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라는 작은 지옥에 빠진 분들을 위해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네 살 차이다.
동생이 처음 집에 온 날, 나는 네 살의 나이에 가출을 했다.
물론 지금 생각해 보면 ‘가출’이라는 말은 조금 거창하다. 아마 집 근처 어딘가를 서성이다 돌아왔을 어린아이의 작은 반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의 감정만큼은 분명하게 기억난다.
동생에게 쏟아지는 관심과 사랑.
그리고 그 모든 것에서 조금 밀려난 것 같은 기분.
어린 나는 그것을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 몰랐지만, 지금은 안다.
그 감정의 이름이 질투였다는 것을.
초등학교 시절에도 비슷한 기억이 하나 있다.
한 동네에 살던 여자아이가 있었다. 같은 학교였지만 다른 반이었고, 특별히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이의 엄마는 나에게 관심이 많았다. 내가 전교 1등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긴 하다. 그 분은 내가 어떤 학원을 다니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우리 엄마에게 종종 물어보곤 했다.
그러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나는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수영장을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부터 그 아이도 같은 수영장에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서로 친하지 않았고, 평소처럼 수영을 마치면 둘이서 떡볶이를 먹으러 가곤 했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수영장 냄새가 아직 몸에 남아 있던 여름 저녁, 우리는 젖은 머리를 말리며 육교를 건너고 있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그 아이의 엄마가 나타나더니 수건으로 우리를 때리기 시작했다. 왜 자신의 딸을 데려가지 않았냐며, 화가 난 얼굴로 소리를 질렀다.
어린 우리는 이유도 모른 채 도망쳤다.
그날의 장면은 그렇게 끝났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야 가끔 그 장면이 떠오르곤 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아이의 엄마는 ‘1등’이라는 말이 불편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살다 보면 질투라는 감정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보면, 질투는 단순히 누군가를 미워하는 마음과는 조금 다르다. 그 안에는 늘 어떤 불안이 숨어 있다.
연인 사이의 질투도 그렇다. 상대가 다른 사람을 더 좋아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친구 사이에서도 마찬가지다. 친구가 나보다 더 잘 나갈지도 모른다는 생각.
사랑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마음.
뒤처질지도 모른다는 마음.
나는 결국 조금 덜 가지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
질투는 늘 그런 작은 상상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그 상상은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상대의 행동 하나하나에 마음이 흔들리고, 그 사람의 하루가 괜히 신경 쓰인다. 그러다 보면 상대는 평온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정작 나는 마음속에서 수없이 오르내리며 하루를 보낸다.
그래서 가끔 이런 생각을 한다.
질투가 불안에서 태어나는 감정이라면, 불안을 조금 내려놓으면 질투도 함께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대가 무엇을 하든, 어떤 선택을 하든 나는 여전히 나로 살아갈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내가 바꿀 수 없는 일이라면 굳이 마음을 붙잡아 둘 필요도 없다는 것.
어쩌면 질투를 다루는 방법은 생각보다 단순한지도 모른다.
조금 더 나에게 집중하는 것.
내 삶을 다른 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나 자신의 기준으로 바라보는 것.
결국 이 모든 생각은 하나의 단어로 돌아온다.
자존감.
우리가 우리 자신을 조금 더 단단하게 믿을 수 있다면,
질투라는 감정은 어쩌면 조용히, 아주 조용히 멀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