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하려면, 불편함을 여세요.

남들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by 참지 않는 말티즈

세상에 완전한 편리함이란 없는 것 같다.

편리함을 위해 태어난 물건조차 오래 곁에 두고 쓰다 보면 결국 작은 불편 하나쯤은 모습을 드러낸다. 손에 조금 덜 맞는다거나, 버튼의 위치가 애매하다거나, 아주 사소한 틈 하나가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우리는 편리함을 누리면서도 동시에 그 안에서 새로운 불편을 발견하며 살아간다. 어쩌면 편리함이란 불편함이 완전히 사라진 상태가 아니라, 잠시 잊히는 상태인지도 모른다.


사람도 그렇다.

살아가다 보면 유독 불편한 사람이 있다. 무슨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함께 있으면 어딘가 몸을 한 번 더 고쳐 앉게 되는 사람. 말을 걸 때 괜히 한 박자 망설여지고, 눈을 마주칠 때도 이유 없는 긴장이 드는 사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감각. 우리는 그것을 쉽게 ‘불편하다’라고 부른다.


불편한 사람의 모양은 제각각이다.
생각하는 것을 너무 곧게 말해버리는 사람도 있고, 끝내 자기 안쪽을 잘 보여주지 않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서 있는 자리의 무게 때문에 어렵고, 어떤 사람은 지나치게 솔직해서 오히려 주변을 어색하게 만든다. 모두가 적당히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려는 순간, 혼자 끝까지 동의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종종 분위기를 깨는 사람처럼 보인다. 그러나 정말 그 사람만 분위기를 깨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모두가 애써 덮어두고 있던 무언가를 가장 먼저 건드렸던 것뿐일지도 모른다.


이상한 일이다.
사람들은 불편함 앞에서 생각보다 쉽게 등을 돌린다. 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면 관계도 조금은 성숙해질 줄 알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누군가가 다가오면 하던 말을 멈추고, 모임에 자연스럽게 끼워주지 않고, 다 함께 웃고 있으면서도 한 사람만 조용히 바깥에 세워두는 일. 겉모습은 어른이 되었는데도 관계 속의 잔인함은 종종 어린 날의 방식 그대로 남아 있다. 왕따라는 말은 유치해서 입에 올리기 민망해졌을 뿐, 배척은 더 교묘한 얼굴로 오래 살아남는다.


나는 가끔 궁금해진다.
우리가 누군가를 불편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사람 역시 우리를 불편해하고 있지 않을까 하고.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우리는 직설적인 사람을 불편해하지만, 그 사람은 속마음을 삼킨 채 뒤에서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더 불편해할 수 있다. 우리는 벽이 있는 사람을 답답해하지만, 그 사람은 자신을 너무 쉽게 열어 상처를 반복해서 허용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우리는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사람을 어색해하지만, 그 사람은 무리에 섞이기 위해 조금씩 자신을 접어두는 사람들을 낯설게 바라볼 수 있다. 서 있는 위치가 다르면 편안함과 불편함의 방향도 달라진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많은 감정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다. 추위와 더위가 사람마다 다르게 스며들 듯, 불편함 역시 각자의 기준과 상처와 버릇 위에 내려앉는다. 그러니 어떤 사람을 향해 쉽게 ‘이상하다’라고 결론 내리는 일은, 어쩌면 내가 서 있는 자리만을 기준으로 세상을 재단하는 일에 가깝다.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다.
지나치게 솔직한 사람은 관계를 어지럽히는 대신 거짓의 온도를 낮출 수 있고, 말수가 적은 사람은 어색함을 만들기도 하지만 함부로 상처 주는 말을 아끼는 사람일 수도 있다. 무리와 다른 방향을 보는 사람은 불화를 만드는 대신, 아무도 보지 못한 질문을 가장 먼저 품는 사람일 수도 있다.


결국 우리는 각자의 편안함을 지키기 위해, 누군가에게는 불편한 사람이 되어 살아간다. 내가 편한 방식의 말투와 태도, 거리감과 침묵, 솔직함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낯설고 거슬릴 수 있다. 그러니 불편하다는 이유만으로 상대를 밀어내는 일은 너무 성급하다. 다수가 편하다고 느끼는 방식이 있을 수는 있지만, 다수라는 이유만으로 그것이 곧 옳음이 되지는 않는다. 익숙한 것이 언제나 맞는 것도 아니고, 낯선 것이 언제나 틀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조금 다른 곳에 있을지 모른다.
불편함을 마주쳤을 때 곧바로 외면하는 대신, 그 안을 한 번쯤 들여다보는 것. 왜 나는 이 사람 앞에서 불편한가, 그리고 저 사람은 왜 이런 방식으로 세상과 닿고 있는가를 조용히 생각해보는 것. 그렇게 한 걸음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 보면, 그 사람의 불편함 속에 그 사람만의 질서와 생존 방식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불편한 사람’이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말에는 너무 쉽게 누군가를 한쪽으로 밀어 넣는 기색이 있다. 대신 그들을 남들과 다른 사람이라고 부르고 싶다. 조금 다른 감각을 가진 사람, 조금 다른 리듬으로 살아가는 사람,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세상을 읽는 사람.

그리고 대개 세상은 그런 사람들 때문에 조금씩 넓어진다. 처음에는 낯설고 불편하게 느껴졌던 시선이, 시간이 지나고 나면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방향을 열어놓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 변화는 늘 모두가 편안해하는 자리에서 시작되기보다, 누군가가 끝내 익숙해지지 못한 자리에서 시작되곤 했다.


끝내 세상을 바꾸는 것은, 모두가 편안해하는 익숙함이 아니라 끝까지 이해되지 않았던 낯섦인지도 모른다.

작가의 이전글완벽하려다 완전히 잃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