로, 그때의 나를 자꾸만 오해하는 일.

과거의 나는 더 이상 지금의 나에게 그때의 사정을 설명할 수 없다. 그저 그 순간 안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이제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결과만을 들여다본 채, 그때의 나를 쉽게 타박하고 오해하고, 때로는 희생양처럼 세워 두는 건 아닐까.

과거의 나도, 현재의 나도,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나까지도 결국은 같은 나인데.

왜 나는 결과 하나를 들고 지나온 나에게 수치심을 씌우고 있는 걸까.

어쩌면 돌아봐야 할 것은 그때의 선택이 아니라, 지금의 내가 얼마나 가혹해졌는지가 아닐까.


그래서 오늘은, 그때의 나를 조금 덜 미워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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