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꼬면 꽈배기도 못 된다.

심플하게 살자!

by 참지 않는 말티즈

꼬아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 보면 괜히 예민하고, 괜히 복잡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말한다.

“왜 그렇게까지 생각해?” 하고.

하지만 나는 가끔 그런 생각이 든다.
그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어쩌면 많이 다쳐서 그런 건 아닐까?


몇 번이고 예상치 못한 말에 상처를 받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을 겪다 보면 사람은 조금씩 변한다. 상대의 표정이 바뀌는 순간을 재빨리 읽어내려 하고, 말의 뉘앙스에 숨어 있는 또 다른 뜻을 먼저 찾으려 한다. 혹시 모를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다.


처음에는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작은 방어였을 것이다.
그런데 그 방어가 습관이 되면, 결국 좋은 말조차 의심하게 된다. 칭찬 속에 다른 의도가 있지 않을까, 친절 뒤에 계산이 숨어 있지 않을까. 그렇게 머릿속은 늘 복잡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 사람들은 말한다.
“너 좀 꼬였어.”

사실은 마음이 꼬인 게 아니라, 상처가 매듭처럼 남아 있는 것뿐인데 말이다.


이 사실을 자각하고 고쳐보려 해도 쉽지 않다.
의식적으로 “있는 그대로 듣자”라고 다짐하지만, 사람들의 말은 좀처럼 말 그대로 들리지 않는다. 입 밖으로 나온 소리 뒤편에, 아직 발음되지 않은 다른 단어들이 겹쳐 보인다.


“너 오늘 정말 예쁘다.”

그저 그런 한 문장일 뿐인데도, 머릿속은 가만있지 않는다.
혹시 부탁할 일이 있어서 미리 분위기를 띄우는 건 아닐까. 내 차림이 과해서 돌려 말하는 건 아닐까. 진짜 뜻은 다른 데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한 번 시작된 의심은 멈추지 않고, 의미를 찾지 못하면 스스로 만들어내기까지 한다. 그러다 보면 눈앞의 사람은 사라지고, 머릿속 가상의 대화만 남는다.

어떤 말은 하루 종일 머릿속을 맴돌고, 어떤 말은 밤까지 따라와 잠을 앗아간다.

결국 나는 상대의 말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낸 해석과 싸우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우리는 연습해야 한다.

상대의 말을 단어 그 자체로 듣는 연습을.

곱씹지 않고, 확대하지 않고, 말 너머의 숨은 뜻을 추측하지 않는 것.
그 사람이 내뱉은 단어만큼만 받아들이는 것.


물론 안다.
어떤 사람은 말속에 다른 뜻을 숨긴다. 겉으로는 부드럽게 말하면서도, 그 속에 가시를 촘촘히 심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이면을 끝까지 파헤치는 것이 과연 나를 지켜줄까.

설령 숨은 의도를 눈치챘다 해도, 우리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그런 뜻으로 말한 거지?”라고 물어도, 상대는 아니라고 할 것이다. 정말로 숨기고 싶었다면 애초에 드러내지 않았을 테니까.

미리 간파해서 술수를 막겠다는 생각도, 어쩌면 과한 자신감일지 모른다.
상대가 정말로 치밀했다면, 애초에 눈에 띄게 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다.
그 사람이 한 말만큼만 듣는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의심을 덜어내는 일은 어쩌면 세상을 믿는 일이 아니라, 나를 믿는 일일지도 모른다.

혹여 그 말 뒤에 다른 뜻이 있더라도, 나는 그때 가서 대응하면 된다.

지금은 그저, 단어 그대로 받아들이는 편이 내 마음을 가장 편안하게 한다.


결국 우리는 모든 말을 이해할 수는 없다.
숨겨진 뜻까지 완벽히 해석하며 살 수도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 조금 덜 애써보려 한다.
누군가 “예쁘다”라고 말하면, 그냥 예쁘다고 믿어보기로.
그 말 뒤편을 더 이상 들여다보지 않기로.


혹시 거기에 다른 뜻이 숨어 있다 해도, 그건 그 사람의 몫일뿐이다.

나는 내가 들은 단어만큼만 품고, 그 이상은 내려놓는다.

어쩌면 세상은 그렇게까지 복잡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니, 적어도
내 마음만은 그렇게까지 복잡하게 만들지 않아도 될지도 모른다.


세상 모든 말을 다 풀어내겠다고 애쓰다 보면 정작 내 마음이 먼저 엉켜버린다.

그러니 이쯤에서 멈추자.

계속 꼬면, 꽈배기도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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