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로 배우는 삶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첫 받아쓰기를 했던 날이 문득 떠오른다.
무슨 문장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꽤 틀렸고 또 꽤 맞았던 날이었다. 그 시절엔 틀린 개수만큼 체벌이 따라오던 때였다.
집에 돌아와서는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붙들고 앉아 있었다.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또 혼이 나고, 혼이 나면 더 하기 싫어지고, 하기 싫으니 또 혼이 나는 작고 단단한 악순환이었다.
그때는 왜 그렇게 한글을 제대로 쓰는 일이 어려웠는지 모르겠다. 받침 하나, 띄어쓰기 하나가 세상만큼 복잡하게 느껴지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어느 순간 나는 맞춤법을 거의 틀리지 않는 어른이 되어 있다. 어떻게 한글을 다 깨우쳤는지, 그 과정은 또렷이 기억나지 않는데도 지금 이렇게 문장을 쓰고 있다. 아무렇지 않게, 자연스럽게.
기억나지 않는 시간들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온 셈이다.
초등학교 때, 나는 스피드 스케이트를 탔었다.
정해진 시간 안에 도착 지점에 들어와야 하는게 가장 중요했다. 그때의 아이스링크는 유난히 넓어 보였고, 출발선은 멀게 느껴졌다.
스케이트를 처음 신었을 때는 걸음마를 다시 배우는 기분이었다. 발은 자꾸 엇나가고, 중심은 마음대로 흔들렸다. 넘어지는 건 기본이었고, 나중에는 넘어지다 못해 ‘어떻게 넘어져야 덜 아플까’를 고민할 정도였다.
몇 번을 구르고 나니 이상하게도 무서움이 조금씩 옅어졌다. 아픔에 익숙해진 건지, 아니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걸 몸이 먼저 배운 건지 모르겠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넘어지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발은 여전히 서툴렀지만,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전진하는 감각이 생겼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자 나는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아이스링크를 돌고 있었다.
처음엔 서 있기조차 힘들던 곳에서, 어느새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었다.
내 직업은 마케터다.
가끔 18년 전, 첫 직장에서 썼던 기획안을 다시 열어본다. 보면 볼수록 좀 민망하다. 어찌나 조악한지... 대학생 과제로 내도 통과 못 했을 것 같다.
그 시절은 꽤 거칠었다. 실수에 대한 표현도, 피드백도 전혀 순하지 않았다. 그 당시 대표에게 말 그대로 ‘쌍욕’을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꼭 그렇게까지였나 싶지만, 그때는 정말 숨이 턱 막혔다.
아직도 그 장면은 살짝 PTSD처럼 남아 있다. 문서를 보다 보면 그때의 공기, 목소리, 분위기가 같이 떠오른다. 아쌀하고 서늘했던 기억.
그런데 웃긴 건, 그 시간을 지나 지금도 기획안을 쓰고 있다는 거다.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크게 부끄럽지 않을 정도는 된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계속 쓰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
나는 40년 넘게 살면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을까.
수천 번은 넘지 않았을까. 아니, 어쩌면 수만 번일지도 모른다.
가끔은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실수들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된 건 아닐까 하고.
실수는 나를 주저앉히기도 했지만, 결국엔 방법을 알려줬다.
이건 아니구나, 저렇게는 안 되는구나, 그럼 이렇게는 어떨까 그 과정을 거치며 나는 조금씩 앞으로 움직였다.
그렇게 여기까지 걸어왔고, 오늘도 쉽지는 않았지만 또 한 걸음을 걸었다.
나를 고쳐온 건 늘 실수였다.
그렇다면 더 큰 실수는 나를 더 크게 바꿔놓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