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결되고 싶은 아이들 , 영화 <박화영(2018)>
유튜브 쇼츠를 넘기다가 낯설지 않은 장면에 눈길을 멈추었다. 19금, 청소년은 볼 수 없는 청소년 영화’. ‘가출팸(가출패밀리)’을 그린 ‘박화영(2018)’은 외면하고 싶은 현실이었다.
2015년부터 전국에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가 설치되었다. 덕분에 청소년 상담사로 일하면서 다양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영화 속 인물들은 내가 알던 아이들을 데려다 놓은 것처럼 말투, 행동, 외모마저 비슷하다. 박화영은 짧은 커트 머리에 덩치가 있는 캐릭터다. 화영은 엄마가 있지만 반지하 자취방을 얻어 따로 산다. 돈이 필요할 때 엄마에게 온갖 욕을 쏟아내며 돈을 뜯어낸다. 엄마한테 왜 저렇게까지 할까? 영화 속에는 엄마와의 사연이 그려지지 않아 이해되지 않았다.
화영의 자취방은 가출 청소년들의 아지트다. 아지트를 내어준 덕분에 그들의 집단에 낄 수 있었지만 그들은 박화영을 하찮게 여기며 무시한다. 앉아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아이들에게 화영은 라면을 끓여다 바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증명한다.
“니들은 나없음 어쩔 뻔 봤냐.”
친엄마에게는 쌍욕을 하고, 친구들에게는 ‘엄마’를 자처하며 희생하는 화영의 모습은 아이러니하다. 화영은 외모가 뛰어난 친구 ‘은미정’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 은미정이 다른 남자와 썸 타다 남자친구이자 우두머리인 ‘영재’에게 걸렸을 때도 대신 맞고, 은미정과 원조교제 사기를 치다 걸렸을 때도 대신 당한다. 심지어 은미정의 도움 요청에 달려와 원조교제 남성을 죽인 영재를 대신해서 죄를 뒤집어쓴다. 엄마니까. 무엇이 이 아이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몇 년 뒤 교도소에서 출소한 화영은 우연히 은미정을 만난다. 과거 ‘엄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말하자, 우리 엄마는 집에 잘 있다며 그들의 과거를 부정하고 가버린다. 박화영은 감옥에 다녀온 후에도 새로운 가출 청소년들에게 라면을 끓여주며 같은 멘트를 날린다.
“니들은 나 없었으면 어쩔 뻔 봤냐?”
영화는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고 자극적이다. ‘흡연, 가출, 폭력, 성매매, 임신’등 청소년들에게 금기시되는 소재들이 계속 등장하여 보는 내내 불편하다. 평소에 학교 밖 위기 청소년들에게 관심 갖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뉴스에서나 가끔 볼 수 있는 다른 세상 이야기이다. 화영이 교도소에 다녀온 후에도 그녀의 삶은 변한 것이 없었기에 씁쓸하다. 허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더 그럴지도.
아이들은 집에서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없을 때 밖으로 나돌아다닌다. 집에 온전히 바로 잡아주고 지지해 주는 어른이 한 명이 있었어도 화영이가 밖에 나가 ‘엄마’를 했을까. 화영의 엄마가 딸의 정서적 허기를 채워주지 못했던 것은 분명해 보인다. 화영이도 끊임없이 애정을 갈구하고 자신을 잡아달라는 신호를 보냈지만 엄마가 알아차리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이 있듯,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누구나 관계의 욕구가 있다. 화영은 가정에서 충족되지 않은 관계의 욕구가 깊은 외로움과 애정결핍을 만들었으며, 건강하지 못한 관계를 만들어 버린 듯하다. 비슷한 상처가 있는 아이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줄 수 있는 여력이 없다. ‘힘’의 논리만이 존재하는 그들의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칠 뿐. 뒤돌아보면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문제행동을 넘어 범죄를 저지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에게 꿈이 뭐냐고 하면 대부분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다며 숯불갈비집, 치킨집, 배달 등 가리지 않고 야간까지 아르바이트를 열심히 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도 꾸준히 하지는 못했다.
한 아이가 팔뚝을 들이밀었다.
“쌤, 이쁘죠?”
“월급 받았니?”
흑색으로 본뜬 용이 어쩐지 어설프다.
“네, 이거 싸게 했어요.”
“초보가 한 것 같은데.”
“아녜요. 아는 형들 여기서 많이 했어요. 아직 색을 안 입혀서 그래요. 색 다 채우면 보여줄게요.”
아이들은 문신을 하려고 아르바이트를 했다.
“더 내려오면 안 될 것 같은데, 취업도 생각해야지.”
