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주의의 고통에 대하여
어릴 적부터 나는 유난히 완벽을 추구했다.
한 번 본 것은 다시 확인했고, 끝낸 일도 괜히 한 번 더 들여다보았다. 이미 지나간 생각을 또 꺼내어 정리하듯 되짚곤 했다.
그 성향은 나를 남들보다 능력을 조금 더 빠르게 자라게 했다.
실수는 줄었고, 결과는 대체로 단단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 완벽주의는 나를 오래 붙잡아 두었다.
잘해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고, 끝냈어도 끝난 기분이 들지 않았다.
완벽은 나를 꽤나 빠르게 성장하게 했지만, 꽤나 많이 고통스럽게도 했다.
완벽주의 성향은 성인이 되어 오히려 더 단단해졌다.
특히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그 크기는 눈에 띄게 커졌다. 일을 할 때는 거의 강박에 가까웠다.
이미 읽은 문서를 몇 번이나 다시 들여다봤고, 모니터 화면에 손가락으로 줄을 그어가며 확인했다. 그래도 믿지 못해 결국 출력해서 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또 한 번 읽었다. ‘혹시’라는 두 글자가 나를 가만두지 않았다.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하루 종일 일 생각을 했다. 마케터라는 직업 특성상 아이데이션이 끊임없이 필요했기에, 쉬는 날에도 머리는 쉬지 못했다. 샤워를 하면서도,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 위에 생각을 얹었다.
만나는 사람들 역시 점점 업계 사람들로 채워졌다.
그리고 우리는 늘 일 이야기를 했다.
일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내가 일 속으로 들어가 버린 것만 같았다.
그 결과는 분명했다.
나는 빠르게 승진했고, 이직할 때마다 연봉은 눈에 띄게 올랐다. 어디를 가든 일 잘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정도 충분히 받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점점 까칠해졌다.
예민해졌고, 타인의 속도가 답답해지기 시작했다.
‘왜 저렇게까지밖에 못 하지?’
‘조금만 더 하면 되잖아.’
‘안 쉬면 되지 않나?’
'여러 번 반복하면 되잖아.'
언젠가부터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성과는 쌓였지만, 마음은 점점 거칠어졌다.
머릿속은 늘 복잡했다. 마치 놀이공원의 찻잔 모양 의자에 앉아 계속 빙글빙글 도는 기분이었다. 생각은 일정한 궤도를 그리지 못하고 들쭉날쭉 흩어졌다.
혹시 ADHD인가 싶어 스스로를 의심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또 아니었다.
문제는 집중력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생각이었다.
나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시간을 충분히 들이면 괜찮지 않을까?’
‘혹시 나는 늘 촉박하게, 벼락치기로 완벽을 만들려 했던 건 아닐까?’
그때부터 나는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촘촘하게, 빠짐없이, 변수까지 계산해가며.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완벽한 계획일수록 더 쉽게 어긋났다.
내가 문제일 때도 있었고, 누군가가 변수로 등장하기도 했고, 환경이 갑자기 틀어지기도 했다. 이유는 늘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다. 내가 공들여 세운 ‘완벽한’ 계획은 번번이 균열이 갔다.
그때부터였다.
무서웠던 건 실패가 아니라, 그 다음에 찾아온 감정이었다.
계획이 어긋날 때마다 내 안에서 작은 균열이 생겼고, 그 틈 사이로 ‘불안’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불안은 나를 서서히 바꿔놓았다.
초조함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고, 누군가의 말 한마디도 곧이곧대로 듣지 못했다. 혹시 다른 뜻이 숨어 있지 않을까, 내가 놓친 의도가 있지 않을까 스스로를 의심하며 자꾸만 꼬아 들었다.
쉬는 시간은 점점 사라졌다.
나는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렸다. 멈추면 뒤처질 것 같았고, 속도를 늦추면 무너질 것만 같았다.
업계 특성상 일은 24시간 돌아갔다.
새벽에도 전화와 메시지는 끊이지 않았다. 단 하나도 놓칠 수 없다는 강박에, 잠시 눈을 붙였다가도 알림이 울리면 다시 일어나 해결하고 또 해결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나는 이미 한계를 넘어 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원래의 나는 점점 흐려지고 있었다.
나는 아팠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먼저 무너졌다. 결국 병원을 찾았고 약을 처방받았다. 약을 먹으며 비로소 깨달았다. 나는 더 이상 예전처럼 달릴 수 없다는 것을.
속도는 눈에 띄게 느려졌다.
‘완벽주의’라는 부스터를 달고 질주하던 나는, 결국 엔진이 과열되어 멈춰 선 셈이었다. 너무 빨리 달린 탓에 오히려 아무 데도 가지 못했다.
어쩌면 나는 '토끼와 거북이'의 토끼였는지도 모른다.
자신의 속도를 믿고 쉼 없이 달리다가, 결국 중간에서 쓰러져 잠이 들어버린 토끼.
지금 나는 새로운 회사로 이직했다.
이제는 완벽을 다짐하지 않는다. 엄청난 야망을 입 밖에 올리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일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 해내려고 한다. 예전처럼 모든 것을 다 끌어안지 않으려 한다.
맞다. 예전보다 완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완벽하지 않아서 회사에서 자르려나?' 라는 생각도 가끔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질문이 더 크게 다가온다.
정말 중요한 건 ‘완벽’이었을까. 아니면 ‘지속 가능하게 잘 해내는 것’이었을까.
조금 느려도 괜찮지 않을까.
잔잔한 마음으로 일하고,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고 어우러지며, 오래 일할 수 있는 힘을 기르는 것.
어쩌면 멀리 가는 사람은, 가장 빠른 사람이 아니라
멈추지 않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아직 완전히 치유되지는 않았다.
가끔은 여전히 완벽주의가 고개를 든다. 작은 실수 하나에도 마음이 흔들리고, 불안은 조용히 몸집을 키운다. 예전처럼 속도를 내라고, 다시 달리라고 속삭이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는 한 가지를 분명히 안다.
완벽주의는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지만, 결국 나를 망가뜨릴 수도 있다는 것.
그 속도는 오래 갈 수 없다는 것.
오늘도 완벽주의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그 손을 덥석 잡고 다시 달렸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웃으면서 그에게 말을 건넨다.
“괜찮아. 오늘은 이 정도면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