겉으로는 다른 어른들과 달리 개방적인 척했지만 나도 다른 어른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이들은 일터에서 팔토시를 착용했다. 아이들도 알고 있었다. 문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다는 것을. 특히 청소년들에게는 더욱.
아이들은 허전한 내면을 채우려는 듯 문신 퍼즐을 맞추어 나갔다. 시술을 받고 오면 건드리기만 해도 아프다며 간난쟁이처럼 엄살을 피우기도 했다. 때로는 미성숙한 시기의 경솔한 결정이 되돌릴 수 없는 후회를 낳기도 했다. 한때 ‘사랑의 지우개’라고 경찰서에서 운영하던 청소년들의 문신 제거해주는 사업도 있었다. 청소년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좋은 사업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운영되지 않아 아쉽다.
화영이가 감옥에 다녀와서도 이전과 다르지 않은 삶을 살 듯, 통제받지 않는 삶을 살아온 아이들이 에너지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이전의 관계를 단절하고 새로운 환경과 관계를 만들어가고 적응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아이들은 후회할 것을 알면서도 비슷한 행동을 반복한다. 화영이와 같은 여자아이들이 다시 학교로 돌아온다 하더라도 청소년기의 가출과 방황이 꼬리표가 된다. 학교에서 금방 안 좋은 소문이 돌아 학교 부적응으로 자퇴 수순을 밟기도 한다.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벌써 부터 집을 나가서 사고나 치고, 너희 부모가 불쌍하지도 않냐?”
“부모 없는데요.”
드라마에서 가출한 청소년들에게 흔히 하는 훈계다. 아이들은 보호자가 있어도 부모와 또다시 갈등을 겪고 싶지 않아 없다고 대답하기도 한다. 집이라는 공간에 보호자가 있다고 해서 정서가 채워지는 것은 아니다.
경찰서는 생전 가본 경험이 없어 낯설고 거리감이 있는 곳이었으나 일을 하면서 경찰서와 보호관찰소는 친근감이 들기도 했다.
“어디니?”
“집이요.”
오후 느지막이 전화벨이 여러 번 울린 후에야 아이가 전화를 받았다.
“어제 밤에 나갔니?”
“친구 생일이어서 노래방 갔다가 술 많이 먹고 필름 끊겼어요.”
“보호관찰소에서 너 연락 안 된다고 전화 왔었어. 빨리 전화해봐.”
“네.”
보호처분 중 4, 5호 처분을 받는 아이들은 보호관찰 처분으로 주기적으로 생활을 지도 감독한다. 아이들은 ‘날씨가 좋아서, 친구 생일이라.’ 등 다양한 이유를 대며 야간외출제한을 어겼다. 보호관찰소에서 무작위로 거는 야간전화도 받지 못했고, 보호관찰 중에 사고를 더 치기도 했다.
“아이고, 지 애비도 그렇게 속을 썩이더니 손자까지 그러네. 복도 없지.”
할머니는 알코올에 의존했다. 어린애를 남겨두고 집 나간 며느리, 타지에 나가 연락도 없는 아들을 원망하며 본인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임을 자처할 뿐이었다.
할머니와 화영이의 엄마가 아이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해 삐뚤어졌을까? 전적으로 이들의 책임으로 돌리는 건 무리가 있어 보인다. 개인의 문제만으로 보긴 어렵다. 이들도 가족의 생존을 위해 교육과 돌봄이 결핍된 환경에서 가난과 학대를 겪어야 했을지도 모른다. 부모에게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해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조부모부터 부모 세대까지 복합적인 어려움이 있어 기초생계급여를 받으며 살았던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어떻게 자랄까? 이 아이가 수급자를 벗어나 세금을 내는 성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개천에서도 가난의 대물림을 극복하고 용이 되는 아이들이 있다. 이들은 부모와 다른 삶을 살기 위해 외부 관계망을 통해 관계를 형성한다. 모델링 할 만한 인물을 찾고, 멘토를 만들어 꿈을 이룬다. 하지만 꿈을 이룬 후에도 ‘관계’ 문제에서 다시 한번 어린시절과 직면하게 된다. 가난을 지우는 것은 문신을 지우는 고통만큼이나 힘들고 완전히 지우기도 힘들다.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 저자 강지나 선생님은 가난이 무서운 것은 사회적 상호작용의 걸림돌이 되어 사회적 관계망이 약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 풍파에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살아가려면 내면의 힘을 키워야 한다. 아이들이 자립할 수 있도록 관계망 형성을 돕는 것이 내가 할 일이다. 소나 양도 등이 가려우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듯이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비빌 언덕을 내어주고 있는지 되돌아본다.